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날까지 멋있고 폼나게”- 울산 북구 송정동 성인문해 강사 김말순씨
“사는 날까지 멋있고 폼나게”- 울산 북구 송정동 성인문해 강사 김말순씨
  • 윤왕근 기자
  • 승인 2017.05.25 22: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년째 어르신 한글교실 지도… 만학의 꿈 이끌어
“어르신들에게 한글을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글을 익히는 것을 넘어 평생의 한을 푸는 것과 같습니다.”

울산시 북구 송정동 주민센터 취미교실에서 성인문해 강사로 일하고 있는 김말순(57·사진)씨의 말이다.

현재 김씨가 가르치고 있는 어르신 학생 30여명 중 대부분은 70대로 고령의 나이임에도 학구열 하나만큼은 고3 수험생 못지않은, 아니 그것을 뛰어 넘는다고 한다.

김씨는 “하루는 한 학생의 남편이 성인문해 교실을 찾아온 거에요. 알고보니 화봉시장에서 형부와 함께 장사하는 언니(말순씨는 학생들을 언니라고 표현했다)가 좌판을 그대로 펼쳐두고 수업 들으러 온거에요. 도대체 수요일 오후만 되면 사라져서 어딜 가는지 형부가 따라 와본거죠. 글을 익히겠다는 언니의 열정을 확인한 형부는 이후 수요일 오후마다 혼자 장사를 하며 엄청난 지원군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교회 주일학교 선생님 등을 하며 누군가를 지도해 더 나은 방향으로 안내하는 것에 대한 매력을 느낀 김씨는 평생교육진흥원에서 성인문해 강사 자격증을 취득, 2010년부터 북구가 추진하는 ‘찾아가는 한글교실’을 통해 어르신들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7년 동안 어르신들을 지도한 김씨는 이들에게 글을 익히는 것은 단순한 ‘문자 해독’이 아니라 굴곡진 인생의 한을 푸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김씨는 “어떤 학생은 직장에서 일을 잘해 반장까지 하는 등 인정을 받았다고 해요. 그런데 어느날 직장 상사가 서류 하나를 들이밀며 작성해오라고 한 모양이에요. 글을 몰랐던 언니는 굉장히 당황했고 급기야 속옷을 찢어 손가락에 감은 뒤 ‘손을 다쳐서 글씨를 못쓰겠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합니다. 살면서 가장 창피하고 서러웠던 순간이었던 거죠”라고 말했다.

이 같은 사연들이 있는 학생들이 글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인생이 달라지기도 했다.

김씨는 “북구에서 흔히 ‘화가 할머니’로 불리는 황정심 언니는 주민센터에 나오면서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지역 시화전 대회에서 수상도 하고 이름을 날렸죠. 정심언니처럼 대회에서 수상을 하지 않아도 명절에 아들부부나 손자가 오면 그냥 용돈만 주고 말던 것을 손편지와 함께 줘 아들 가족이 감동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김씨의 목표는 “고령화시대잖아요. 살 날은 길어지는데 멋있게, 폼나게 살아야 한다고 항상 강조합니다. 앞으로 학생들의 자존감을 더 높이기 위해 문예 관련 전시회나 대회에 나갈 겁니다. 수상은 중요하지 않아요. 누군가 자신의 글을 보고 반응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격할 분들이에요. 그걸 도울 생각입니다”라고 말했다.

윤왕근 기자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