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위한 실내체육관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아이들 위한 실내체육관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7.06.0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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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남주 두남중고등학교 교장
 

두남학교(공립 대안학교) 자리에서 울산두남중고등학교가 새 출발을 다짐한 시점은 2017년도 새 학기가 시작된 지난 3월 1일. 교육부가 일반 중·고교 교육과정을 인정해주는 어엿한 ‘공립형 각종학교(各種學校)’의 모습으로 학교 문을 연 지 어느덧 3개월이 지났다. (‘각종학교’는 정규학교가 담당하기 어려운 특수한 분야의 교육을 실시하는 교육기관을 말한다.)

그 사이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궁금증도 풀 겸 무거운 짐을 두 어깨에 짊어진 우남주 초대 교장(58)을 그의 집무실(교장실)에서 만나기로 했다. 찾아간 때는 개교기념식(5월 23일)을 가진 지 열흘이 지난 2일 오후 3시 무렵.

학교의 주소 ‘울주군 두서면 구량차리로 16번지’라면 2009년에 폐교된 두서초등학교 두남분교가 있던 자리다. 그 이듬해(2000년)부터 지난해(2016년)까지 16년간은 단기위탁 대안학교인 ‘두남학교’가 터줏대감 노릇을 하던 곳이다.

두남분교 자리, 김지웅 교육감 詩碑도

언양에서 내려 다시 택시로 갈아탔다. 택시 기사분이 의외로 친절했다. 두남중고등학교를 방문하는 이유를 꼬치꼬치 묻기도 했다. 알고 보니 어릴 적 모교가 두남분교였다. “제 나이 쉰여덟, 두남분교 18회 졸업생이지요.” 그의 어조도 눈시울처럼 촉촉이 젖어들고 있었다.

교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검은 돌 8개가 나란히 키 재기를 하고 있다. 1개의 교적비(校跡碑)와 7개의 시비(詩碑)들이다. <두서초등-두남분교 터. 1950년 4월 20일 개교하여 졸업생 1,660명을 배출하고 1999년 3월 1일 문을 닫았음.> 울산광역시교육감 명의의 ‘교적비’에 새겨진 글이다. 당시 교육감은 일찍이 고인이 된 김지웅 선생.

시인 7명 중엔 지인이 절반을 넘었다. <치술령에서>란 시를 남긴 김성춘(당시 울산서여중 교장), <램프의 시>를 지은 이충호(현 울산예총 회장, 당시 울산고 교사), <개나리꽃>을 읊은 문 영(당시 성신고 교사), 그리고 <귀앓이>란 시를 남긴 김지웅(당시 교육감)이 바로 그들이었다. “시비가 아직도 남아있는 건 김 교육감의 유지를 기리는 뜻도 있을 겁니다.” 헤어질 즈음, 우남주 교장이 건넨 귀띔이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사랑”

학교를 소개하는 우남주 교장의 말씀 가운데 가장 많이 등장한 낱말은 ‘사랑’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사랑과 사랑의 질서라고 생각합니다. 학교 부적응도 가정에서의 사랑 부족에 기인하니까 말입니다. 사랑, 꿈, 가치, 능력- 이 4가지는 늘 강조하는 말이지만 그중에서도 손꼽으라면 ‘사랑의 인간상’을 으뜸으로 치고 싶습니다.”

유심히 살펴보니 학생들이 입는 티셔츠에 찍힌 문자나 학교상징 로고도 영자 ‘L.O.V.E’다. ‘사랑을 받고 사랑을 베푸는 사람으로 기르는 것’이란 우 교장 나름의 교육이념도, ‘사랑과 희망이 넘치는 행복한 학교’를 비전으로 삼은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았다.

처음 ‘두남분교’이던 학교 이름이 ‘두남학교’, ‘두남중고등학교’로 이어지는 것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남’ 자를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 교장의 설명이 그럴 듯하게 들렸다. 교장실 벽면의 설명용지를 가리켰다. 내용은 이 학교의 교육목표, 우 교장의 교육이념과도 결코 무관치 않았다.

■ 斗南(두남)= 북두칠성(北斗七星)의 남쪽 세상, 천지(天地), 곧 온 천하를 일컫는 말. ■ 두남받다= 도움, 사랑을 받다. 허물도 감싸는 남다른 사랑을 받다. ■ 두남두다= 사랑과 애착을 가지고 돌보다.

오전엔 정규과목, 오후엔 난타·암벽타기

두남중고등학교가 목표로 삼은 학급은 3개씩(중 3, 고 3)이고, 정원은 30명씩(중 30, 고 30)이다. 그러나 개교 시점엔 중학생 8명, 고등학생 8명으로 둘 다 합쳐 16명에 지나지 않았다.

3개월이 지난 인터뷰 시점엔 중학생은 8명, 고등학생은 6명으로 파악됐다. 작은 변화지만 고교생 2명이 줄어든 것이다. 이는 다른 학교에서 위탁교육을 의뢰해 오는 ‘수시위탁’ 학생 수의 증감과 유관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학교 학생은 성격에 따라 △스스로 지원한 신입생(7명)과 △다른 학교에서 전학 온 전입생(2명), 그리고 △수시위탁 학생(5명) 등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이때 수시위탁 학생은 공부에 전념할 의지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2주 전후의 적응기간을 갖는다.

교과 과정은 오전과 오후, 그 내용이 달라진다. 오전엔 국어, 영어, 수학, 사화, 과학 등 이른바 ‘정규과목(보통과목)’. 하지만 오후는 음악, 미술, 체육 중심의 신명나는 ‘대안과목’이 기다린다. “난타, 기타, 암벽등반에 드론 띄우기도 있지요. 제과·제빵 시간이 끝나면 학생들이 손수 만든 과자나 빵을 선생님들께 대접하기도 하고….”

 

▲ 금요일 오후 두남중고등학교 교직원들이 귀가하는 학생들을 배웅하고 있는 모습.

금요일 오후 돼야 기숙사생활서 ‘해방’

‘기숙형 대안학교’인만큼 학생 전원은 기숙사 생활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학생들은 모두 남학생이다.) 그러나 금요일 오후 수업을 마치고 난 뒤부터는 ‘해방의 기쁨’이 찾아온다.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오후 3시 30분쯤, 우 교장이 인터뷰를 하다 말고 교장실 밖을 가리키며 동행을 요청했다. 자그마한 전세버스 한 대가 대기 중인 학교정문 근처에는 교직원들이 먼저 와 있었다. “금요일 오후마다 볼 수 있는 장면이지요. 아이들한테 무사히 잘 다녀오라고 인사도 하고 격려도 하고 그러지요.”

이 학교의 교사는 학생 수와 맞먹는 14명. 자원교사가 12명이나 된다는 사실은 큰 자산이다. 여하간 ‘한 학급 2 담임제’가 그래서 가능하다. 수업 도중 힘들어하는 학생이 생기면 교사 1명이 그를 책임지고 돌보는 시스템이다. 계약직, 자원봉사자까지 합치면 학교 운영을 돕는 교육가족은 모두 34명. 이들 중 근처 ‘천전교회’의 목사 사모는 도서실 사서 업무를, 또 다른 분은 상담 업무를 ‘자원봉사’ 개념으로 감당해낸다. 든든한 원군들이 아닐 수 없다.

주말을 집에서 보낸 학생들은 월요일 오전 다시 학교로 돌아온다. 전세버스는 울산대공원 동문 등 2곳을 차례로 돌며 이들을 맞아들인다. 하지만 드물게 애를 먹이는 학생도 없진 않다. “직장을 가진 어머니가 아들을 깨워놓고 나갔는데도 계속 잠에 빠져들면 어쩔 도리가 없을 때도 있답니다.” 그럴 땐 비상수단이라도 동원해야 할 판이다.

부모의 ‘과잉기대’나 ‘방치’가 비행 원인

“80%가 가정문제 때문으로 보입니다.” 학교 부적응 학생 대부분이 가정문제에서 비롯된다는 얘기였다. “부모가 있는 학생들은 2가지 이유에서 빗나가는 경향이 있지요. ‘과잉기대’ 아니면 ‘방치’, 둘 중의 하나인 셈이지요.”

그래서 이 아이들들 다독거릴 인력이 필요하다. 전문상담교사, 상담사, 임상심리사가 이들을 ‘케어’하고(돕고), 분노 조절도 전문성 있게 뒷받침한다.

기숙사 생활 부적응 문제도 학교에서 해결해야 할 대상이다. 일반학교에 다닌 적이 있는 학생은 대부분 관심이나 배려 밖에 있었고 학교 측도 ‘통제 불능’이라며 내버려 두었으니 구속된 생에 익숙지 못한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 그러나 기숙사 생활 3개월을 넘긴 지금은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일 뿐이지 싶었다.

우 교장의 가슴 속에 아직도 맴도는 제자가 있다. “게임 중독에 빠졌던 한 아이 얘깁니다. 학교에 와도 잠이나 자고. 워낙 사교성이 없다 보니 도피처로 게임에 매달렸던 모양이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이 두남에선 달라지겠지 하는 생각에 우리 학교로 보낸 뒤엔 수시로 전화로 용기를 북돋아 주곤 하는데, 아이가 실제로 많이 달라졌답니다.”

힘을 얻은 두남중고등학교는 학생들의 휴대전화 문화도 바로잡아주고 싶었다. “최근엔 하루 1시간만 허용했더니 아이들이 ‘시간을 더 늘려 달라’고 아우성인 모양인데, 전향적으로 검토해볼 생각입니다.” 그 대신 다양한 학습효과도 겨냥하고 있다. 정원 가꾸기, 텃밭 가꾸기도 그런 시도 중의 하나다. 학생들의 적성을 파악해서 재능을 키워주는 것만큼 값진 교육이 어디 있겠는가?

감리교회 장로 봉직… 기독정신으로 이바지

2014년부터 한동안 울산시교육청 ‘학업중단 예방 팀’ 소속 장학사로 재임한 경력이 있다. 그 덕분인지 연간 700명을 넘어서던 울산지역의 ‘학교 부적응→중도탈락’ 학생 수가 2015년엔 375명으로 줄었고 그 추세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니 참 다행한 일이다.

“아이들에게 졸업장을 꼭 쥐어주고 싶어요. 사회에 나갈 때 졸업장이 있고 없고는 엄청난 차이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오늘도 교직원들과 한마음이 되어 머리 맞대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아직은 아쉬운 것이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간절한 소망은 학교 안에 터를 장만해둔 실내체육관을 멋지게 지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장 예산 확보가 걱정이다.

태어난 곳은 부산시 연산동. 경상대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1985년 9월 밀양고등학교 교사로 교육계에 첫발을 디뎠다. 자택은 남구 무거동이지만 남구 야음사거리 근처에 있는 울산감리교회에서 장로로 봉직하고 있다. 학생들도 기독교정신으로 무장시키고 싶은 욕망이 있다. “깊은 사랑의 뜻이 모인 이곳/ 함께 사랑과 꿈을 가꾸어 나가자…”로 시작되는 2절로 구성된 교가(校歌) 가사도 그런 마음으로 손수 지었다.

소중하게 받드는 성경 말씀이 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한복음 6장39절)

글·사진=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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