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 10주년 앞두고 ‘제2의 글로벌 캠퍼스’ 구상”
“개교 10주년 앞두고 ‘제2의 글로벌 캠퍼스’ 구상”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7.07.18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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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 UNIST 국제교류팀장
이름 없는 다리… “노벨상 수상자 나오면 붙이지”

불볕더위의 기승이 여전하던 15일(토) 오전 울산과학기술원(UNIST, 울주군 유니스트길 50) 캠퍼스를 찾았다. 방학기간임을 암시하듯 사위가 조용하다. 연구원 커플로 보이는 인도인 남녀 한 쌍이 캠퍼스 입구 시내버스정류장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UNIST의 여름방학은 6월 22일부터 8월27일까지. 그래도 외국인 유학생 기숙사의 태반은 방학과는 거리가 멀다. 102명 대학원생 대부분은 기숙사에 남았고, 206명 학부생 40%도 기숙사에 머무는 중이라는 게 대학 측 설명이다.

캠퍼스 초입의 어머니 품 같은 광장이 이날따라 더욱 넓게만 보였다. 뙤약볕 가릴 만한 차양시설도 없으니 황량한 사막 같다는 어느 한국인 학생의 떨떠름한 표정이 실감나게 다가왔다. 그 학생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광장은, 여느 대학 캠퍼스와는 달리, 이름표가 없었다.

무명(無名) 신세는 9개나 되는 캠퍼스 내 다리도 마찬가지. 조무제 초대 총장의 원대한 포부가 ‘무명 시리즈’를 남겨 놓았다는 일화가 전한다. “이름은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때 하나씩 붙여주는 게 안 좋겠나?”는 식의 고집스런 그의 집념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얘기다.

42개국 사람들이 이룬 ‘다문화 커뮤니티’- UNIST

처음에 희망했던 미팅 날짜는 15일이 아닌 14일(금). 그런데 이 날로 잡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방학기간인데도 일부러 찾아준 먼 나라 손님들을 영접하는 일이 그에게 주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페루 교육 관계자 열다섯 분이 찾아오셨지요. 페루라면 우리와 같은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회원국인데, 부산대학교를 거쳐 방문하셨던 겁니다.” 미안해하면서 건넨 김범수 UNIST 국제교류팀장(49·사진)의 귀띔이다.

대학 입구에서 멀찌감치 직선으로 마주보이는 202동 건물이 ‘국제교류팀’의 사무공간. ‘글로벌센터’도 같이 들어와 있다. 흥미로운 것은 캠퍼스 내 건물의 성격이 1에서 4까지의 숫자로 구분된다는 점이다.

숫자 1로 시작되면 강의·연구동, 2로 시작되면 행정업무동, 3으로 시작되면 기숙사를 의미한다. 특이한 것은 21층짜리 40∼402동의 존재다. “결혼한 연구원들을 위한 ‘커플 아파트’로 보시면 될 겁니다.” 김범수 팀장에게 외국인 유학생들의 이모저모를 알아보기로 했다.

2017년 1학기를 기준으로 UNIST 가족의 규모는 학부생 2천895명, 대학원생 1천461명, 교수(언어교육원 영어강사 포함) 444명을 합쳐 4천800명. 이 가운데 외국인 유학생은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합쳐 308명이다. 그 밖의 외국인은 연구원 70명. 교수 40명 남짓으로 모두 합치면 UNIST 외국인 가족은 420명 선을 헤아린다.

교수는 미국 출신이 압도적이고 연구원 중엔 인도인이 약 80%나 된다. 수학(修學) 기간은 학부가 4년, 대학원과정 중 석사과정이 2년, 박사과정이 3∼5년, 석·박사과정이 4∼5년이다.

기숙사 수용능력은 4천 명 선. 외국인은 100% 받아들이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극히 일부는 애써 바깥 거주를 선호한다. 반대로 자택이 울산에 있는데도 굳이 기숙사 생활을 고집하는 학구파 국내 학생도 없진 않다.

기숙사는 남녀유별(男女有別)이지만 구성원에 따라 구분방법이 다르다. 대학원생과 연구원들은 층별로 남녀를 구분하고, 학부생들은 동별로 남녀를 구분 짓는다.

UNIST 가족을 국적별로 보면 학생은 34개국, 교수·연구원·강사까지 합치면 42개국에서 몰려들었다. 한마디로 UNIST는 42개국 지구촌 가족들로 구성된 ‘다문화 커뮤니티’인 셈이다.

무슬림 학생 140명… 기도실·할랄인증식품에 신경

학생은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출신이 다수를 차지한다. 약 140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김 팀장의 말이다. “중앙아시아 나라들은 자원부국(資源富國)들이고 성장잠재력이 대단한 편이지요. 그동안 우리 국익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많이 받아들인 게 사실입니다. 또 이들은 옛 소련 권역 국가들이어서 수학·과학 등 이공계 분야에 우수한 인재들이 많은 편입니다.”

결국 이들을 유치해서 국익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활용하고, 우리 학생들에게는 글로벌 의식과 국제경쟁 의식을 높여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앞으로는 계획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우수한 해외 인재 풀을 중앙아시아에서만 찾으려 하지 않고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로도 눈길을 돌릴 것이란 예감이다.

사실 국제교류의 다변화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이점이 있다. 민간외교사절의 무대를 넓히는 것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이시형 KF(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은 최근 이런 말을 남겼다. “한국에 있는 외국인 유학생은 미래 한국과 국제사회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할 잠재적 지한파(知韓派)들입니다.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을 올바로 이해하고 한국 학생들과 우정을 다져 성공적인 유학 생활에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국명이 ‘-스탄’으로 끝나는 나라들은 하나같이 이슬람교를 국교로 삼는 나라들이고 이들 나라의 국민들은 상당수가 무슬림(=이슬람교 신자)들이다. 그러기에 UNIST는 신경을 많이 쓴다. “무슬림들은, 물론 나라별로 차이가 나겠지만, 할랄 인증 식품(Halal Food=이슬람 율법으로 허용되어 이슬람교도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거나 주정(알코올)이 든 식품은 아예 입에 대지도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국내 가공식품의 95%는 먹질 못하고 자취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김 팀장의 말이다.

그래서 UNIST는 체육관 건물에 무슬림을 위한 기도실을 따로 마련해 주었고, 할랄 인증 음식을 되도록이면 많이 내놓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국내 식품업계의 형편이 아직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런 사정을 감안해 UNIST는 기숙사에 외국인 학생을 위한 식당과 함께 무슬림을 위한 취사 공간도 같이 마련해주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캠퍼스 내 무슬림들의 불만이 속 시원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언어 문제와 함께 음식 문제는 아직도 덜 푼 숙제로 남아있다.

유학 1년차는 전원 특전… “학점미달이면 국물도 없어”

외국인 유학생들에 대한 특별배려에 어떤 것이 있는지도 궁금했다. 김 팀장의 도움으로 학부 학생들에 대한 특전의 윤곽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일단 입학하면 생활정착금 명목으로 한 사람 앞에 50만원씩, 한 차례 지급하지요. 학점에 관계없이 1년분 등록금을 면제해 주고. 매월 식대로 30만원씩도 지급하고요.”

그러나 2학년부터는 사정이 달라진다. 학점이 3.3 이상이면 생활비, 등록금이 모두 면제되지만 2.7∼3.3미만이면 등록금 반을 내야하고, 2.7미만이면 ‘국물도 없다’는 표현처럼 모든 특전이 사라지고 만다. 그래도 내·외국인 가릴 것 없이 전체의 70%는 연간 630만 원 선인 등록금을 면제받고 있다.

유학생들이 강의가 없는 날은 어떻게 보내는지도 궁금했다. 사생활 범주에 속해 속속들이는 알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많이 이용하는 페이스북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휴일 나기를 대충은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서울로 갔다든지 부산 해운대 바닷가를 찾았다든지 하는 예기를 수시로 전해주기 때문이었다.

김범수 팀장은 캠퍼스 구석구석을 안내하려고 애썼다. 건물 한쪽 바닥이 자전거로 가득 찬 장면이 시야에 들어왔다. 넓은 캠퍼스 안을 돌아다니기에는 안성맞춤인 교통수단이란 생각이 들었다. 김 팀장이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유학 기간이 끝나면 자전거를 그대로 두고 출국하는 학생들이 참 많은가 봐요. 작년에만 300대 가량을 수습해서 기증하기도 했으니까요.”

외국인 유학생들은 선후배 간에 교복을 물려주듯이 자전거를 물려주는 일도 없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자전거는 본국에 가져갈 처지도 못 되는 애물단지 같은 것이 아니던가? 대부분은 버려지는 신세가 되고 말더라도 이해가 충분히 가는 대목이었다.

‘개교 10주년’ 앞두고 지역사회 봉사에도 관심 집중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방학기간은 새로운 도전의 기회다. 지역사회를 좀 더 이해하고 자신의 재능을 재주껏 뽐내면서 용돈도 마련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소수에 지나지 않지만 일부 유학생들은 지난해 여름 경북 청도교육청 요청으로 교육청이 마련한 ‘과학체험 캠프’에 참여했다. 그곳 초·중학생들에게 영어로 수학과 과학을 가르쳐 줄 기회가 있었던 것. UNIST는 학생들이 원한다면 올해 8월에도 기회를 줄 참이다. 하지만 정작 울산 쪽에선 요청이 없다. 사교육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울산 지역사회를 위해 방학 기간을 유용하게 활용하는 유학생들도 있다. 울주경찰서 관내 온산·범서·언양 파출소 경찰관들과 함께 야간 방범순찰에 나서는 일이 그것이다. 특히 온산 지역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아 유학생들의 협력은 경찰에게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시각장애인협회의 요청으로 시각장애인들에 영어책을 읽어주면서 도로 마사지 기술 배우고 오는 유학생들도 있다. 대학 측은 현대외국인학교 학생, 교사들과 같이 활동하게 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이 또한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 차원의 프로그램이다.

지역사회에 눈길을 돌리려는 시도는 올 들어 부쩍 많이 늘었다. 내년이 개교 10주년이 되는 해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2010년부터 시작된 ‘인터내셔널 데이’에 외국인 노동자들을 초청하는 프로그램도 그 중의 하나다. “울산출입국관리사무소와 협의 중에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울산시 글로벌센터에도 협조를 구할 예정입니다.”

김 팀장은 그래서 더 바쁘다. ‘인터내셔널 데이’는 그동안 학내에서만 이뤄지던 행사였다. 요즘은 5월과 10월의 주말에 맞춰 이틀간 진행하고 있다. 출입국관리사무소와 얘기가 잘되면 10월 행사 때는 제법 그럴 듯하게 판을 꾸밀 생각이다. 유학생들에겐 본국의 노동자들도 올 것이므로 본국의 음식, 민속품과 민속예술로 선보이게 해서 ‘화합 한마당’을 멋지게 이끌어낼 것이다.

“수요조사 거쳐 ‘한글 토익 과정’ 신설할 계획”

개교 10주년을 앞두고 기획하는 프로젝트가 또 하나 있다. 수요 조사를 거쳐 교과과정에 ‘한글 토익’ 과정을 개설하는 일이다. 이 또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갈수록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 대기업에서 전공과 학력 조건에 덧붙여 ‘한국어에 능통한 외국인 학생’에 대한 추천을 의뢰해온 경우도 있었다. 자국의 한국 업체 지사에 취업하거나 자국과 관련된 한국 기업에 취직하기 위해서라도 절실한 과제라는 판단이 서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한국어 교육이라 해야 2학점짜리 한 학기가 배정돼 있었을 뿐이다.

올 2학기(8월)부터 ‘글로벌리제이션(국제화) 시책’에 따라 제2의(=더 나은) 글로벌 캠퍼스를 지향하는 정책연구에 몰입하는 것도 개교 10주년에 때맞춘 기획이다. 그 속엔 ‘외국인 거주 편의’를 겨냥한 세미나도 포함돼 있다.

김범수 국제교류팀장은 고향이 부산이지만 서울에서 자랐고 다시 부산에서 동인고등학교를 나왔다. 1986년에 신설된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해양학과(현 지구환경학부) 1기생으로 입학했다가 6년 후인 1992년 서울대 대학원 해양학과를 졸업했다. 폴란드 그단스크 의과대학 박사과정을 거친 후 연구원(6개월), 조교수(이후)를 역임했고(2001-2003),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다가(2005-2011) 2012년부터 UNIST와 연을 맺었다.

동갑내기 이수경 여사와의 사이에 대학 2학년,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는 두 아들을 두고 있다. 경기도 분당시 샘물교회를 다니는 독실한 크리스찬이다.

글= 김정주 논설실장 / 사진=김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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