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들의 피서법
선인들의 피서법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7.09 19: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틀 후면 삼복(三伏)더위의 시작인 초복(初伏)이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에 만나는 삼복은 음력 6월부터 7월 사이의 절기로 초복·중복·말복을 이르는 말이다. 하지(夏至)로부터 셈을 해서 세 번째 경일(庚日)이 초복이고, 네 번째 경일이 중복이며, 입추가 지난 뒤 첫 번째 경일이 말복이 된다.

복날의 복(伏)자는 사람이 마치 개처럼 엎드려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가을철 금(金)의 기운이 땅으로 내려오다가 아직 가시지 않은 강한 더위 앞에 엎드려 복종한다는 의미라고 주장하는 설도 있다. 찌는 듯한 무더위가 가을의 서늘함을 굴복시켰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래서 옛날에는 삼복더위가 시작되면 갖가지 방법으로 더위를 이기려 노력했다.

‘혹독한 더위와 근심의 불덩이가/ 가슴 속 가운데서 서로 졸이네/ 온 몸에 빨갛게 땀띠 나기에/ 바람 쐬며 마루에 곤해 누웠지/ 바람이 불어와도 화염과 같아/ 부채로 불기운을 부쳐대는 듯/ 목말라 물 한잔을 마시려 하니/ 물도 뜨겁기가 탕국물 같네….’ 고려 문인 이규보의 시 ‘고열(苦熱)’이다. 찌는 듯한 무더위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옛 시인의 모습이 안타깝기조차 하다.

한시(漢詩)에서 자주 보이는 시어 가운데 하나가 ‘고열’이다. 요즘 말로는 ‘무더위’ 정도로 옮길 수 있는데, 웬만한 시문집에는 한두 편이 들어 있다.

한여름의 무더위는 예나 지금이나 그다지 다르지 않겠지만 더위를 물리치는 방법은 계층별로 차이가 있었다. 양반의 여름나기는 ‘더위 피하기’였다. 양반들은 사랑방 옆 마루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더위를 식혔다. 차가운 감촉의 대나무나 왕골로 만든 죽부인을 옆에 끼고, 삼베 옷 속에 등거리와 등(藤)토시를 걸쳐 시원한 바람이 솔솔 통하도록 했다.

오로지 체면만을 중요시했던 양반들은 아무리 더워도 상민(常民)들처럼 옷을 훌훌 벗어던지거나 물속에 풍덩 뛰어들지 못했다. 대신 수반(水盤)에 물과 돌을 채워 작은 호수를 만든 뒤 석창포를 심어 마음을 시원하게 달랬다. 또는 발을 차가운 물에 담근 채 시를 읊으며 경치를 즐기는 탁족회(濯足會)를 갖기도 했다.

반면에 상민들의 여름나기는 ‘더위 쫓기’였다. 계곡으로 들어가 물고기를 잡고 천렵(川獵)을 즐겼다. 바다를 찾아 모래찜질을 즐기기도 하고 깊은 계곡에서 폭포수를 맞기도 했다. 체면보다는 더위의 열기를 식히고 시원한 한판 놀이를 즐겨 가며 더위를 잊었던 것이다.

삼복더위에는 보양식도 한 몫을 했다. 옛 문헌을 보면 ‘복달임’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삼복더위에 몸을 보양해주는 음식을 먹고 시원한 물가를 찾아 더위를 쫓던 일을 말한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복달임 고깃국은 오늘날 보신탕으로 불려지는 개장국이 주를 이뤘다. 다만 지역에 따라서는 삼계탕이나 민어탕, 추어탕과 함께 닭고기, 돼지고기, 국수 등 다양한 음식이 등장하고 있다.

조선의 궁중에서는 더위를 이겨 내라는 뜻에서 벼슬아치들에게 빙표(氷票)를 준 뒤 석빙고에 가 얼음을 타 가게 했다. 또 활인서(活人署)의 병자(病者), 의금부(義禁府) 감옥의 죄수들에게도 얼음을 나누어 주었다. 연산군은 대나무 뱀틀 위에 앉아 대나무의 한기와 뱀의 냉기를 느끼는 피서법을 즐겼다고 한다. 경국지색 양귀비는 쇠구슬(玉魚)을 입에 넣어 빨면서 그 냉기로 더위를 식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구름은 하늘가 멀리 걸려 있고 나뭇가지에 바람 한 점 없는 날/ 누가 이 찜통더위를 벗어날 수 있을까/ 더위 식힐 음식도, 피서 도구도 없으니/ 조용히 앉아 책 읽는 게 제일이구나.’

조선 숙종 때 학자 윤증의 시 ‘더위(暑)’다. 이 시에서 시인은 무더위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수단으로 ‘독서’를 으뜸으로 삼고 있다. 에어컨·선풍기가 없던 그 시절, 무더위는 참기 어려운 고역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인들은 ‘더위 쫓기’에 온갖 지혜를 동원, 슬기로운 삶을 이어왔다. 연일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 삼복더위엔 선인들의 갖가지 지혜를 한껏 빌어 불볕더위를 이겨 봄은 어떨까.

<김부조 시인·칼럼니스트>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