策問 : 脫 原電 方案 提示 (탈원전 방안을 제시하시오)
策問 : 脫 原電 方案 提示 (탈원전 방안을 제시하시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8.03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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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중국에서는 관리의 등용을 위해 대나무를 얇게 쪼개어 그곳에 시험문제를 적어놓고 각자가 하나씩 뽑아 다른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방법을 구사했다. 문제에 대한 책략이라 하여 대책(對策)이라 한다. 중국에서는 수나라나 당나라 시대에 시행했다고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시작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수준차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지금의 논술과 비교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출제위원이 다양한 문제를 만든 다음 응시자가 제비를 뽑아 책(策)을 작성하여 제출했다. 시류에 따라 관심이 높은 문제에 대해 책을 잘 세우면 높을 점수를 받을 수도 있었고 또 한편 채점위원의 수준을 넘지 못하면 오히려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었겠다는 짐작을 하게 된다. 물론 공통된 주제를 주어 경합을 벌이기도 한다. 조선시대에 문과 33명과 무과 28명을 선발하는데 문과의 대과생 복시 33명의 순위를 가리기 위해 전시를 통해 임금이 책문(策問) 즉 책략을 세울 문제를 내면 그에 대한 대책(對策)을 작성하여 장원급제를 뽑고 순위를 정했다고 한다.

책문(策問)에는 당대의 임금이 정책을 묻는 제책(制策)과 행정부처인 6조에서 묻는 시책(試策), 양반가의 사견을 묻는 진책(進策) 등이 있었다. 과거의 문제는 그만큼 시대와 시류에 따라 다양하게 출제되었고 국민들의 폭 넓은 민심과 의견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지금 이 시기에 책문을 작성한다면 어떤 문제가 올라가 있을까? 아마 울산을 기준으로 한다면 필자는 지역의 현안인 ‘탈(脫)원전’ 대책이 가장 뜨거운 논술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탈원전, 결국 에너지에 대한 대책이다.

우리나라는 전력예비율을 약 25~30% 유지하려고 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며 다양한 발전방식에 따라 화력, 수력, 원자력 발전이 활용되고 있다. 울산에서는 이미 석유화학단지에서 발생되는 부생수소를 통한 수소에너지의 활용 방안인 수소연료전지 발전으로 수소타운을 운영하고 있으며, 친환경전지융합 실증화단지에서 수소발전에 대한 실증도 준비하고 있다. 또 현대자동차는 궁극의 친환경자동차인 수소연료전지차를 세계 최초, 최대 규모로 상업생산을 하고 있다. 또한 수소배관망을 통해 수소 충전과 에너지 저장을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수소는 대표적인 에너지 저장매체이며 바로 전기와 열을 생산할 수 있는 최상의 물질이다. 전국에 약 1천km를 직경 50cm, 압력 50기압으로 수소배관을 매설하면 이 안에 약 22기가와트(GW)의 전기를 발생시킬 수 있으며, 이는 원자력발전소 약 22기와 맞먹는다. 동시에 울산, 여수, 대산의 석유화학단지에서 발생되는 부생수소를 수소배관망에 연결하여 공급하고, 국내 4곳(인천, 평택, 통영, 삼척)의 액화천연가스(LNG) 기지에서 개질 수소를 공급할 수 있도록 연결하면 된다. 이렇게 전국을 송유관, 가스관처럼 수소배관을 연결하면 에너지 길(energy road)이 완성된다.

수소에서 발전되는 전기는 기존의 전력망(electric grid)에 연결하고, 또한 태양광, 풍력 등의 재생에너지 발전도 동일한 전력망에 연결하면 거대한 전력망이 구축될 수 있다. 즉 과도한 예비전력 확보로 사라질 전기를 물의 전기분해를 통해 수소로 저장하고 필요한 전기는 수소에서 연료전지 발전을 통해 즉시 생산하면 바로 전력망에 보내질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수소에너지와 전력의 스마트 그리드가 연결되는 것이다. 이 대책(對策) 명(名)을 ‘E2 groad’라 한다. 즉 전력과 에너지의 그물길인 망도(網道)를 형성하자는 이름이다.

우리나라처럼 국토 활용이 잘되고 기존 사회간접자본 시설이 잘 구축된 나라도 별로 없다. 지역 안배가 적절히 된 화학단지와 에너지 저장기지, 전력망 구조를 최대한 이용하여 저장하지 못할 예비전력을 언제든지 전기로 변환할 수 있는 가장 친환경연료인 수소로 저장하면 전력예비율을 높게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여기에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까지 한다면 탈원전뿐 아니라 화력발전의 가동까지 낮출 수 있는 전략 수립이 가능하다. 이것 또한 수소에너지 저장시스템(HESS)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유럽과 미국, 일본에서도 준비를 하고 있으며 각국에 맞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우리는 꼭 남이 해야 흉내 내고, 검증되어야만 열을 올리는 전철을 밟고 있다. 대책은 책략이고 전략적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이고 정책으로 시행되는 데도 많은 단계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울산에서 대책으로 건의하여 검토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소원해 본다. 책문에 가장 적합한 대책이 현문현답으로 되어 지역과 국가산업에 기여하고 에너지 안보와 자립을 위한 정책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일 때이다.

우항수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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