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데 넘이가?” ④
“우리가 어데 넘이가?” ④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6.07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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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울의 골목길을 다니다 흙이 보이지도 않는 콘크리트 갈라진 작은 틈 사이를 비집고 나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작은 ‘풀’들을 종종 본다. 이들은 잘 가꾸어 화려한 꽃을 피운 화단의 장미보다 더 많은 의미를 느끼게 한다. 이런 습작시조가 저절로 나왔다.

<눈이 아프도록 고운 풀>

경기에 지고나면 선수들 풀죽지만

시멘트 틈 사이로 돋아난 작은 풀은

햇살을 받지 못해도 풀이 살아 꽃 핀다

‘풀’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울산의 들판에 지천으로 깔려 있는 잡초들도 풀이고, 종이를 붙이는 데 쓰는 풀도 있다. 옛날 출강 우리 집 마당에서 무명이나 명주실에 풀 먹이는 작업을 하던 어머니를 보며 자랐다. 입에 풀칠한다는 풀도 있다. 다림질 할 때도 풀을 쓴다. 그뿐 아니라, U20 월드컵 16강에서 탈락한 우리 어린 축구 선수들의 ‘풀죽은 모습’에도 풀이 있다.

이처럼 우리의 생활 주변, 그리고 문화의식에서 뗄 수 없는 것이 ‘풀’이다. 우리 조상들은 들판의 잡초가 빳빳하게 서 있는 데서 ‘풀’을 발견하고는 ‘서로 접착하여 빳빳하게 서게 하는’ 역할을 하는 모든 것을 ‘풀’이라고 이름 붙인 것 같다.

내가 대학 강의를 비롯하여 강연을 할 때면 종종 “63빌딩을 만드는 데 가장 많이 들어간 재료가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을 한다. 시멘트, 철근, 모래, 자갈 등의 대답이 나온다. 그런데 묘하게도 정작 가장 많이 들어간 물을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물은 시멘트, 모래 등 여러 재료들이 한 덩어리가 되도록 묶어 건물로 서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는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얼핏 생각이 나지 않은 탓이리라. 여기서 63빌딩 건축 재료로서의 물과 같이 ‘나와 너를 우리라는 한 덩어리로 묶어주는’ 정(情)도 이런 풀에 해당한다고 보아 무방할 것이다.

서양 사람들은 사람이 몸과 마음으로 구성된다고 하고 컴퓨터 언어도 2진법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몸, 마음에 더해 이 둘이 제 기능을 하도록 해주는 풀(≒情)의 세 가지로 구성된다는 의식이 있었다. 천지인(天地人) 삼재론으로서 인(人)에 해당하는 풀이 한류에 열광하게 하는 요소다. 앞 습작시조 제목의 ‘풀’이다.

좀 어렵게 설명하면, 「삼일신고」에서 삼진(三眞)인 성명정(性命精)과 삼망(三妄)인 심기신(心氣身)에서 말하는 기(氣)의 수준을 넘은 명(命)에 가까운 말, ‘생명에너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 3진법 컴퓨터가 개발되었고, 풀과 같은 조정자의 역할이 있으므로 알 수 없는 버그가 훨씬 줄어들 것이고, 그래서 앞으로 세계 컴퓨터 시장을 장악하게 될 것이다.

중세 오페라 관람 장면을 보면, 배우와 관객은 각각 떨어져 있고 최고의 호응이 기립박수다. 그런데 요즘 한류 공연장은 다르다. 가사의 의미를 모르는 외국 사람들도 배우나 가수를 따라 춤을 추고 환호를 한다. 느낌으로 한 덩어리가 되는 모습이다. 우리 고유의 마당극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배우와 관객의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관객이 대사에 참여하여 배우가 되고, 배우가 그런 언행을 즐기는 관객이 되어 서로 소통하면서 극을 진행하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더욱 돈독한 ‘우리’가 되게 하는 형식이다. 이것이 바로 풀의 역할을 알고 실천하는 우리 겨레의 정체성이다.

울산사람이 특히 정이 많다고 한다. 그러니 좀 어려운 주문일지 모르지만 ‘풀’로서의 정을 잘 활용하여 노(勞)와 사(社)가 ‘우리’로 한 덩어리 되는 노사문화, 인터넷 세상에서 정으로 뭉치는 사이버 협동조합 문화를 일으키는 선두주자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면 4차 산업혁명에서 가장 앞서가는 도시가 되어 울산공단이 다시 살아날 수도 있을 것이다. 울산의 ‘풀’을 살리자.

박정학 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전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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