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
외할머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7.0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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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살부터 단편소설을 쓴 프랑스의 천재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있다. 그의 신작 ‘잠’이 서점가를 달구고 있다. 처음부분에 이렇게 쓰고 있다. ‘20년 전으로 돌아가 젊었을 적의 자신을, 꿈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상상해보세요’라고. 나는 20년 전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전 유년기의 ‘꿈이 아닌 현실’을 회상해보려 한다.

외할머니는 나를 꽤나 좋아했던 것 같다. 아마도 외할머니의 외동딸이 낳은 아들이라서 그런가 생각해 본다. 그것도 오목조목한 아들을 네 명이나 더 낳았기 때문이라 더욱 그렇게 생각이 든다. 그것보다 더 큰 이유를 들면 이 메커니즘이 쉽게 풀릴 것 같은데 외할머니의 친손은, 공교롭게도 네 명이 모두 딸이고 아들은 기껏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 아닌가.

옛날 우리 부모세대야말로 아들 선호사상이 무척 강했으니 충분히 이해가 가지 않을까. 아들만 줄줄 낳으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고, 힘들고 고달픈 일도 하루아침에 다 사라졌던 세상이 아니던가. 딸을 많이 낳은 외숙모는 아무래도 나의 엄마를 달갑지 않게 보았음직도 하다. 정말 그러한 질투의 관계는 십분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유년기 나의 외갓집과 과수원은 대구 변두리 앞산 기슭에 있었다. 놀랍게도 지금은 대구에서 가장 비싼 명당 터로 바뀌었지만 그 당시는 유유하고 한가로운 농촌에 지나지 않았다. 사과 과수원은 산 아래쪽에 자리 잡은 광대한 대지에 펼쳐져 있어 나에게는 천국이었고 최고의 놀이터였다. 짙은 초록색 탱자나무로 둘러싸여 보기에도 정말 별천지였다. 풍뎅이, 호랑나비, 매미를 비롯해 온갖 곤충들이 사방팔방 날아다녔고, 탱자나무 아래로 졸졸 흐르는 맑은 개울물에는 온갖 생물이 곳곳에서 뛰놀고 있었다. 배가 빨간 청개구리, 맑은 도랑물 위를 조심조심 날아다니는 긴 날개 검정잠자리, 조그마한 도마뱀까지 좌충우돌 들락날락거렸으니 그야말로 어린 나에게는 환상적 세계였다.

대구라는 도시는 특이하게도 주위가 모두 산이라 겨울 추위가 매우 혹독하다. 그럼에도 겨울방학 때도 외갓집에 놀러갔다. 비록 매미도 없고 풍뎅이도 없고 잠자리도 없었지만 그래도 갔다. 단지 이유는 외할머니가 건네주시는 ‘홍시’ 때문이었다.

외할머니는 그 해 늦가을 따 둔 감 홍시를 소쿠리에 담아 겨울 내내 다락 한구석에 숨겨둔다. 우리들이 가면 다락에 숨겨놓은 몰랑몰랑한 홍시를 꺼내 주시는데 얼마나 차고 달콤한 맛이었는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물론 친손녀 손자들에게도 주었겠지만 정말로 주었는지 그다지 믿기질 않는다.

일제강점기에 참신한 이미지와 절제된 시어로 유명해진 시인 정지용이 있다. 그의 짧은 시 ‘홍시’가 걸작이다.

/어적게도 홍시 하나 /오늘에도 홍시 하나 /까마귀야 까마귀야 /우리 남게(나무에) 웨 앉었나 /우리 옵바 오시걸랑 /맛뵐라구(맛보일라고) 남겨 뒀다 /후락 딱 딱 /훠이 훠이!/

(「홍시」, 괄호는 필자의 풀이)

홍시에 대한 아련한 감흥이 나의 마음을 빼앗아 가는 듯하다. 오늘따라 왠지 외할머니가 그리워진다. 외할머니… 백발에 얼굴은 동그랗고 인자하게 생기신 포근한 나의 외할머니… 지금 아내가 나의 외손자를 바라보는 마음과 다를 바 있겠는가. 옛날 나의 외할머니가 나를 바라보는 것과 너무나 같은 듯하다. 보고 싶다. 외할머니! 그리고 현해탄 건너 두 돌도 채 되지 않은 나의 외손자도 그립다.

복잡한 삶 속에서도 ‘외할머니’가 상징하는 영원한 포근함, 인자함, 그리움을 생각하면서 맑은 마음의 정화를 한번 해보면 어떨까.

<김원호 울산대 인문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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