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박물관들이 무료·할인정책을 펴는 까닭
유럽 박물관들이 무료·할인정책을 펴는 까닭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7.26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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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루브르 박물관에서 본 모나리자를 떠올리면 여전히 입가에 미소가 절로 감돈다. 엄청난 명화와 이집트 등 세계 도처에서 가져온 진귀한 유물들을 보면서 이를 환산하면 수백 조 원이 넘겠다는 부러움에 프랑스는 진짜 부자라고 봤다. 때가 여름이라 수십 미터나 줄을 서서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자니 이미 반쯤은 녹초가 되어 있었다. 비싼 입장료에다 대기시간도 긴 박물관 보물을 프랑스 국민들은 과연 자주 볼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후에도 유럽의 여러 박물관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이런저런 경유로 조사를 하다 보니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유럽의 국·공립 박물관 대부분은 입장권이 만 19세 미만의 자국 학생들에게는 무료라는 것이었다. 만 25세 대학생, 군인과 그에 준하는 젊은이, 도제, 65세 이상 노인, 장애자 및 그의 수행자 등이 무료였다.

한국의 국·공립 박물관과 비교하면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한국의 경우, 상설 전시관은 연령과 상관없이 대부분 무료이다. 유럽의 상설 전시관은 일반 성인에게는 유료이다. 중요한 것은 기획전시의 요금이다. 유럽은 위에서 설명한 ‘무료’의 범위가 그대로 적용되지만 한국은 65세 이상에서 유아까지 다 돈을 받는다.

울산박물관에서는 5월 2일부터 8월 27일까지 해외특별기획전으로 ‘<이집트 보물전>-이집트 미라 한국에 오다’를 열고 있다. 65세 이상 개인은 3천 원(단체 20인 이상 2천 원), 성인은 1만 원(단체 20인 이상 8천 원), 중고생은 8천 원(단체 20인 이상 6천 원), 초등생은 5천 원(단체 20인 이상 3천 원), 유아는 3천 원(단체 20인 이상 2천 원)이다. 무료는 만 36개월 미만 유아, 단체(20인 이상) 인솔자(교원 1인), 국가보훈대상자,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1∼3급) 본인 및 동반자 1인, 상이군경(1급∼3급) 본인 및 동반자 1인, 박물관 기증자 및 동반자 1인 등이다. 할인은 ‘울산 다자녀 사랑 카드’ 소지자 본인 및 배우자와 등록 자녀 30% 할인, 장애인 4∼6급 관람 시 본인에 한해 50% 할인, 예술인 패스 소지자 본인에 한해 2천 원 할인,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문화가 있는 날)은 20% 할인 적용(당일 사용 한정) 등이다.

어린이나 학생을 데리고 3~4인 가족이 함께 주말 관람을 할 경우 입장료만 3만원 안팎이라 결코 만만치 않다. 상설 전시회는 한번 보면 다시 보는 일이 드물지만 기획전은 매번 다르기에 모든 박물관은 신경을 많이 쓴다. 유럽 박물관의 기획전 요금정책도 대부분 비슷하다. 루브르 박물관은 외국인 학생이더라도 17세까지 무료, 매주 금요일 오후 6시 이후 26세 미만 무료, 매주 첫 번째 일요일은 무제한 무료, 7월 14일 국경일은 무료이다. 루브르 단일권은 15유로이지만 2일권은 48유로이다. ‘뮤지엄 패스 카드’를 사면 약 100개 이상의 박물관과 미술관에 무료로 입장 또는 할인을 받고, 레스토랑과 교통비도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저렴한 1년 이용 카드도 있다.

우리와 유럽은 왜 이런 차이가 생겨난 것일까? 박물관에 대한 기본인식과 철학의 부재에 기인한다는 생각이다. 박물관은 ‘museum’을 한자어로 번역한 것인데, 그리스어 ‘무제이온(mouseion)’에서 유래되었다. 원래는 ‘온갖 잡동사니를 펼쳐놓은 곳’이라는 의미의 한자어 ‘博物館’이 아니라 학예를 관장하는 뮤즈 여신 아홉 명의 전당을 지칭했다. 과거의 신성한 지혜와 유산을 일상적 삶의 폐해로부터 보존하고 만나는 성소인 것이다.

박물관은 옛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보존하는 동시에 그것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적절한 의미를 끊임없이 창조해내는 기관이다. 1789년 여름 파리의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성난 군중은 지엄한 루브르궁까지 접수했다. 이들은 여기서 왕족들이 버리고 간 수많은 예술품들을 발견했다. 이처럼 진귀한 유물들을 그간 특정한 계층이 독점했던 것에 분노를 느낀 혁명위원회는 곧바로 ‘예술품은 국민 전체의 소유물’임을 천명했다. 1792년 9월 27일 루브르궁은 ‘프랑스 박물관’으로 거듭난다. 박물관이 국민에 의한, 그리고 국민을 위한 기관으로 탄생한 것이다.

당시 혁명 지도부는 위대한 유산을 국민 모두가 향유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을 중요한 교육적 사명으로 간주했다. 조상이 이룩한 위업과 목표를 자각하지 않고서는 국민 고유의 정체성을 획득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떳떳한 국민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미적 체험이 요구되었다. 따라서 휴일의 박물관 나들이는 선거일에 투표장을 찾는 것처럼 국민의 정치적 권리이자 의무가 되었다. 이러한 유럽 박물관들의 탄생 취지는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자기 조국과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애국·애향심을 함양하는 교육의 산실이란 믿음으로 어릴 때부터 박물관 나들이가 부모와 함께 삶의 일부분이 되도록 무료·할인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다.

박물관과 미술관은 시민을 위해 존재하기에 공적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그 존재의 이유는 애국·애향심 고취에 있다고 생각한다. 울산시민 모두에게 박물관이 교육놀이터가 되도록 하자면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입장료부터 선진국 수준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임현철 울산시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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