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각화의 박물관 이전’ 공청회
‘암각화의 박물관 이전’ 공청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5.22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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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하면 아마도 곧바로 떠오르는 것이 피라미드일 것이다. 울산 하면 반구대 암각화가 곧장 떠오르는 것을 기대해 본다.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웠다는 기원전 2333년보다도 무려 700년이 앞선 기원전 3000년경에 시작된 이집트 문명은 이후 3000년 동안 독보적인 제국을 유지하다가, 멸망한 뒤로 다시 20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들이 남긴 업적이 웅장한 유적 형태로 전 세계인에게 감명을 주고 있다.

람세스 2세는 3000년 고대 이집트 문명사에서 가장 위대한 왕으로 꼽힌다. 80년 재위하는 동안 일군 영토는 현 이집트 영토는 물론이고 수단, 시나이반도, 이스라엘, 시리아, 터키 근처까지 이른다. 그는 정복만 한 군주가 아니라 아름다운 건축물을 세워 이집트 문명의 위대함을 역사에 각인시켰다. 134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카르나크 신전의 한 개의 기둥 높이가 24미터로 6층 건물 높이와 맞먹는다.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이란 불리는 태양신을 상징하는 오벨리스크는 30~40m에 이르는 돌덩이를 통째로 깎아 만들었다. 람세스 2세는 자신과 사랑하는 아내 네페르타리와 자녀들이 새겨진 아부심벨 신전을 남쪽 아스완 지역에 기원전 1250년에 지었다. 그가 앉아있는 거상만 높이가 21미터 정도로 이집트 문명의 찬란함을 증명하는 최고의 구조물이다.

3000년간 위용을 자랑하던 아부심벨 신전이 1960년 나일 제1폭포 쪽에 있는 아스완댐의 확장공사로 수몰 위기에 처해졌다. 인류의 문화유산이 물에 잠기는 것을 가장 두고 볼 수 없었던 기관이 바로 유네스코였다. 유네스코는 신전을 안전한 지역으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필요한 기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전 세계인이 돈을 냈다. 현 신전은 원래 수몰된 지역으로부터 고도가 60미터 정도 높은 지역으로 옮겨져 해체·복원되었다. 원래의 람세스상이 바라본 방향이 복원 과정에서 조금 틀어졌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어쨌든 전 세계 사람이 힘을 모아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을 지켜냈다는 점에서 유네스코는 자부심을 갖는다.

이와 대조적으로 울산의 보물이자 세계의 문화유산인 반구대 암각화는 세상에 알려지자마자 탁본한다고 방망이로 맞는 신고식을 호되게 치르는 것도 모자라 45년간 물속에 잠기기를 반복하면서 피부가 옅어질 대로 옅어진 상태에서 각종 중금속으로 오염된 먼지와 비바람으로 이목구비가 없는 민낯으로 점차 사라지고 있다. 조만간 울산시가 ‘생태제방안’을 문화재위원회에 상정한다고 한다. 생태제방안은 2009년과 2011년에 문화재위원회로부터 2차례 반려되었다. 지난해 9월 국회에서 열린 반구대 암각화 보존 심포지엄에서 “생태제방으로 하게 될 경우 암각화 훼손은 불을 보 듯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자신만만했던 신공법 카이네틱댐 방식은 혈세보다 더 아까운 시간만 날리고 실패했다. 여기에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채, 이번에는 그라우팅과 파치 공법으로 보완한 새로운 생태제방안이라 자신하면서 ‘삼수’에 도전하고 있다.

암각화 보존을 위해서는 늘 신공법과 새로운 방책을 모색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검토한 것은 ‘수위조절, 유로변경, 생태제방’ 세 가지뿐이다. 수위조절은 태풍과 집중폭우에 속수무책이다. 생태제방은 제방의 영구적 안전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다. 유로변경은 4대강 준설처럼 막대한 돈이 들어가지만 검증된 사례가 없다. 이들 세 가지 모두 지진과 태풍에 속수무책이다. 유네스코가 찾은 ‘아부심벨 이전안’이든 ‘라스코 동굴 복제안’ 내지 가장 보편적인 ‘박물관 이전안’ 등 왜 제3의 대안은 검토되지 않는가. 콜럼부스가 사람들에게 물었다. “여기에 있는 이 달걀을 세울 수 있습니까?” 다들 불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달걀을 삶아서 밑을 좀 깨뜨리면 세울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 해법은 있다. 발상을 바꾸면.

박물관 보존안은 세계 고고학계의 일반적 추세이자, 지진과 태풍에 안전하고 ‘고질적인 식수문제’와 ‘영구보존’ 문제를 동시에 풀 수 있는 일석삼조의 해결방안이다. 높이 4미터, 폭 10미터의 반구대암각화보다 훨씬 크고 복잡한 구조물인 높이 10미터, 정면 길이 30미터의 제우스 신전과 높이 14.7m에 너비 15.7m의 바빌론 이시타르 문의 진품이 베를린페르가몬박물관에 있다. 유네스코는 문화유산의 관광개발에 전혀 관심이 없으며, 등재의 기준 역시 영구보존에 있기에 아부심벨 신전을 이전시켰다. 무조건 원래 장소에 있어야 한다고 고집했다면 아부심벨은 이미 수장되었다.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규정으로 문화재가 손실된다면 등재 취지와 배치된다.

유네스코는 앞뒤가 막히지 않았다. 그래서 등재 조건도 시대와 함께 변화해 왔다. 우리의 발상도 변해야 한다. 인류의 보고인 반구대암각화는 한국인의 방치와 무능으로 소멸 위기에 처해 있다. 지진으로 첨성대가 3.8cm 기울어졌다. 강진으로 암각화와 첨성대가 무너진 뒤에야 불탄 숭례문을 복제·복원하듯 할 작정인가. 외양간 고치기 위해 소 잃어볼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제3의 암각화 보존안 공청회를 제안해 본다. 암각화를 보존할 시간이 더는 없다.

<임현철 울산시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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