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와 ‘로(路)’ 쓰임의 재발견
‘도(道)’와 ‘로(路)’ 쓰임의 재발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7.02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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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무심코 하는 말에도 관심을 갖고 자세히 살펴보면 쓰임을 재발견할 수 있다. 도로(道路)를 사례로 든다. ‘길’을 말하는 한자 ‘도로’는 한 단어로 생각되지만 사실은 ‘도(道)’와 ‘로(路)’가 합쳐졌으며, 경우에 따라 도(道)와 로(路) 각각의 의미로 분리된다. 다른 사례도 있다. 불교에서 물과 육지는 구별한다. 수륙재(水陸齋)는 물과 육지에서 죽은 영혼을 위해 재를 지내고 천도하는 의식이다. 수(水)와 육(陸)으로 분리된다.

이색(李穡·1328∼1396)이 어느 때 죽음을 두려워할 만큼 몸을 심하게 앓았나보다. “우리 집에〈세화십장생(歲畵十長生)〉이 있다. 벌써 시월인데도 아직 새것 같다. 병을 앓으면서 바라는 바는 오래 사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다. 하나하나 서술하여 찬한다.(吾家有歲畵十長生 今玆十月尙如新 病中所願無過長生 故歷敍以贊云)”하여 십장생이 그려진 열 폭 병풍을 보면서 시를 지은 것 같다. 특히 “병을 앓으면서 바라는 바는 오래 사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다.”는 내용에서 짐작하듯 죽을 수도 있을 만큼 몸을 앓았던 것 같다. 십장생 중 학(鶴) 부분의 서술에서 이를 특히 강조하고 있다. “아득한 삼신산이 어디메뇨. 학을 타고 옥당(玉堂)을 두드리고 싶다. 평생에 도골 없어 한스러웠는데, 속인들은 기개가 있다고 흠모하네.(三山渺渺是何方 欲駕胎仙叩玉堂 却恨平生無道骨 敎塵世慕昻藏)”《목은집》에 전한다. 이색은 몸이 얼마나 아팠으면 차라리 태선(胎仙, 학의 다른 이름) 즉 학(鶴)을 타고 이상향의 세상 옥당(玉堂)에 가고자 했을까?

황혼녘에 곽씨 부인을 묻고 평토제를 지낸 뒤 산을 내려오던 심봉사가 ‘옥경요대가 어디론가 학으로 변하여 나래 치며 날아가소(玉京瑤臺化鶴翩翩)’라고 망자를 축원했듯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불교적으로는 ‘서방정토에 구름 타고 학 타고 가소(西方淨土雲車鶴駕)’쯤 될 것이다. 무속적으로는 ‘꽃동산 서천서역’쯤이 되겠다.

이색이 쓴 태선가(胎仙駕=鶴駕)도 심봉사의 망축도 어쩌면 모구 극락세계의 염원일지 모른다. 말을 돌려 먼저 ‘로(路)’의 쓰임이다. 한자어를 그대로 풀이하면 수로(水路)는 ‘물길’이다. 그런데 쓰임에 따라 도(道)와 구분됨을 알 수 있다. 사람이 죽으면 저승 갈 때 쓰라고 돈을 놓는다. 이를 노자(路資) 혹은 노잣돈으로 부른다. 산 사람에게도 멀리 볼일 보러 갈 때 어른이 노잣돈을 준다. 망자의 저승길에 쓰는 노자에서 나왔다고 생각된다.

앞에서 만약 이색이 병을 견디지 못해 죽었다면 민속에서 노잣돈을 받고, 노제를 지내며 배삯을 지불하며 저승으로 보내졌을 것이다. 이때 도자(道資)라 하지 않고 왜 노자(路資)라 할까? 그 이유를 수로(水路)는 물길을 뜻하는 한자이며, 노제(路祭)를 노전(路奠) 혹은 견전제(遣奠祭)라고 부르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서 노제를 ‘거리에서 지낸다’ 하여 그리 부른다고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노제는 물가에 다다랐을 때마다 지내는 의식이다. 물을 건널 때마다 영가가 배삯을 지불하는 의식이 바탕에 깔려있다.

현재 노제는 영가와 생전에 의미 있는 장소에서 지내는 것으로 일반화됐다. 결국 노제는 현상적으로 길에서 지내지만 본질적으로는 물을 건널 때마다 지내는 의식이다. 다른 사례를 들면, 불교에서 영가를 극락세계로 안내하는 역할자를 ‘인도(引道)’ 혹은 ‘인도(引導)왕보살’ 하지 않고 ‘인로(引路)왕보살’, ‘오방오로청(五方五路請)’ 등으로 표현한다. 사례에 따라 ‘허공 길’의 관념으로 쓰임을 알 수 있다. 로고(路鼓)는 사면에 가죽을 붙인 북으로 옛날 종묘 제사 때 사용하던 북의 이름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백로(白鷺), 백로(白露), 노자(路資), 노제(路祭)의 공통점은 물과 연관되어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철도(鐵道), 차도(車道), 인도(人道) 등의 표현은 적절하지만, 신작로(新作路), 활주로(滑走路), 수도(水道) 등의 표현은 부적절하다 하겠다.

항공기(航空機)와 항로(航路), 선박(船舶)과 선로(船路)로 구분된다. 배가 하늘로 날아다니는 것을 항공기라 부르며 선박이 물위로 가는 것을 선로라 부르는 이유이다. 결국 ‘로’의 쓰임은 수로(水路)같이 실제적인 물길과 항공로(航空路)같이 허공 길을 상징적 의미로 각각 쓰이는 사례를 확인했다.

2013년 3월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習近平)은 “중국인 한사람 한사람의 꿈이 모여 중국 전체의 꿈이 되고, 더불어 단결한다면 꿈을 실현하기 위한 더 광활한 공간을 갖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실크로드 경제 벨트인 일대(一帶·one belt)와 해상 실크로드인 (일로·one road)로 구체화된다. 일대일로(一帶一路)는 육지와 바다를 통한 중국의 경제 발전을 의미한다. 이 말 속에서도 바닷길을 ‘로(路)’로 표현함을 알 수 있다. 정리하면, 넓고 큰길은 도(道), 좁고 긴 길은 로(路)로 표현한다. 또한 로는 물길, 허공 길, 관념의 길 등을 포함하는 인문학적 길이다.

요즈음 계속되는 가뭄에서 농부는 ‘자식 죽는 것은 보아도 곡식 타는 것은 못 본다’는 심정이다. 어깨에 삽을 둘러매고 집을 나서는 농부는 농도(農道)가 아니라 물이 흐르는 농로(農路)를 살피러 다니는 것이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조류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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