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의시네에세이]청춘이라는 잡술-‘칵테일’
[이상길의시네에세이]청춘이라는 잡술-‘칵테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7.20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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칵테일은 잡술이다. 위스키, 브랜디, 진 따위의 독한 양주에 감미료나 방향료, 과즙 따위를 얼음과 함께 혼합하는 칵테일은 그렇게 잡다해서 잡술이다. 허나 술은 자고로 취해야 하는 법. 또 취하려면 깊이가 있어야 한다.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위스키나 브랜디, 진에 비해 칵테일은 깊이가 없다. 칵테일에 흠뻑 취한 사람, 당신은 본 적이 있나. 소싯적에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키스 오브 파이어’를 한잔 들이킨 적이 있었다. 음료수더라. 사실 그 후로 서양식 잡술인 칵테일은 본 적도, 마셔본 적도 없는 것 같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잡술은 있다. 서양의 칵테일처럼 종류가 다양하지는 않지만 국민 잡술인 ‘소맥(소주+맥주)’이 모든 걸 커버한다. 사실 소주와 맥주는 의미가 완전히 다른 술이다. 우선 소주는 ‘슬픔’이다. 무색투명한 게 눈물을 닮았다. 연인과 이별하거나 괴로운 일이 있을 때 소주는 위로가 된다. 많이 아플 땐 병나발도 분다. 그에 반해 거품이 있는 맥주는 ‘기쁨’이다. 두리둥실한 거품처럼 들 떠 있다. 그래서 맥주는 축제에 어울린다. 이런 소주와 맥주를 섞으면 마법이 일어난다. 맥주의 가벼움을 소주가 잡아주는데, 기쁜 날엔 맥주를 좀 더, 슬픈 날엔 소주를 좀 더 타면 그만이다. 그렇게 소맥은 기쁠 땐 기쁨을 두 배로, 슬플 땐 두 배의 위로로 다가온다. 괜히 폭탄주라 할까.

그랬거나 말거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잡술은 화려하고 멋있다. 무지개 마냥 오만 색을 다 뿜어내는 칵테일의 화려함과 멋스러움은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특히 칵테일 제조 과정의 하나인 쉐이킹은 묘기에 가깝다. 비록 화려함은 칵테일에 비해 떨어지지만 멋스러움에서는 우리 소맥도 만만치 않다. 다양한 제조법이 존재하는데다 섞고 난 후, 스냅을 줘서 돌리거나 숟가락이나 젓가락으로 찍었을 때 맥주잔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새하얀 거품은 차라리 예술이다. 뭐랄까. 거품 가득한 청춘? 그렇다. 칵테일이나 소맥이나 화려해서 청춘을 닮았다.

전성기 시절 ‘탐 크루즈’의 미모가 빛나는 <칵테일>은 칵테일이라는 술처럼 화려함으로 가득하다. 영화는 칵테일이 그러하듯 젊은 시절의 사랑과 야망, 좌절, 상처, 우정, 배신, 화해 등을 섞은 뒤 마구 흔들어댄다.

군 제대 후 스펙 부족으로 입사를 원하는 직장에서 번번이 퇴짜를 맞은 브라이언(탐 크루즈)이 선택한 곳은 뉴욕 맨해튼의 한 칵테일 바. 처음엔 아르바이트로 시작하며 주경야독을 했지만 모로 가도 성공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공부는 때려치우고 바텐더의 길로 본격적으로 접어든다. 잘 생긴 외모 탓에 그의 인기는 하늘로 치솟지만 화려한 삶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더욱 짙어지는 법. 그래도 좌절과 상처, 배신을 겪으며 브라이언은 조금씩 성숙해져 갔다.

소맥 폭탄주는 다 좋은데 먹다보면 배가 부르다. 흥이란 것도 한계가 있기 마련. 그러다보니 술자리가 깊어지면 결국은 소주잔만 남는다. 삶의 진정성이란 게 원래 화려한 소맥보다는 조금은 초라한 소주에 더 가깝기 마련이다. 그래서 열정이 남아도는 화려한 청춘이 잡술이라면 그 시절을 보내고 맞이하게 되는 30,40대는 위스키나 브랜디, 진, 혹은 소주처럼 조금은 단출하지 않을까.

그렇게 나이가 들수록 화려함과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주변의 친구들도 깊어진 술자리 끝에 마침내 등장하는 작은 소주잔처럼 작지만 깊어진다. 모 유행가 가사에서도 그러더라. 우린 모두 늙어가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거라고. 1990년 4월 21일 개봉. 러닝타임 104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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