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깨어보니 “내가 달라졌어요”
어느 날 깨어보니 “내가 달라졌어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7.25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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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운아다. 어려서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서다. 엄마는 아침마다 다리를 주무르며 깨워주어서 개운하게 기지개를 켜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또 잠이 부족할까봐 남들보다 조금 더 자고 아침밥을 먹노라면 내 머리를 말려주었다. 아빠는 퇴근하자마자 내가 먹고 싶어하는 간식을 사왔다. 그땐 그게 과잉보호라 생각했다. 다들 그렇듯이, 부모님 품을 벗어나 자유롭게 지내고 싶어서 대학은 먼 지역으로 가길 원했다. 그래서 울산을 떠나 천안에 있는 공주대학교 화학공학부에 입학했다. 국립대인 공주대학교는 본교는 공주에, 그리고 공대는 천안에 있다.

대학 1학년에는 부모님이 주는 용돈으로 해방감에 빠져 마구 놀았다. 그렇게 1년을 기숙사에 살다가 2학년부터는 자취를 시작했다. 그야말로 아무 생각 없이 놀다가 2학년 때 아빠가 쓰러져 입원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빠는 “딸이 시험기간인데 울산으로 내려올까 걱정되니 알리지 말라”고 하셨단다. 당신이 입원한 와중에도 딸 걱정에 입원 사실을 알리지 말라는 얘기에 눈물이 났다. 그때 더 속상한 것은 아직 학생 신분이라 아버지 입원비를 보태드리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그때부터 아침마다 “일어나라”며 다리를 주물러주고 머리를 말려주던 엄마가 그립고, 밤마다 아빠가 사온 간식이 있던 식탁이 그리웠다. 그 후론 부모님이 보고싶어 매달 울산으로 내려갔다. 아마 철이 든 것 같다. 맛있는 걸 먹으면 그 곳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가서 함께 먹고, 알바를 해서 월급을 받으면 용돈도 드렸다. 놀기만 하던 내가 공부도 열심히 했다. 뉴스도 보고 사회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2016년 세계경제포럼에서 처음 언급된 ‘4차 산업혁명’이라는 경제용어에 관심이 쏠렸다. 이제는 웬만한 미래학 책에도 4차 산업혁명이라는 부제를 달지 않으면 관심을 끌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과학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인한 변화라는 것이다.

어릴 적 공상과학 영화를 볼 때면 “로봇이 아무리 만능이라고 해도 어떻게 사람만큼 똑똑하겠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의 컴퓨터는 인간의 지성을 초월한 초 지성 슈퍼컴퓨터로 인간이 지닌 감정의 영역까지도 접근할 수 있다고 한다. 사실 4차 산업혁명이라면 ‘이세돌 대(對) 알파고’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바둑의 특성상 경우의 수가 무한대이기 때문에 컴퓨터가 인간을 절대로 이길 수 없을 것이라 다들 생각했다. 그런데 알파고는 경우의 수를 계산하지 않고 ‘딥 러닝’이라는 기술을 통해 스스로 학습을 해서 실력을 쌓아버린 것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7월 한 달 동안, 울산에 있는 한국화학연구원(이하 화학硏)에서 실습하고 있다. 아버지 전공처럼 나와 동생은 화학공학을 선택했고, 늘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갈등이 생겼다. 아버지 정년퇴직이 1년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여동생은 대학 2학년이다. 아버지 정년퇴직은 대학원 진학을 꿈꾸던 마음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화학硏에서 실습하는 동안 실험을 하고 다양한 분석기기들을 다루면서 석사과정을 할 수 있는 학연생 제도를 접하게 되었고 새로운 희망을 가졌다.

한때 놀기에만 바쁘던 내가 아빠 입원을 계기로 인생을 나름대로 설계하고 계획을 세워 열심히 살아가면서 여름방학 실습도 나가게 되었다. 그것도 누구나 꿈꾸는 화학硏으로. 어느 날 화학硏 이동구 센터장님이 조용히 불러 신문 칼럼을 쓸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좋은 기회였다. 대입 자소서 이후 내 생각을 풀어나가며 글을 써본 적이 없다. 생각을 정리하면서 그 동안의 나를 뒤돌아보게 되었다. 첫 문단에 부모님 이야기를 쓸 때 눈물이 났다. 실습을 화학硏에서 하게 된 것도, 신문에 칼럼을 낼 기회가 생긴 것도 행운이다.

만약 4학년이 되어서도 변치 않고 노는 데에만 정신이 팔렸다면, 실습 나갈 기회는 물론 신문 칼럼에 기고할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통해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눈부시게 빠른 속도로 혁신하고 있다. 우리 젊은이들은 패기와 열정으로, 무엇보다도 긍정적인 자세로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무한한 기회와 도전에 대해 잘 준비해야 한다. 아빠 정년퇴직은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한다. 이 모든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이승현 공주대학교 화학공학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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