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서 만난 애인’
‘SNS에서 만난 애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7.30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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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 하고 끝난 느낌이지만, 며칠 전 화면과 지면을 떠들썩하게 장식한 사건 하나가 쉬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이른바 ‘애인 빙자 사기사건’. 장소가 해변도 아닌 SNS이었다는 사실이 자못 흥미로웠다. 그리고 제목은 선정적이었다. <SNS에서 만난 애인 믿지 마세요>, <결혼하자던 SNS 연인, 알고 보니…>, <사랑한다더니…SNS 사기꾼>, <“나 파병 미군인데”…OOO XX 일당 적발>… 대충 이런 식이었다.

이 사건은 신종 경찰용어의 출현도 가져왔다. ‘로맨스(romance)’란 단어에 ‘신용사기’를 뜻하는 ‘스캠(scam)’이란 단어를 접목시킨 ‘로맨스 스캠(Romance Scam)’이라는 용어다. ‘로맨스를 빙자한 신용사기’쯤으로 풀이하면 무리가 없지 싶다.

애인 빙자 사기단의 덜미를 낚아챈 사건해결사는 대전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범인은 나이지리아 국적의 A씨(42) 등 2명이었고, 이 두 양반 가운데 죄질이 더 무거운 한 양반이 사기 혐의로 쇠고랑을 찼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SNS, 특히 페이스북을 이용해 피해자들에게 접근해서 친밀감을 쌓은 뒤 돈을 가로채는 수법을 구사했다.

지난 4월부터 최근까지 이들의 교묘한 수법에 순진하게 넘어간 한국인 피해자는 무려 41명, 그 피해액이 6억4천만원으로 피해자 1인 평균 1천500만원이 넘는 사기를 당한 꼴이다. 경찰조사 결과 적게는 200만원, 많게는 1억300만원을 갖다 바친 피해자도 있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피해자의 성별이 남자 28명, 여자 13명으로 사기 대상이 남녀 불문이라는 사실. 이는 범인들이 남자 피해자에겐 여자인 것처럼, 여자 피해자에겐 남자인 것처럼 행세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범인들은 어떤 방법으로 피해자들에게 접근을 꾀했을까?

우선 경찰이 공개한 범행 자료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나이지리아 사기꾼들이 구사한 언어는 ‘만국공통어’라는 영어. 이들은 영어로 자신이 아프가니스탄이나 시리아에 파병된 미국 여군이라거나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은 자산가라고 피해자들을 속였다. 그런 다음 다정한 이성친구로 지내자고 ‘친구 신청’을 하거나 쪽지를 보내는 방법으로 미끼를 던졌다.

용케도 피해자가 낚싯줄에 걸려들어 ‘연인관계’로 발전하면 사기단은 “상속금을 보낼 테니 잘 보관해 달라”는 식으로 피해자의 환심을 샀다. 이 과정에서 해외의 다른 조직원들은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외교관, 세관원 또는 배송업체 직원이라고 속인 다음 통관비, 관세, 배송비 조로 돈을 받아서 가로챘다. 경찰 관계자는 “낯선 외국인이 페이스북이나 SNS를 통해 친구 요청 운운하며 접근해 오면 절대 수락해선 안 된다“고 주의를 환기시켰다. 특히 “달러 송금이나 물품 배송을 이유로 돈을 요구하면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지난 5월인가 ‘로맨스 스캠’ 도전을 직접 받아보았다는 ‘darby4284’라는 분의 추적관찰기가 새삼 눈길을 끈다. 잠시 인용해보자. “‘로맨스 스캠’에는 반드시 여자가 등장한다. 낚시인 셈이다. 예쁜 여자를 앞세워 남성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등장하는 여자는 실제 인물이 아니다. 사기 주범이 동원하는 여자로 대개는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예쁜 여자 얼굴을 합성해 올린다. 이런 식으로 근자에 제일 많이 등장하는 여자는 미 여군들이다. 평화유지군으로 아프가니스탄이나 중동에 파견돼 있다며 자기소개를 하고 남자들을 유혹한다.”

페이스북에서 영어로 사랑을 속삭였다는 것은 피해자들의 지식수준이 결코 저급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연애 빙자 사기에 도매금으로 넘어갔다면 의식수준을 의심치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애정에 굶주렸기로서니 생면부지의 검은 사기꾼들에게 육성 확인도 한번 안 해보고 마음과 돈을 갖다 바치다니, ‘코리언의 자존심’이 부끄럽지 않던가?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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