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학성공원
다시 찾은 학성공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7.20 18: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폭염이 여전하던 22일 오전, 마음먹고 찾아간 쉼터(?)는 중구 학성공원. ‘학성공원’이라면 20년 인연이 서린 곳. 울산 와서 처음 정한 숙소가 바로 코앞이어서 산책삼아 자주 오르던 공원이다. 거처를 옮긴 뒤에도 가끔 들렀으나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확실한 기억은 없다. 23일 오전에도 다시 한 번 찾았다.

첫날도 둘째 날도 매미가 소나기보다 더 요란한 소리로 귀청을 따갑게 했다. 한데 모처럼 찾은 공원은 예전 모습이 아니었다. 많은 변화를 헤아리며 고개를 드는데 컬러풀한 이정표들이 눈길을 끈다. ‘본환’, ‘이지환’, ‘삼지환’이라 적은 글자들…. 알고 보니 왜성(倭城)과 유관한 명칭이었다. 아참, 그렇지. 여기가 울산왜성(옛 학성왜성) 터였지.

해발 50미터, 공원 맨 꼭대기 광장이 ‘혼마루(本丸)’, 그 아래 생활체육광장이 ‘니노마루(二之丸)’, 맨 아래 ‘박상진의사 추모비’ 있는 곳이 ‘산노마루(三之丸)’라 했다. 둘째 날, 우연히 마주친 중구문화원 동아리 ‘한배랑’ 여성회원 한 분의 귀띔으로 겨우 알아냈다. (한배랑 회원들은 한 달에 한번 교대로 날을 잡아 순수봉사정신으로 공원 청소에 나선다.) 사진 곁들인 안내판이 군데군데 있어도 사전설명 없인 무슨 뜻인지 알기 힘들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꼭대기 광장 한쪽 모퉁이에 서있던 ‘태화사지 십이지상 사리탑’(보물 제441호)’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영구보존·관리를 위해 울산박물관으로 옮겼다”는 검은색 푯돌이 그 이유를 알려주었다. 그 시점이 2010년 11월. 그렇다면 적어도 7년간은 공원을 한 번도 찾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아, 이 무심함! 자괴감에 고개가 숙여졌다.

학성공원은 ‘왜성’ 이미지 대신 ‘울산동백꽃 이야기’로 포장되고 있었다. ‘울산동백’이란 임진왜란 때 왜장(倭將) 가토 기요마사가 도산성(=학성공원 일원)에서 가져가 상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바쳤다는 ‘오색팔중(五色八重) 동백’을 말한다. 광복 70주년(2015년) 5월, 일본서 사 온 11그루 가운데 6그루가 공원 ‘혼마루’에 심어졌고, 그 중 몇 그루는 올봄에도 꽃을 피웠다고 들린다.

공원을 두 번 둘러보게 만든 것은 4월 21일 공사가 시작된 ‘학성 르네상스 도시경관 조성사업’이었다. 첫날 시야에 잡힌 공원 입구 공사현장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때문이었다. 중구청은 “공원 일원이 우범지대가 되는 것을 막고 역사적·장소적 가치를 활용해 ‘울산 최초의 공원’의 명성을 회복하기 위한 사업”이라고 공사안내판에 적었다. 그러나 폭염으로 일손을 멈춘 공사현장 주변은 막걸리통과 허드레배낭, 담배꽁초, 1회용 컵, 노숙자(작업인부?)가 벌이는 대낮 술판이란 일그러진 장면으로 객을 맞고 있었다. 특히 공원 진입로 초입의 ‘공원화장실’은 퀴퀴한 냄새가 코를 막게 했다. 남과 여 화장실 사이, 표지판도 떨어져 나간 장애인용 화장실은 문을 여는 순간 내뿜는 지독한 악취 때문에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낙엽범벅인 바닥은 제법 오랫동안 노숙자 외엔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공원 내 다른 화장실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 조명등이 나갔거나 음악소리가 들리지 않거나 파리, 모기가 날아다녔지만 누구 하나 관심 기울이는 이 없어 보였다. 공원 진입로 부근에서 쓰레기를 치우던 ‘한배랑’ 회원 몇 분이 서로 말을 주고받았다. “전엔 참 깨끗했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공사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는 얘기로 들렸다.

6월 19일 완공 예정이던 ‘르네상스 공사’는 8월말로 늦춰졌다. 연기사유로 공원 주변상가의 민원도 한 몫 차지한다는 말도 있었다. 중구청이 상가 입주자들의 목소리엔 귀를 막은 채 일방통행 식으로 밀어붙인다는 게 그들의 주장. 누군가가 작심한 듯 비아냥거렸다. 학성공원도 르네상스 공사도 ‘개점휴업’ 상태지만 시행사(중구청)의 독선만은 ‘성업 중’이라고….

김정주 논설실장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