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한 입 베어 물고 ‘황제’의 기분으로
수박 한 입 베어 물고 ‘황제’의 기분으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7.16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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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의 경주 최고 기온이 39.7도라는 말에 더 더워지는 것 같다. 한여름이다. 여름은 더워야 제 맛이다. 지금 농촌에서는 새벽부터 땀 흘려 논밭에서 일하고 아침부터 해거름까지는 휴식이다. 옛날, 여름 수박밭 가운데 원두막에는 땀 흘려 일한 후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 하고는 배를 반쯤 내어놓고 코를 골면서 낮잠을 즐기는 목가적인 풍경이 있었다. 김홍도의 풍속화 같은 이것이 곧 여름 한낮의 ‘행복’이었던 것이다.

여름과 더울 때 생각나는 첫 번째 과일은 수박일 것이다. 가뭄과 빨리 찾아온 더위로 수박의 맛은 더 달고 깊어졌다. 덩달아 소비도 잘되어 수박농가의 호주머니는 두둑해지고 얼굴에는 웃음꽃이 가득하다. 우리는 그냥 달고 시원하게 수분을 보충해 주니까 더울 때 흔히 찾게 되는 과일쯤으로 가볍게 생각한다. 알고 보면 더위로부터 몸을 지켜주는 수박 농업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아무나 먹을 수도 없는 귀한 과일이었다.

수박은 아프리카 대륙의 남단에서 기원하여 소아시아,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까지 전파되었다. 고려 시대에 원나라를 통해 전래된 수박이 우리나라에 정착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그 때문에 아주 귀했던 과일이다.

수박은 전 세계 과일 생산량 1위이지만, 대부분은 재배한 나라에서 자체 소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1인당 연간 소비량은 15.7kg(‘14)이며, 1조억 원 이상의 수박이 생산, 소비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대부분 비닐하우스에서 기르는 ‘시설수박’으로 농사를 짓는 데 들어가는 노동시간이 낮아 농가에 인기가 많다.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과일로, 1인당 연간 2.6통이 넘는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수 있는 여름의 상징 수박!!! 소비자들은 수박을 과일로 알고 있지만 사실 박과채소로 참외, 오이, 호박 등과 같은 부류에 속한다. 여름에 땀으로 배출된 수분과 비타민, 미네랄을 보충해주는 천연의 이온음료이며, 껍질에 풍부한 시트룰린은 혈관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크게 한 입 베어 물어 더위를 날리는 것만이 아니라 수박을 즐기는 보다 특별한 방법들이 있다. 먼저 칼로리가 적은 껍질을 이용하는 수박껍질 차, 수박 냉채로도 여름에 즐길 수 있다.

수박의 가격은? 조선왕조실록 세종 23년(1441) 11월 15일 편을 보면 수박 한 통 값은 쌀 다섯 말의 값과 같았다고 되어 있다. 세종 5년 내시 한문직은 수라간에서 수박을 훔쳐 먹고 곤장 100대를 맞은 후 귀양살이를 했다. 세종 12년에는 궁중에 물품을 공급하는 관리가 수박을 훔쳐 먹다가 곤장 80대를 맞기도 했다.

연산군일기(1507)에도 북경에 사신으로 다녀온 김천령이 새로운 수박씨를 구해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관참시하고 자식을 종으로 삼으라고 했다는 기록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귀하고 비싼 과일이었다는 것이 사실이었던 것 같다.

널리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이후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근대 이전까지는 여전히 고급 과일이었다. 최초의 재배법이 기록된 우리 문헌은 강희맹의 ‘사시찬요초’(1480년 경)이며 오이, 참외, 수박의 재배법을 월령가 형태로 기재하고 있을 뿐이다. 여전히 재배가 어려워 영조는 공부에 열심인 유생들에게 수박을 내려 위로했을 정도로 민간에서는 꿈도 못 꿀 진상품이었다. 1800년대까지 제주의 말과 귤, 남부 지방의 수박은 궁중의 중요한 진상품으로 관리들의 수탈 대상이 되어 정약용이 그 안타까움을 시로 남겼을 정도이다.

원두막은 왜 사라지고 있을까?! 노지재배의 경우, 바이러스, 탄저병 등 병해 발생이 많고 장마, 태풍 등으로 불량과가 많이 생겨 시설재배가 일반화되고 있어 시설하우스에서 나오는 수박은 ‘88년 14%에 불과하던 것이 ‘96년 56%, 2014년 85%를 넘어서면서 추억이 서린 농촌의 풍광도 변화하게 되었다.

더울 때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수박! 바다나 계곡에서도 수박 한 통을 들고 피서하는 우리는 황제나 조선시대 왕보다 더 위대한 삶을 살고 있다. 올여름 폭염도 수박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우리 모두를 ‘황제’로 만들기 위한 위대한 자연의 섭리임을 알게 될 때 건강한 여름나기가 완성될 것이다.

<윤주용 울산시농업기술센터 소장·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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