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인물 홀대론과 울산항만공사 사장 선임
지역인물 홀대론과 울산항만공사 사장 선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11.04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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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역대 제왕 중 인재를 아끼고 적재적소에 임용한 임금이 바로 세종이다. 신숙주와 함께 세종시대를 대표하는 학자이자 정치가인 정인지는 학문적 능력에 비해 관리(官吏)형은 아니었다.

정인지는 비상동원 훈련 중에 술을 마시거나 군기(軍旗)를 제대로 챙기지 않아 태종때 탄핵을 받고 처벌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세종은 정인지의 떨어지는 이재(吏才)를 버리고 학재(學才)를 택했다. 세종이 정인지의 이재를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를 한 번도 정치력을 발휘하는 승지(현 청와대 비서관)에 발탁 하지 않았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인재를 썩히지 않고 필요한 곳에 기용해 ‘적절한 곳에 이용’했던 세종의 지혜는 현대에 와서 지역 인물론으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현 중앙공무원 교육원장인 정장식 전 포항시장을 서너번 공식석상에서 만난 적이 있다. 제 14, 15대 포항 북 출신 허화평 국회의원을 통해서이다. 두 사람이 같은 지역의 국회의원, 시장이었던 만큼 가끔씩 회동이 있었고 허 의원의 소개로 그를 알게 됐다. 정장식씨는 지난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포항시장을 사임하고 경상북도지사에 도전 했으나 낙선했다. 명문대 출신에다 다양한 행정경력을 갖췄던 그였지만 당시 구미시장 출신이었던 현 김관용 경북지사에게 패하고 말았다. 그의 낙선 소식을 듣고 ‘아까운 인재가 좌초했다’는 느낌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현 정부가 들어 선 직후인 지난 3월 그는 차관급인 중앙공무원 교육원장으로 발탁됐다. 그의 탁월한 능력이 뒷받침되기도 했겠지만 포항 남 출신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 북 출신 이병석 의원을 비롯한 소위 친 MB라인의 추천설(說)이 파다했었다. 누가 뭐라던 간에 정장식 원장은 ‘지역 인물론’의 수혜자라 볼 수 있다. 대한민국 전체로 따진다면 정 원장보다 나은 인물이 없어서 그를 택할 것은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정장식씨가 중앙공무원 교육원장에 발탁된 배경에는 그를 아끼는 사람들의 ‘안으로 팔 굽기’도 일부 작용했으리란 추측은 그리 어렵지 않다.

지난 7월16일 3대 부산항만공사 사장으로 선임된 노기태씨도 지역 인물론의 혜택을 입은 사람이다. 전임 이갑숙 사장이 임기를 2년여 남기고 사임하자 사장 공모를 했는데 해운 관련 전문가, 지역 정·관계 출신 및 외부인사 등 8명이 응모했지만 결국 국토해양부는 노기태 사장을 선택했다. 노 사장은 사실 해운·항만 전문가라기보다 정치인이다. 제15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부산시 정무부시장을 거쳤으며 한나라당 재정위원장을 거치는 등 정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해운항만 분야로 따지면 비전문가란 얘기다. 노기태씨가 부산항만공사(BPA)에 공모했을 당시 부산 여론은 ‘지역 인물 기용’에 일률적으로 박자를 맞췄다. “지역 출신이여야 실정을 잘 안다”는 것이 그들 주장의 요지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한 직후 인 지난 5월 울산지역 여론, 언론은 ‘지역인물 홀대론’으로 들끓고 있었다. 지역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지지를 보내 현 정권의 출범을 도왔는데 그 많고 많은 ‘임명직 고위 공직자’에 울산출신 인물은 단 한명도 없다는 것이 당시 반발의 주요인이었다.

그런데 최근 울산항만공사 사장 선임을 앞두고 지역 언론, 여론이 보이는 반응은 참 괴이하다. 울산항만위원회가 추천한 UPA 사장 후보에 타 지역 기초단체장 출신, 해운·항만 관계자 등이 3명이고 지역 출신은 단 2명뿐인데 ‘지역 인물 기용’에 대해 일언반구 반응이 없다. ‘지역인물 홀대론’을 앞세워 정부를 성토하던 그 사람들은 모두 어딜 갔는가. 울산항만공사 사장이란 직함이 ‘별 볼일 없는 것’이어서 그들이 입을 다물고 있다면 더 이상 할말은 없다.

/ 정종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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