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 엿보기
‘참새’ 엿보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6.18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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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하고 자그마한 오죽(烏竹) 숲 속에 피파나무, 체리나무가 한 그루씩 심어진 화단을 가꾸고 있다. 오죽 숲에는 매일 참새가 날아들어 짹짹거린다. 인기척이 나면 모조리 동시에 날아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날아들기를 반복한다. 적을 때는 한두 마리지만 많을 때는 30마리가 넘게 무리를 지어 찾는다. 물과 볍씨를 일정한 장소에 꾸준히 놔둔 뒤부터는 개체수가 점점 늘고 있다. 그 중 한 마리가 언제부터인지 발가락 사이에 이물질이 끼인 채 날아다닌다. 망원경으로 자세히 관찰해보니 가는 비닐 줄이 발가락에 칭칭 감겨 있었다.

참새는 몸집이 작아 크기 비교의 기준이 된다. 작설(雀舌)은 참새의 혀를 말한다. 차의 잎이 참새 혓바닥만한 크기일 때 따서 제품으로 만든 것이 작설차(雀舌茶)다.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서식하는 텃새이며 주식이 볍씨로 사람과도 겹친다. 굵고 짧은 부리는 볍씨뿐 아니라 곡류를 까서 먹기에 알맞게 진화했다. 제주도 ‘초공본풀이’의 주인공 ‘자지맹왕아기씨’가 벼 두 섬을 깔 때, 욱면(郁面婢念佛西昇·삼국유사 권5)이 방아 찧는 것을 도와준 것이 참새다. 십자매, 금화조, 문조와 같은 관상용 새처럼 부리가 굵고 짧아 먹이를 까서 먹는 생태적 특징을 부각시켜 설화에 등장시킨 것이다.

참새가 가을 논에 무리지어 날아다니며 같은 장소에서 서로 짹짹거리며 우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무리를 짓고 합창으로 짹짹거리는 것은 포식자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이다. 사람이 사는 주택을 번식지로 삼고 번식기에 알을 5개 이상 낳고 2번 부화하는 것도 생존전략이다. 참새는 작아도 몸집은 제 몫은 한다. ‘참새는 작아도 알만 잘 낳는다’는 속담이 말해준다. 시어머니가 갓 시집온 몸집 작은 며느리를 보며 한 마디 던졌다. “아가, 아들 놓겠나?” 시어머니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며느리는 수줍은 듯 실눈을 뜨면서 “큰 무시(무우)를 자르면 속이 텅 비고, 참새는 작아도 알만 잘 깐답니다” 했단다.

참새는 민화, 부채 등 화조영모도(花鳥翎毛圖)에 친숙하게 등장하는 단골 소재다. 까치와 더불어 기쁨을 상징하는 새로 여겨지는 탓이다. ‘참새 작(雀)’이 관직을 의미하는 ‘벼슬 작(爵)’과 발음이 비슷해서 관직 등용을 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참새는 한 시대에 구황음식으로 좋은 사냥감이었다. 주로 겨울철에 잡아서 구워먹는다. 참새구이가 바로 그 식품이다. <규합총서>에 납향절식(臘享節食)의 하나로 먹는 시기와 잡는 방법, 조리법이 기록될 정도다. <향약집성방>에는 참새의 알·뇌·머리피의 약효가 기록되어 있고, <동의보감>에는 참새의 고기·뇌·머리피·암컷과 수컷의 똥이 지닌 약효를 소개하고 있다. 참새가 집안에 집을 지으면 가정에 평안과 기쁨이 온다든지, 걷는 참새를 보면 대과(大科)에 급제한다든지 하는 속신설(俗信說)이 있다. 근거는 ‘벼슬 작(爵)’과 ‘뛸 약(躍)’에 있다. 참새는 재빠름·시끄러움·경망스러움·변변찮음 등을 상징하면서도 백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참새는 벼와 조 등 가을작물을 쪼아 먹는 바람에 농부에겐 애물단지로 취급되어 허수아비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참새는 풍속화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혜원이 그린 풍속화 ‘이부탐춘(二婦探春)’에는 참새가 짝짓기 하는 장면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경복궁 단청(丹靑)을 참새가 더럽혀 철망(鐵網)을 치는 사례도 있었다.

참새가 뛰는 것을 ‘작약(雀躍)’이라 표현한다. ‘환희작약(歡喜雀躍)’은 참새의 행동에서 비롯된 사자성어다. 유치원 선생님이 ‘참새’라고 선창하면, 어린이들은 받아서 ‘짹짹’ 한다. 원아를 다른 새들을 제쳐두고 참새에 비유한 것이 정겹게 느껴진다.

196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초가를 슬레이트나 기와지붕으로 바꾸면서 서식환경이 멈칫했으나 참새는 잘도 적응해냈다. 기와지붕의 틈새에 둥우리를 짓고 산다 하여 ‘와작(瓦雀)’이란 별칭도 얻었다. ‘참새를 볶아먹었나, 재잘거리기도 잘 한다’, ‘참새가 아무리 재잘거려도 구렁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등의 말에서는 재잘거림이 부각된다. 일본 대중가요 엔카(演歌)에 주로 등장하는 참새(雀·すずめ·sparrow)는 비유적으로 수다쟁이(도지마 스즈메-堂島すずめ·都 はるみ·大阪しぐれ)로 표현된다.

참새는 한 시대를 풍미한 중국의 대약진운동에서 한때 박멸의 대상이 되었다. 참새가 벼를 주식으로 하는 바람에 쌀 수확량이 줄어든다 하여 ‘인민의 적’으로 간주해 퇴치 운동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해충이 창궐하자 참새 박멸 운동이 얼마나 무모한 행동인지 곧 밝혀지게 된다. 쌀 수확량에 방해가 되는 나쁜 새라는 점보다 자연생태계의 먹이사슬로서의 존재가치가 새롭게 부각된 것이다. 쥐나 모기, 파리도 같은 이유로 코너에 몰렸다가 원상으로 복귀했다.

참새는 연인을 상징하기도 한다. “하루 중에서 내 생각 얼만큼 많이 하나요? 내가 정말 그대의 마음에 드시나요?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귀여운가요?”(이선희·알고싶어요) “오늘밤은 어디까지 날 수 있나? 당신과 나는 오오사까 참새.(今夜は どこまで とべるやら ぁなたとわたしは 大阪すずめ”(永井みゆき·大阪すずめ)

하루에도 몇 번씩 관찰되던 가는 비닐 줄에 감긴 참새가 언제부턴가 보이질 않는다. 다행히 풀렸는지, 아니면 그 줄이 올가미가 되어 죽었는지 알 수 없다. 부디 살아 있었으면…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조류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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