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칼럼] ‘제대각시’에 대한 깊은 생각
[김성수 칼럼] ‘제대각시’에 대한 깊은 생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6.07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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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가면극에는 이름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영감, 할미, 첩 등 3명이 등장한다. 이들 3명의 등장은 처첩간의 갈등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남편과 아내 그리고 첩의 갈등관계는 경상남도무형문화재 제19호인 ‘가야진용신제’에서 찾을 수 있다. 수신인 황용(남편), 처(청용), 첩(청룡)의 이야기가 원동면지에 전한다. 한편 처첩간의 갈등이라는 기존의 해석보다 전승집단의 시대·사회적 성격과 공동체의식의 반영으로 보는 새로운 해석으로 접근하는 이도 있다. (임재해, 실천민속학연구 제29호)

가면극에는 ‘제대각시’라는 여성이 등장한다. 국어사전에는 제대를 ‘기생의 방언’이라 풀이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민속학 사전에는 “제대각시=수영 야유, 동래 야유, 통영 오광대, 마산 오광대놀이 따위에 등장하는 인물의 하나. 영감의 첩 역으로 할미 과장에 등장한다. [비슷한 말] 제밀집.”으로 나와 있다. 가면극에서 첩은 한 사람이자 동일인물이지만 이름은 각시, 제밀집, 용산삼개, 제대각시, 제자각시, 제밀주, 작은어미, 인천제물집, 덜머리집, 돌머리집 등으로 다양하게 부르고 있다.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정상박은 수영야류에 대한 글에서 “제대각시는 영감이 제물포에서 얻은 소실이란 말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고 적었다. (허만일『수영야류』, 2001) 박진태는 통영오광대에 대한 글에서 ‘제자각시’를 서술하면서 “저자각시인지 모르겠다. 시장에서 술장사를 하는 여자. 봉산탈춤의 ‘용산삼개 덜머리집’은 그런 여자이다. 또는 제물포댁(제물포댁) 각시인 듯하다는 의견도 있다. 영감의 첩으로 등장한다. 고성오광대에서는 저밀주 또는 제물집, 작은어미로 되어 있고, 수영야류에서는 제대각시로 되어 있다.” (허만일『고성오광대』2001)

“영감-할맘! 할맘! 내 말을 들어보게. 내가 할맘을 찾일랴고 인천 제물포까지 갔다가, 거기서 작은마누라를 하나 얻었네. 제대각시.” (동래야류 가면극 극본)

‘은율탈춤’에는 제대각시와 원숭이가 등장한다. 통영오광대에서는 ‘제자각시’로, 고성오광대에서는 ‘제밀주’ 혹은 ‘작은 어미’로, 마산오광대에서는 ‘인천 제물집’으로 표현한다. 강렬탈춤에서는 재물대감과 용산삼개가 등장한다. 재물대감은 일명 셋째 양반으로 인식하며 맏양반의 권유로 등장하여 장타령, 만수받이 무당굿, 부채춤, 병신춤, 무당춤을 추다가 쓰러지지만 다른 대감들이 소생을 빌자 살아나는 역할을 한다. 용산삼개는 강령탈춤의 6번째 과장인 영감할미 과장에서 젊은 시앗 역할을 한다. 꼭두각시놀음에는 돌머리집으로 등장하며, 제물은 재물로도 기록하고 있다. 사례를 살펴본 결과 한 역할의 이름이 제대각시, 제밀주 등 다양하게 부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한 여성을 두고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정확히 의미소(意味素)를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 이유는 구술(口述)과 구전(口傳)을 기술(記述)하는 과정에서 사음(寫音)의 영향이 미쳤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어원과 본질의 파악은 역할을 소화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공을 들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제대각시가 무엇인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지신밟기에 등장하는 양반, 각시, 종가도령 등 잡색을 마중물삼아 제대각시의 어원을 추정해 본다. 조대(措大)는 선비를 일컫는 한자어이다. 조대는 거드름을 피우지 않는 마을주민과 함께하는 남편과 아버지의 선비이다. 조대의 사례를 살펴본다.

“스님이 말하기를 ‘조대는 늙은 중을 놀리지 마시오’ 하였다. 僧曰 措大莫瞞老僧”(栗谷 李珥·1536~1584 - 楓嶽贈老僧 幷序) “문성공이 입산(入山)하였을 때의 시서(詩序)를 관찰하면 더욱 금방 분변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고승(高僧)과 문답(問答)할 때 고승이 반드시 조대(措大)라고 일컬었는데, 조대는 바로 사자(士子)에 대한 칭호이다. (文成入山時詩序觀之, 尤可立辨矣。其與高僧問答也, 其僧必稱措大, 措大乃士子之稱)” (숙종실록 12권, 숙종 7년 12월 14일)

노산문선 <설악행각(雪嶽行脚)>에는 노옹(老翁)이 “조대(措大)는 무슨 가구(佳句)를 얻었소”하고 묻는 것을 서술하고 있다. 열거한 사례에서 조대는 빈사(貧士)의 칭호, 서생(書生)의 칭호, 깨끗하고 가난하지만 청렴결백한 선비를 이르던 말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신밟기에 어울리지 않는 양반, 색시, 종가도령의 등장과 명칭은 형식에도 어긋나며 터무니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지역민과 늘 함께하는 조대, 조대각시, 조대도령은 지신밟기 행사에 자연스럽게 동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면극의 제대각시는 조대각시의 사음 과정에서 와전되어 활용된 것으로 보여 제대각시를 제외한 다양한 이름으로 사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연구에 대한 충동은 스스로 공부하는 과정에서 생긴다. 앞선 연구의 성과가 회의적으로 느껴질 때 본질 혹은 어원소 규명에 대한 충동은 더욱 절실하게 와 닿는다. 이러한 맥락의 연구가 부흥되길 간절하게 바란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조류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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