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어요리집에서 체결된 시모노세키 조약
복어요리집에서 체결된 시모노세키 조약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7.18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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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7월 9일부터 2박3일간의 일정으로, 울산 남구 재향군인회가 주관한 ‘일본 안보·문화탐방’에 참가했다. 탐방 첫날 우리는 키타큐슈 국제공항에 도착한 후 후쿠오카 지역, 학문과 문화의 신을 모신 다자이후 텐만구, 온천으로 유명한 유후인 마을을 거쳐,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중국과 일본이 싸운 청일전쟁 끝에 조약을 체결한 시모노세키 지역을 둘러보았다.

이번 탐방을 하면서, 나는 참으로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시모노세키 조약이 시모노세키시(下關市)에 있는 일본 최초의 복어요리 전문점 ‘춘범루(春帆樓)’에서 체결됐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임진왜란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592년 임진왜란이 시작된 해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정명가도(征明假道=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조선 정부에게 강요한 내용으로, ‘일본이 명을 정복하고자 하니 조선은 명으로 가는 길을 빌려달라는 것)라는 명목으로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16만 명의 병력을 시모노세키 항구에 집결시킨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조선을 공격하러 출격하기 전에 죽는 사무라이와 병사들이 속출했고, 그 이유는 바로 복어라는 생선 때문이었다.

당시, 일본열도 곳곳에서 사무라이들이 병사들을 이끌고 항구도시인 시모노세키로 집결하는데, 그 중에는 산골 출신들도 많았기 때문에 복어에 치명적인 독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몰랐던 것이다. 시모노세키는 지금도 일본에서 복어가 가장 많이 잡히는 지역으로 유명하지만, 임진왜란이 발발할 무렵에도 복어가 많기로 유명했다. 병사들은 값싸고 맛있는 복어를 먹으면서 독이 있는 내장까지 끓여 먹었던 것이다.

이렇게 복어를 함부로 먹다가 죽는 병사들은 한둘이 아니었다고 한다. 일본은 중요한 전투를 앞두고 병력 손실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많은 장병이 죽으니, 조선 출병에 지장이 생길 정도였다. 이러한 상황을 보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렇게 빨리 죽고 싶으면 조선에 건너가서 싸우다 죽어라”고 화를 내었다고도 한다.

마침내, 히데요시는 ‘복어 금식령’을 내리기에 이르는데, 당시 문맹이었던 병사를 위해 복어 그림을 그려 넣고 복어를 먹으면 벌한다는 지시사항을 적은 말뚝을 곳곳에 세웠다. 그로 인해 복어를 잘못 먹고 죽는 사무라이들은 없어졌지만, 일본 사람들은 무려 300년 동안이나 복어를 제대로 먹을 수 없게 되었다. 복어 금식령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도 지속되었다고 전한다.

복어 금식령은, 히데요시가 영(令)을 내린 지 300년 후인 1892년, 안중근 의사의 총에 맞아 죽은 경술국치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 의해 비로소 풀리게 된다. 당시 일본의 초대 총리가 된 이토 히로부미가 시모노세키를 방문했을 때, 춘범루(春帆樓)라는 여관에 머물렀는데 마침 바다에는 거센 폭풍우가 일고 있었다. 배들이 며칠 동안 출항을 하지 못해 싱싱한 생선이 떨어졌고, 여관 주인은 어쩔 수 없이 금지된 생선인 복어를 요리해 총리에게 대접했다. 그런데, 이 복어를 맛보고 감탄한 이토 히로부미가 현(縣)의 지사에게 요청해 춘범루에서는 특별히 복어를 요리해 팔 수 있도록 조치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 시모노세키에 있는 춘범루가 공식 복어요릿집 1호가 된 것이다.

그 이후, 청일전쟁의 결과인 시모노세키 조약은 바로 춘범루에서,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와 청나라의 리홍장(李鴻章)에 의해 체결된다. 청나라는 이 조약에서 조선이 완전한 자주독립국임을 확인하고, 랴오둥 반도와 타이완, 펑후 섬 등을 일본에 양도했다. 일본이 한반도를 자신의 세력권에 넣을 수 있는 근거를 만든 것이다. 이렇게 복어라는 생선으로 생긴 에피소드가 우리의 역사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우리 울산 남구 향군 회원들은 이번 탐방 기간에, 당시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했던 춘범루를 둘러보며 ‘강한 국력만이 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면서, 우리들의 높은 안보의식을 바탕으로 외세 침략의 외풍에 당당히 맞서는 강한 대한민국의 모습을 만들자고 다짐했다.

<김기환 남구재향군인회 사무국장·예비역소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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