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기억 그리고 소설
시간과 기억 그리고 소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7.20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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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시간의 축을 따라 산다. 이 축에 한번 발을 디디면 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아니 자연 만물의 운명이다. 타임머신이라는 굉장한 기계가 아직 상상 속에만 존재하듯이 인간은 결코 과거를, 혹은 미래를 체험하지 못한다. 다만 우리는 기억이라는 수단을 통해 과거를, 상상을 통해 미래를 짐작할 뿐이다. 인간의 시간은 기억으로 남는다. 상상은 기억에 덧붙이는 꾸밈말일지도 모른다. 기억과 상상은 생각의 다른 이름 같기도 하다. 생각은 인간의 능력 중에 가장 빠른 속력을 가졌으니 어쩌면 기억과 상상은 인간을 초인 혹은 신처럼 만드는 최고의 능력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시간은 기억으로 남고 이 기억을 잡는 이는 과연 누구일까? 소설은 시간과 기억을 박제하고 상상을 보태는 것일 터, 온 힘을 다해 자신의 평생 동안 역작을 쓴 몇몇 소설가는 인간의 능력을 발휘하는 이들 중의 하나라고 감히 주장해본다.

언젠가 『오래된 미래』라는 매력적인 제목의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한편으로 미뤄두었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프루스트의 책이 떠올랐다. 마음을 굳게 먹고 올해 초부터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기 시작했다. 과연은 역시의 친구?!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으면서부터 든 생각이고 지금까지도 이 생각은 마찬가지이다. 프루스트가 일생을 걸고 적은 벨에포크 시대의 아름다움은 마치 시간과 존재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앞섬과 뒤섬도, 겉과 안의 경계도 없는 것처럼 끝이 없다. 간혹 섬세하고 촘촘한 묘사는 최명희의 『혼불』과 박경리의 『토지』를 연상케 한다. 셋은 묘하게 닮았고 모두 빼어나다.

풍부하고 섬세한 주석은 책 읽기의 또 다른, 혹은 남다른 기쁨이다. 또한, 친절한 주석은 번역한 이의 땀과 믿음을 고스란히 담은 것 같아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가끔 불친절하게 지난 권을 뒤적여야 하는 수고를 끼치더라도 말이다. 프루스트의 촘촘한 묘사는 따라 읽기가 숨 가쁠 정도로 매혹적이다. 인물에서 풍경으로 다시 인물 간의 상황으로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의 붓은 부드럽기가 깃털이요, 날카롭기가 바늘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내게 바늘에 찔려 송글송글 맺히는 핏방울처럼 선명하고 선연한 시간이 되었다. 번역자의 빠른 완간을 촉구하려는 마음을 접고 그저 기다리기로 마음을 바꿨다.

뒤레프스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내게 의미를 준다. 어느 시대에나 생길법한 사건, 지금도 자행되는 부조리한 상황, 뒤레프스 사건을 대하는 그들의 행태를 살피는 일은 동시대를 사는 우리의 현재, 과거를 곱씹게 했고, 또한 읽는 것으로 우리의 미래를 되찾은 느낌이었다. 주인공을 비롯한 여러 인물의 생각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어떻게 작동할 것인지 궁금했다.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여러 개의 정치적 사건은 어떻게 기록되고 곱씹어질는지? 그 끝을 가늠해보는 것만으로도 그 시절, 프루스트와 만난 것 같은 짜릿함이 일었다.

프루스트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궁금증이 생겼다. 이름난 책답게 참고할만한 연구 서적도 많았다. 우선 김동윤과 질 들뢰즈의 글을 참고했다. 질 들뢰즈가 분석한 책은 프루스트의 시간과 기억을 찾아가는 지름길처럼 보였다. 미로처럼 복잡하고 여러 갈래인 프루스트의 시대(벨에포크 시대)의 아름다움은 들뢰즈라는 조명 아래 훤히 그 자태를 드러낸다. 살롱의 한구석에 앉아 표정을 숨긴 사교계의 여왕들도 들뢰즈 앞에서 무너졌을 듯싶다. 귀족들도 마찬가지. 그들 안의 스노비즘을 숨길 수 없어 전전긍긍한다. 프루스트가 환생하듯, 아니 그의 뇌를 해부라도 하는 듯 들뢰즈는 세심하고 정교한 잣대로 우리를 프루스트의 기호들의 세계로 이끈다. 그를 따라가다 보면 모든 의문과 희뿌염이 저절로 물러나고 환하게 다가온다. 프루스트의 기호의 끝자락을 사유의 틀로 완성한 들뢰즈의 세계에서 노니는 독서 시간이 행복할 뿐이다. 또한 얇은 분량임에도 김동윤 작가의 촘촘함과 섬세함과 주도면밀함은 탐정의 눈길처럼 매섭고 날카롭기 그지없다. 프루스트를 만나기 전도 만나고 난 후에도 읽기에 손색없는 길라잡이이자 종착역인 책이다.

다시 읽기 시작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역시 프루스트의 기억은 촘촘하기 그지없다. 그의 생각은 박제가 된 채로 활자화되어 우리를 현혹시키고 감탄을 부른다. 당장 마들렌을 먹고 싶기도 했고, 파리로 날아가 샹젤리제 근처 불로뉴 숲으로 달려가 주인공과 질베르뜨의 숨죽이던 첫사랑의 숨결을 맡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숨은 종탑이 서서히 드러나는 언덕길을 걸으며 읊조리던 노랫소리를 들어보고 싶기도 했다. 주인공이 듣던 아리아와 그림을 찾아 듣는 시간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이제 첫 시작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떠난 발걸음은 되찾은 시간까지 쭉 이어질 것이다. 아름답지만 어렵고 장황스러운 프루스트의 문체를 세심하게 살핀 김희영 번역자의 글은 너무나 현학적이고 또한 너무 아름답다. 당시의 상황을 살핀 주석은 또한 달콤한 한 잔의 차처럼 그윽하다. 어려운 작업이지만 모쪼록 빨리 완역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몇 년이 걸리는 작업이라는 것을 알지만 기다릴 것이고 기대한다. 번역자의 손길과 발걸음에 아낌없는 응원과 환호와 감사를 보낸다. 시간을 되찾는 그 날까지, 끝까지 읽으리라.

박기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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