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악정재(鄕樂呈才)’ 바탕설화의 고장 울산
‘향악정재(鄕樂呈才)’ 바탕설화의 고장 울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6.25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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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음악인 당악(唐樂)과 구별하기 위해 우리나라 음악을 ‘향악(鄕樂)’이라 했다. ‘정재(呈才)’란 궁중의 음악과 춤을 일컫는 말이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조선시대 성현(成俔) 등에 의해 편찬된 《악학궤범》(1493)에서 자세하게 살필 수 있다. 대표적인 ‘향악정재’에는 용에 기초한 처용무, 학에 기초한 학무, 꾀꼬리에 기초한 춘앵전 등이 있다.

신라 제49대 헌강왕(재위 875∼886)이 개운포에 왔다. 일을 마치고 왕궁으로 돌아가려 할 때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끼면서 깜깜해져 길을 분간할 수 없었다. 일관이 동해용(東海龍)의 조화라고 알려줬다. 왕이 절을 지어주겠다고 하니 구름과 안개가 사라졌다. 동해용은 기뻐하며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왕 앞에 나타나 왕의 덕을 찬양하여 춤을 추고 풍악을 연주했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처용랑 망해사’ 이야기의 일부다.

울산 외황강 기수지역인 개운포는 처용설화의 발상지다. 처용문화제는 울산공업축제(1967∼1987), 시민대축제(1989), 처용문화제(1991∼현재)란 이름으로 지금까지 이어졌다. 개운포 부근에는 지금도 처용암, 처용리, 용연동, 용잠동처럼 용과 관련된 지명이 남아있다. 올해 ‘제51회 처용문화제’ 개최를 앞두고 있으나 관심이 점차 희미해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악학궤범》(1493)에는 동해용의 아들이 사람이 되어 춘 처용무가 전한다.

신라 제52대 효공왕(재위 897∼912)의 재위 5년째인 901년, 계변천신이 금신상(부처상의 또 다른 이름으로 ‘金神像’으로 기록되나 ‘金身像’이 설득력이 있음)을 입에 문 쌍학(雙鶴)을 타고 학성산에 강림했다는 설화가 생성됐다. 이를 후세에 계변설화라 했다. 《악학궤범》(1493)에는 쌍학이 등장해서 추는 탈 학춤인 ‘궁중학무’가 전한다. 《경상도지리지》(1425))에 쌍학이 등장하는 계변설화가 기록되어 있었지만 학자들은 궁중학무에 등장하는 쌍학과의 연관관계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1997년 필자는 계변설화 내용 중 쌍학을 바탕으로 울산학춤을 발표했다.

조선 제23대 순조(純祖·재위 1800∼1834)의 원자(元子)인 효명세자(孝明世子)가 어머니 순원숙황후(純元肅皇后)의 40세 생일을 경축하기 위해 나라에 진연(進宴)을 베풀었다. 이때 세자가 꾀꼬리를 소재로 만든 춤이 ‘춘앵전’이란 이름으로 전한다.

꾀꼬리는 부리가 붉지만 몸 전체는 선명한 노란색이어서 황의동자(黃衣童子)라고도 부른다. 여름철새로서 일정한 세력권이 있다. 자기 세력권에 들어오면 맹금류라도 공격한다. 다양한 울음소리로 의사소통을 한다. 불교민속에서는 꾀꼬리의 다양한 울음소리 중 하나가 마치 승려가 불경을 읽는 것처럼 들린다 하여 ‘불경(佛經)을 읽는 새’로 알려져 있다. 한자로 쓰는 ‘앵(鶯)’에는 ‘노랗다’, ‘깃이 아름답다’ 등의 의미가 있다. 앵삼(鶯衫)은 앵자(鶯字)가 의미하는 꾀꼬리의 노란색이 그 바탕이다.

‘황작함환(黃雀銜環)’이란 말에서 ‘황작’은 꾀꼬리를 말하며, ‘함환’은 옥구슬을 물었다는 말이다. ‘꾀꼬리가 옥구슬을 물었다’는 옛날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선공(宣公) 15년, 속제해기(續齊諧記)·몽구(蒙求=당나라 중기 李瀚이 지은 책)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울산 울주군 두서면 활천리에는 꾀꼬리를 연상시키는 전화앵 묘가 있다. 고려 명종 때의 문신 노봉(老峰) 김극기(金克己·1150경∼1204경)가 전화앵의 무덤을 찾아 ‘조(弔)전화앵’을 지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경주부 고적 조에는 노봉이 전화앵에 대해 지은 시가 전한다. 꾀꼬리를 소재로 한 춤은 중국이 역사적으로 앞선다. 일본에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효명세자 창작설이 있지만 이미 신라시대 전화앵이 선점했다.

지난 14일 한국도로공사는 경부고속도로 활천나들목(부산 기점 57.3㎞) 신설공사를 마무리 짓고 오후 3시에 개통했다. 활천리는 전화앵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이 있고 2002년 필자가 ‘전화앵제’를 처음 시작할 때 진혼제를 올린 마을이다. 당시 ‘일개 기생을 추모한다’느니, ‘전화앵은 울산사람이 아닌 경주사람’이라는 둥 세구삭반(洗垢索瘢=잘 보이지 않는 남의 흠결을 때를 벗겨서라도 찾아내 시비하는 것)하여 많이 지치기도 한 기억이 새롭다.

《악학궤범》은 조선 제9대 성종(재위 1469∼1494)의 명을 받아 성현 등이 백성의 가무악을 조사해 궁중악으로 정재화한 음악서이다. 당악 형식을 빌려 우리나라 음악을 집대성한 조선시대 음악서로 향악정재에 신라 혹은 울산과 연관이 있는 처용무, 학무, 춘앵무가 전한다는 것은 이채롭다. 이로써 울산은 악가무에서 뼈대 있는 고장이라 말할 수 있다. 늦었지만 고전에 바탕을 둔 지역적 악가무를 더욱 심도 있게 연구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지역 악가무의 가치를 알지 못하면서 다른 지역 것을 모방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오는 9월 14일부터 23일까지 ‘제26회 전국무용제’가 전국 16개 시·도 대표무용단이 참가한 가운데 울산문화예술회관 및 중앙광장 일원에서 열린다.

전국무용제 개최에 앞서 지역 무용인들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서라도 고전에 바탕을 둔 지역 춤에 대한 특강 등 지속적인 전문교육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조류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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