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도시락과 학교급식
점심도시락과 학교급식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7.16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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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리들이 몇 가지 있다. 이제는 학교와 멀어진(?) 어른들의 어릴 적 학창 시절에도 그랬고, 지금의 아이들에게도 변함없이 “언제쯤 그 종소리가 들리지?” 하고 오매불망 기다려지는 즐거운 시간이다. 아이들이 ‘목 빠지게’ 기다리는 소리의 첫 번째 주인공은 바로 점심시간을 알리는 ‘밥 먹는 종소리’이다. 그리고 두 번째 소리는 공부시간이 끝났으며, 그래서 지금부터는 쉬거나 놀 수 있는 시간이라고 알려주는 ‘놀이의 종소리’이다.

학교 급식이 시작되기 전 자녀를 학생으로 둔 부모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 중의 한 가지는 자녀들의 점심 도시락 준비였다. 어릴 적 이른 아침이면 잠에서 깨어난 어머니가 제일 먼저 챙긴 것은 다름 아닌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의 점심 도시락이었다. 더운 여름철 시원한 대청마루 집에 모인 동네 아주머니들의 마지막 이야기는 “날도 더운데 애들 점심 도시락 반찬은 뭐로 해주나”에 대한 걱정이 대부분이었다. 그 시절 점심 도시락에 대한 걱정은 모든 어머니들이 풀지 않으면 안 되는 난이도가 꽤 높은 방정식 같은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학창 시절 이야기를 하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 속에서 점심 도시락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한창 먹성이 왕성했던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먹성 좋거나 덩치 큰 학생들의 점심 도시락은 으레 깨끗하게 비워져 있기 마련이었다. 심지어는 공부시간에도 선생님 몰래 교과서 밑이나 책상 서랍 속에 감춰 둔 도시락이 느닷없이 등장하기도 했다. 점심시간이면 숟가락과 젓가락만 들고 이 반 저 반 돌아다니는 ‘도시락 습격단’도 곧잘 등장하곤 했다.

지금의 어른들이라면 누구나 이런 추억쯤은 다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도시락 반찬 칸막이에 담겨진 김치에서 국물이 새어 나와 밥뿐만 아니라 교과서며 책가방까지 적시고야 마는 시큼한 김치 냄새 때문에 씻고 말리느라 고생한 추억 말이다.

집안 형편이 제법 넉넉한 친구들이 도시락을 먹는 자리는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을 만큼 늘 붐비는 자리였다. 고기반찬이나 장조림, 김이나 채소가 들어간 노란 계란말이 반찬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맛있는 반찬을 뺏기지 않으려고 도시락 뚜껑으로 가리면서 밥을 먹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도시락 반찬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기가 부끄러워서 밥을 애써 가리는 친구도 있었다. 심한 경우 점심과 저녁 도시락 2개를 못 싸 올 형편인 학생은 수돗가에서 물로 배를 채우며 그 시간을 견뎌내기도 했다. 이처럼 같은 교실에 앉아 도시락을 먹으면서도 집안 형편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채 학창시절을 보내야 했던 어른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6월말 학교 급식 노동자들이 포함된 ‘학교 비정규직 노조’에서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파업을 하는 바람에 몇몇 시·도 교육청에서는 학교 급식이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다. 모 국회의원은 이번 파업에 참여한 비정규직 노조원들을 가리켜 ‘미친 X들’, 급식조리 종사원을 가리켜 ‘밥하는 아줌마’라고 비하하는 발언을 내뱉어 사회적 물의를 빚은 일이 있다.

매일 아침 등굣길 교통지도를 나가면서 급식실을 보면 이른 아침부터 엄청나게 바쁘게 돌아가는 것을 보게 된다. 오전부터 급식실에서 새어 나오는 고소한 냄새에 아이들은 벌써부터 “오늘 급식 맛있겠다. 점심시간 빨리 왔으면 좋겠다”면서 수업 시간에도 마음이 온통 ‘콩밭’에 가 있기 일쑤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순간이 어쩌면 점심시간인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들의 따뜻한 밥 한 끼를 위해 급식소에서 뜨거운 기름과 수증기를 온몸으로 감당하며 일하고 있는 조리종사원들. 그들 덕분에 예전처럼 도시락 문제로 마음 아파하는 학생들이 사라지고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는 것이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물론 그들 외에도 학교 내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땀방울에 대해 정당한 대우와 합리적 보상이 뒤따라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김용진 명덕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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