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산책]“그건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야”
[대학가산책]“그건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7.03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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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을 해보자. 당신(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니, 아내가 반갑게 맞아 주면서 이렇게 묻는다.

“여보, 나 혹시 달라진 거 없어?”

이때 대다수 남편은 약간 긴장을 하며 빠른 속도로 아내의 달라진 점(특히 외모)을 스캔하고 답변을 준비해야 한다. 이때 답변이 늦으면 당신은 아내의 변화에 무관심한 매정한 남편이 되기 십상이다. 필자의 경우에는 주로 아내의 머리 맵시 변화가 정답인 경우가 많았다. 물론 아내가 퇴근하고 남편이 집에서 반갑게 맞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의 경험으로 남자들의 경우는 자신의 달라진 외모를 아내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이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아내의 달라진 점을 찾는 것은 어찌 보면 저(低) 난이도의 문제이고, 고난도의 문제는 따로 있다. 그건 바로, “여보, 나 살 많이 빠졌지? 어제부터 시작한 죽음의 다이어트가 효과 있는 거 같아.”이다.

참고로 위 상황은 절대 필자의 집에서 일어나는 경험담이 아님을 꼭꼭 간절히(?) 밝혀 둔다. 왜냐하면, 필자의 아내는 다이어트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사실 위와 같은 질문이 답하기 어려운 이유는 답이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은 그 정해진 답이 정답이 아님을 마음속으로 느끼지만, 이미 정해진 답을 말해야 하므로 생각과 말의 불일치로 인한 괴로움을 겪는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 했었어?” 혹은 “그래? 그 효과는 당신 눈에만 보이나 봐….” 또는 “뭐? 다 eat 한다고? 새삼스럽게.” 이렇게 답변을 하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불가능하다. 결국, 답은 “오, 요번 다이어트는 효과가 제대로 있네, 너무 살을 빼다가 몸 버릴 수 있으니까 오늘은 영양 보충하는 의미로 치킨 하나 시킬까?” 그러면 이어지는 아내의 답변. “그럼 맥주도 같이 시켜 줘. 치킨과 맥주는 진리니까.”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필자의 집에서 일어나는 얘기는 아니다. 왜냐하면, 필자의 아내는 맥주와 치킨은 좋아하지만, 치킨과 맥주는 싫어하기(?) 때문이다.

정해진 답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혹은 그러한 행태를 ‘답이 이미 정해져 있으니까 너는 대답만 하면 돼’의 준말인 ‘답정너’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행태는 주도권 혹은 권력을 잡은 측에서 보이는 경우가 많다. 사실 다양성을 존중해야 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답정너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답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라고 여겨진다. ‘답정너’는 결국 쌍방향 대화가 아닌 한 방향 대화의 형태인데, 사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는 많은 문제는 원인이 여러 개일 수도 있고, 원인 간의 상호작용이 만든 새로운 원인이 원인일 수 있다. 그래서 올바른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많은 쌍방향 대화가 이루어져야 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고민과 다양한 가능성을 두루두루 살펴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답정너보다 심한 한 방향 대화 방식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이건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필자가 회사에 근무하던 시절 특정 상사는 가끔 보고자료를 보면 ‘이건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야’라는 말씀을 하시고는 보고자료의 수정 방향에 대해서는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없었다. 그러면 그때부터 야근이 시작된다. 상사가 원하는 답이 무얼지 마치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다가 결국 애꿎은 보고자료의 파일명 버전만 계속 증가하는 때도 있었다. 왜 본인이 원하는 답에 대해 설명을 안 해주는 건지 그때도 이해가 안 되었고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하지만 최근 힘이 있는 모 공공기관에서 유사한 행태를 보고 느끼는 바가 있었다.

해당 기관은 용역업체의 수행계획보고를 받는 과정에서 충분히 고민한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고 받기를 거부하였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행태는 크게 두 가지 의도가 의심된다. 보고자료를 자꾸 반려시킴으로써, 결국 보고 받는 주체의 의지를 관철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그 첫 번째이며, 혹시 보고한 대로 업무를 추진하다 문제가 발생 시 ‘네가 이렇게 한다고 보고했잖아’라며 책임을 전가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그 두 번째이다. 물론 text mining 기술을 통해 글쓴이의 감정 상태를 추출하는 알고리즘을 시범 운용 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 ‘이건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야’보다 한 단계 높은 한 방향 대화방식은 무엇일까? 기껏 이러이러한 방향으로 가자고 보고를 했더니, 다 듣고 나서 아무런 논리적인 반박 없이 다른 방향으로 가자고 하는 것은 아닐까?

마치, “여보, 우리 오늘은 치킨 말고 족발을 먹어보면 어떨까? 난 요즘 AI(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치킨은 별로더라.”라고 조심스레 건의 드렸을 때 “응, 알았으니까 치킨 시켜.” 뭐 이런 답변이 아닐까 생각한다. 역시 필자의 집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필자의 집에서는 통닭은 먹지만 치킨은 먹지 않기 때문이다….

<안남수 (울산과학대학교 안전및산업경영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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