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오래 산다고 다 고향이 될까?
울산, 오래 산다고 다 고향이 될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7.19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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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 또래들이 대부분 들어봤음직한 노래 중에 ‘고향이 좋아’라는 7080 노래가 있다. “타향도 정이 들면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그 누가 말했던가 말을 했던가/ 바보처럼 바보처럼/ 아니야 아니야 그것은 거짓말/ 타향은 싫어 고향이 좋아” 가수 김상진씨가 이 노래를 꽤나 구성지게 불렀다. 당시 까까머리 학생이던 필자도 가사의 의미는 잘 모르면서도 자주 따라 흥얼거렸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다소 앳돼 보이는 가수가 가사 내용에 걸맞게 애수 섞인 목소리로 부르니, 사춘기 어린 마음에 감상에 푹 젖어 그 노래를 좋아하지 않았나 싶다.

당시에는 우리나라 산업경제가 개발 초기단계여서 지역 간 인구 이동이 지금처럼 많지는 않았다. 필자는 시골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엔 타향살이 자체를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경제성장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서울이나 울산처럼 산업이 급속하게 성장하는 곳으로 몰려들면서 고향을 떠나게 되었고, 필자 역시 그 대열에 자연스레 합류하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4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서울, 여수 등을 거쳐 울산에 정착한 지 30년이 다 되어가니 울산이야말로 제2의 고향이 아닐까.

그런데 요즘 들어 작은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다. 고민의 출발은 어이없게도 너무나 빠른 과학문명의 발전 속도라 할 수 있다. 흔히 얘기하는 ‘인생 100세 시대’를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정도로 의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손바닥에 쏙 들어가는 초소형 휴대전화로 어디서나 소통이 되고, 초고속 인터넷이 일반화되면서 세상이 크게 바뀌고 있음을 실감한다. 불과 십여 년 만에 스마트폰,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 생소한 기술들이 한꺼번에 밀려들고 있는 것이다. 모든 과학은 상상에서 출발한다는데 요즘 과학은 아예 상상을 훨씬 앞질러 가버리니 10년 뒤엔 세상이 또 어떻게 변해 있을지 기대되면서 한편으론 걱정도 된다.

올해 환갑을 맞고 있는 또래 친구들은 몇 년 전부터 은퇴하면서 인생 전반전을 끝내고 후반전을 시작하는 큰 변혁기를 맞고 있다. 100세 인생이라면 전반전 못지않은 긴 시간에 대한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주변에 맘 편히 대화하고 정을 나눌 수 있는 이웃을 만드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가족이나 부부 중심의 서양 문화와 달리, 우리는 어려서부터 각종 모임에서 서로 어울리는 문화에 젖어 있다. 하지만 직장이나 사회생활에서 만나 자주 어울리던 사람들도 그 생활을 마치는 순간 자연스럽게 헤어져야 하니 인생 후반전에는 갑자기 혼자 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도 10여 년 전까지 대기업에 다닐 때는 회사 동료들이나 회사와 관련되는 사람들과 주로 만났다. 그 동안 많은 선배들이 회사를 그만 두면서 울산에 정착하지 못하고 고향이나 다른 연고 있는 곳으로 떠나는 모습을 지켜봐 왔다. 한 곳에 오래 산다고 해서 다 제2의 고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울산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그 곳에 적응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을 테니, 이래저래 100세 인생이란 반갑기도 하지만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있는 셈이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주변을 돌아보니 가까운 곳에서 답이 보인다. 먼저 아내에게 울산 친구가 많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영국 옥스퍼드 사전에도 고유명사로 나온다는 대한민국 ‘아줌마’의 능력을 아내도 유감없이 발휘했나보다. 아이들의 중고교 학부모 모임 등 대여섯 개의 모임을 십 수 년 넘도록 유지하고 있으니. 지금은 “고향인 서울보다 울산이 훨씬 편하고 살기 좋다”고 얘기하는 걸 보니 아내에겐 울산이 제2의 고향임에 틀림없다. 필자 역시 울산 기업에서 은퇴한 중역들의 모임에 가입하여 한 일원으로서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130여 명이나 되는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또 스스로도 편한 마음을 가지게 되면서 “내게도 울산이 영원한 고향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심상빈 민영하이테크㈜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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