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이 김선달과 금속노조 일자리연대기금
봉이 김선달과 금속노조 일자리연대기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6.29 22: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 속담에 ‘벼룩도 낯짝이 있다’는 말이 있다. 남의 비난을 듣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강심장의 소유자를 가리켜 ‘후안무치(厚顔無恥)’ 한 사람이라 일컬는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교묘한 말과 글로 세상을 속이려 하는 세력들이 방식만 다를 뿐 예나 지금이나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듯하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 증거를 조작하는가 하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부정한 일이라도 서슴지 않는 일그러진 모습들은 요즘 세태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왠지 씁씁함을 느낀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노동계의 양대 축의 하나인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는 노사가 2천500억원씩 부담해 5천억원 규모의 일자리연대기금을 조성하고 추가로 매년 200억원씩 적립하자고 현대차그룹에 요구했다. 아주 그럴듯해 보이고 국민들의 공감을 살만한 제안처럼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진정성은 고사하고 노조원 조차도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이 숨어있다.

노조가 내놓겠다는 2천500억원은 통상임금 소송에서 승소해야 생기는 돈인데 통상임금 소송액 규모가 가장 큰 현대차의 경우 노조가 1,2심에서 모두 패소한 상황이다. 현대로템 노조도 1심에서 패소했고 아직 심리가 진행 중이거나 소송 전인 계열사가 대부분이다. 1심에서 노조가 승소한 현대다이모스 등 3개사는 노조원이 1천800명에 불과해 최종 승소한다 해도 노조가 주장하는 재원을 마련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여기에다 적립금 200억원도 매년 임금인상을 전제로 한 것으로 노조가 부담할 100억원은 성과급과 임금 상승분의 1~2%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고통분담 의지에 대한 진성성은 없어 보인다.

이러한 노조의 요구는 사실상 회사가 5천억원 전액을 부담하라는 것과 다름없다. 마치 노조가 통 큰 양보를 하는 것처럼 보이려 했겠지만 대중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이런 생색내기에 급급한 쇼를 기획했을까. 실체가 없는 무형의 권리를 팔아먹겠다는 것인데 마치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물을 팔아먹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봉이 김선달 이야기는 평양 출신의 김선달이 자신의 능력을 펼치기 위해 서울에 왔다가 서북인 차별 정책과 낮은 문벌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휘젓고 다니며 권세 있는 양반, 부유한 상인, 위선적인 종교인들을 기지로 골탕을 먹이는 여러 일화들로 유명하다.

그러나 김선달과 금속노조가 우리에게 주는 웃음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그 목적이 다르다는 점에서, 문학적 세계와 현실 세계라는 차이에서 김선달의 행동은 통쾌한 웃음을 선사하지만 금속노조의 행동은 어처구니없는 실소와 함께 불쾌감을 주고 있다.

금속노조는 국내 최대 산별노조로서 산업계에 큰 파급력을 미치는 만큼 언행에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법원도 쉽사리 인정하지 않고 있는 통상임금 체불임금을 마치 따 놓은 당상인 양 선물(先物)처럼 거래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국민들을 불쾌하게 만들고 노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준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더구나 조합원 민심이 중요하다고 입버릇처럼 주장하던 노조가 조합원들의 동의 절차도 거치지 않고 주머니를 털겠다는 발상을 한 사실도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 오죽하면 현대차 노조 등 현장 노동조직들조차도 작심한 듯 비판을 퍼부었을까.

정말 의지가 있다면 우선적으로 노조 내부에서 공론화 과정을 거쳐 공감대를 형성하고, 조합원들이 온전한 제 주머니를 털어서 2천500억원이라는 현실적 재원을 마련하는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정규직 노조가 진심으로 기득권 양보와 고통분담을 결정한다면 국민들은 열렬한 지지와 박수를 보낼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주복 편집국장>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