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絶壁)과 충(蟲)이 난무하는 세상
절벽(絶壁)과 충(蟲)이 난무하는 세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6.2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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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이들이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지만 세상은 단 한 번도 평등했던 적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오히려 21세기 들어 빈익빈(貧益貧) 부익부(富益富)를 포함한 불평등은 더 심해지고 있다. 불평등하다는 것은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싶어 하는 것, 즉 부(富)와 명예(名譽), 권력(權力)을 똑같이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의미이다.

어떤 사람은 부와 명예, 권력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어떤 사람은 적게 가졌거나 아예 가지지 못한 것, 이것이 바로 불평등이다. 그리고 이렇게 부와 명예, 권력이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현상을 ‘사회 계층 현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금의 대한민국이 ‘절벽(絶壁)과 충(蟲)이 난무하는 세상’이 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회 계층 현상이 왜 나타나는지에는 크게 두 가지 의견이 있다. 하나는 개개인의 능력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보는 의견이고, 다른 하나는 더 독한 막말로 관심을 끌려는 우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보는 의견이다. 필자는 후자에 관심이 많다.

한국은 제1차 경제개발 계획에 착수한 1962년부터 1991년까지 30년간 연평균 9.7%의 경이적 경제성장을 했다. 좁은 국토와 부족한 자원의 분단국이 짧은 기간에 선진국의 문턱까지 이르렀다. 정치는 제도적 민주화를 달성한 정도를 넘어 과잉 민주주의의 폐해를 걱정하는 단계다.

하지만 국운 융성기는 임계점에 다다른 것 같다. 30년의 고성장기 이후 1992∼2011년의 20년은 연평균 성장률 5.4%의 중성장기였다. 2012년부터는 3% 이하의 저성장기에 접어들었다. 조선, 철강, 화학, 자동차 등 주력 산업이 모두 휘청거리는 ‘산업절벽’, 성장이 정체되면서 일자리가 격감하는 ‘고용절벽’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미래도 밝지 않다. 규제와 인건비 부담 증가, 기업 경영권 방어를 위한 주식 매입으로 투자 빙하기가 찾아올 공산이 크다. 무차별 복지에 따른 재정적자 증가는 심각한 ‘재정절벽’을 불러올 수 있다. LG경제연구원은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20년대 1%대, 2030년대 0%대로 추락할 것으로 전망한다.

요즘 한국 사회에서 ‘벌레’가 아닌 사람이 없다. 독서실 앞에 모여 재잘재잘 떠드는 중학생은 ‘급식충’,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은 할아버지는 ‘틀딱(틀니 딱딱)충’이란다. ‘OO충’은 공부벌레나 일벌레처럼 어떤 일에 열중하는 사람들을 장난스럽게 놀리는 온라인 신조어였다. 하지만 이제는 오프라인까지 퍼져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비난하는 관용구가 됐다. 거친 표현으로 상대방을 규정짓고 편을 가르는 듯한 수사법이 확산되고 있다. 막말은 마약과 똑같아서 다음번에는 더 독한 막말을 해야 관심을 끌게 되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국민들의 기대 속에 출범한 문재인 정부와 상당수 여야 정치인의 경제관과 기업관은 세계의 흐름과 동떨어져 있다. 개혁의 개념도 주류 경제학자들과 다르다. 국민이 강도 높은 압박을 가해 정치권을 바꿔놓지 못하는 한 답답한 현 상황이 달라지기는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다.

기원전 146년 로마는 카르타고를 멸망시켰다. 로마군 총사령관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는 카르타고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역사가 폴리비오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지금 이 순간 내 가슴을 차지하는 것은 승리의 기쁨이 아니라 언젠가는 우리 로마도 이와 똑같은 순간을 맞이할 거라는 비애감이라네.” 우리 역사상 가장 번성하고 한때나마 중국에 기죽지 않고 살았던 ‘대한민국 69년’의 국운이 한계에 다다른 듯한 안타까움을 느낄 때면 스키피오가 말한 영고성쇠(榮枯盛衰)의 법칙이 떠오르곤 한다.

<신영조 시사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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