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삵’ 봤다
‘삵’ 봤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7.30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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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7일(일요일) 오전 6시경 태화강변 갈대숲에서 산삼만큼이나 발견하기 어렵다는 삵을 만났다. ‘살쾡이’로 부르기도 하는 ‘삵’ 두 마리를 본 것이다. 산삼으로 치자면 두 뿌리를 발견한 셈이다. 체구가 큰 한 마리는 어미인 듯 앞서고, 몸집이 작은 다른 한 마리는 새끼인 듯 몇 발짝 뒤따랐다. 삵은 번식기를 제외하고는 주로 혼자 생활을 하기에 언뜻 보아도 어미와 새끼로 짐작되었다.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으로 지정된 삵이 태화강변 가까운 거리에서 목격한 것은 흔하지 않은 행운을 잡은 셈이다.

삵은 생태적 특성상 야행성이며 사람을 당연히 기피하기 때문에 쉽게 볼 수 없는 동물이다. 새끼는 등줄무늬가 갓 태어난 새끼멧돼지같이 선명했다. 필자가 태화강에서 삵을 목격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수년 전 태화강 중류 선바위 다리 아래 갈대숲에서 목격했다. 쇠백로 한 마리가 갈대숲 가까이 물가에서 먹이를 사냥하고 있었다. 그때 삵 한 마리가 갈대숲에서 재빠르게 쇠백로를 사냥하는 것을 지켜봤다. 이번이 두 번째 목격인 것이다. 쉽게 관찰되지 않는 현장이어서 자주 보아도 싫증나지 않는 관찰이다.

이번 삵의 나들이는 사진작가 김택수, 최관식 두 분과 함께 목격했기에 사진으로 남길 수 있어 무척 다행이었다. 어미는 뒤쫓는 새끼를 돌아보며 이따금 얼굴을 핥아주기(Groo ming)도 했다. 호랑이, 표범 등 고양잇과 동물은 혓바닥에 가시 같은 돌기가 목구멍 방향으로 형성돼 있다. 이러한 구조는 털 핥기나 물 먹기 등 생존에 유용하도록 진화한 결과이다. 고양잇과의 배설물에 털이 섞여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삵은 주로 늦은 저녁부터 이른 아침까지 활동한다. 간혹 인적이 드문 곳에서는 낮에 목격되는 경우도 있다. 이번 경우처럼 이른 아침에 활동이 관찰된 것은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 종류와 사냥 방법을 숙지시키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 어미와 새끼는 강변에서 2분가량 살피다가 이내 구석진 갈대숲으로 들어갔다. 얼마 후 관찰 장소를 옮겨 봤다. 물고기 한 마리를 물고 갈대숲으로 사라지는 어미 삵을 다시 봤다. 그 후 30여 분을 지켜보았으나 그 날은 삵을 다시 관찰할 수 없었다.

삵은 고양잇과로 작은 동물을 잡아먹는 몸집이 작은 맹수이다. 삵은 보통 들이나 산에서 다람쥐, 꿩, 들쥐, 토끼, 고라니 새끼, 뱀 등을 주로 사냥해서 잡아먹는다. 쉬운 먹잇감을 구하기 위해 때때로 민가의 허술한 닭장을 노리거나 놓아먹이는 닭을 습격하기도 한다. 이번에 삵이 태화강변에 나타난 것은 물고기와 백로를 잡아먹기 위한 것이라고 확신한다. 어두운 몸 색깔과 얼룩덜룩한 줄무늬는 갈대 속에 숨어 피식자의 눈을 속이고 먹이사냥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유용하게 활용된다. 삵은 헤엄도 잘 친다. 임신기간은 56일 가량 된다. 보통 2∼3마리를 낳으며 수명은 10년 정도로 알려져 있다.

고양잇과 동물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하는 발톱 갈기(scratching)이다. 이러한 행동은 먹이사냥의 주된 무기인 발톱을 날카롭고 예리하게 가꾸기 위한 것이다. 인적이 드문 한적한 공원에서 목격되는 고양이의 움직임을 따라가면 운 좋게 발톱 갈기 행동을 볼 수 있다. 혹 공원에서 나무 아랫부분이 심하게 긁힌 자국이 있으면 이는 100% 고양이의 스크래치(scratch) 흔적이다.

삵을 태화강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하중도(河中島, river island)의 발달과 갈대숲 보전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하중도는 물의 흐름이 느려지면서 강(江)·하(河)·천(川) 가운데로 퇴적물이 쌓여 만들어진 섬을 말한다. 갈대는 강, 하천 등 물가의 습지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태화강 하중도에서 자라는 갈대는 꿩, 고라니, 수달, 삵 등이 몸을 숨기거나 먹이사냥을 하기에 적당한 환경이다.

그동안 삵의 유무에 대한 발표는 주로 무인센서 카메라에 포착된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태화강변, 언양 반천현대아파트 주변, 청량면, 삼동면 등지에서 포착된 경우도 그랬다.

삵은 한자로 ‘리(狸·?)’ 혹은 ‘산묘(山猫)’로 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리(狸)로 쓰고, <울산군향토지>(1933)의 ‘향토의 특수한 동물 분포상황’에서는 산묘(山猫)가 청량과 삼남에 각각 분포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왕조실록에는 삵이 무려 223번이나 등장한다. 대부분 삵의 가죽을 말하는 리피(狸皮) 즉 ‘살쾡이 가죽’으로 기록됐다. 삵은 무늬가 좋아 호피(虎皮), 표피(豹皮), 호피(狐皮), 초피(貂皮) 등과 함께 공물(貢物)이었다.

삵을 ‘작은 호랑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얼굴 생김새가 호랑이의 축소판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호랑이가 없는 고을에 삵이 호랑이 노릇 한다’는 속담의 한자어 표현 ‘무호동중리작호(無虎洞中狸作虎)’가 이를 대변해 준다.

이번에 삵이 관찰된 곳은 ‘미래를 향해 변화하는 희망찬 행복남구’를 지향하는 남구청(청장 서동욱)에서 조성 중인 ‘삼호동 철새마을’과도 가깝다. ‘삼호산 숲’의 동쪽으로 그 시작점에는 ‘동굴유토피아가, 서쪽 끝에는 ‘삼호동 철새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그동안 삼호대숲에는 너구리, 고라니와 꿩이 간간이 목격됐다. 이번 삼호대숲 가까운 수변 갈대밭에서 백로를 먹이로 삼는 삵이 관찰된 것은 삼호대숲의 영향과 무관치 않다. 이러한 삵의 동선은 현재 남구청이 진행하고 있는 ‘삼호동 철새 홍보관’ 건립의 당위성에 힘을 실어준다. 홍보관은 앞으로 체험학습 장소로서 효과적인 운영이 기대된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조류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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