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데 넘이가?” ①
“우리가 어데 넘이가?” 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5.18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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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에 우리 겨레는 혹독한 일제의 식민통치와 동족상잔의 6·25전쟁에 이은 남북 군사 및 이념 대치 속에서도 반세기 만에 올림픽을 개최하고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 되는 한강의 기적을 일구었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저력으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몸으로 체험했다. 특히 영국이 200년, 미국이 180년, 일본이 100년 걸려 이룩한 산업화를 우리는 30년 만에 달성하였다는 데서 민족 저력이 두드러진다.

세계의 수많은 민족들은 민족마다 얼굴 생김새와 생각하는 사고방식과 DNA가 서로 다르다. 우리 겨레도 다른 겨레와 다른, 영국인이나 미국인, 일본인들이 가지지 못한,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무엇이 있기에 그런 저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

혹자는 이것을 일본인들에게서 배운 베끼기 기술 때문이라고도 하지만, 단순히 소질이나 의지, 노력만으로 이렇게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지금 세계인들을 열광시키는 한류 속에 들어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것은 ‘우리’라는 말 속에서 찾았다.

어릴 적 삼동면에서 자라면서 ‘우리가 어데 넘이가?’ 하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리고 평소에 우리 집, 우리나라, 심지어 ‘우리 마누라’라고 할 정도로 우리는 ‘우리’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통계자료는 없지만 특히 울산 사람들이 많이 쓰는 것 같다. 지금 내가 여기까지 글을 쓰면서 ‘우리’라는 단어를 15번이나 쓴 데서도 증명된다. 이처럼 우리는 평소에 스스로 잘 인식도 못하는 사이에 ‘우리’라는 말을 많이 쓰는 민족인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얘기가 있다. 주한 미상공회의소장을 오랫동안 역임하고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다고 자부하는 제프리 존스는 『나는 한국이 두렵다』라는 책에서 “내가 처음 한국에 올 때 비행기 속에서 앞에 앉은 두 사람이 ‘우리 마누라’라고 대화하는 것을 듣고, ‘어, 저 두 사람이 한 여자를 공동 부인으로 두고 있나?’ 하는 생각에 크게 놀랐었다. 영어에는 ‘우리’라는 의미에 딱 들어맞는 단어가 없기 때문이다”고 실토했다. 우리가 쓰는 ‘우리’라는 단어가 우리 겨레만 가진 우리 겨레 고유의 특성을 나타내는 말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우리가 많이 쓰는 ‘우리’라는 말은 영어의 ‘we’처럼 단순히 너와 나를 포함하는 여러 사람을 뜻하는 복수가 아니라, ‘나와 너가 어우러져 하나가 된 상태’를 나타내는 단수다. ‘우리들’이라고 해야 영어 we의 의미에 가까울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나와 너가 경쟁의 관계인 남남이 아님은 물론, 나를 여러 명의 너까지 포함하여 큰 하나(大我)로 확장시켜 협력, 협동, 화합, 조화를 이루는 ‘어울림’ 문화 의식을 나타내는 말로서 우리 겨레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말인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온 인류가 서로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라 어울림을 통해 함께 잘 살아가야 한다는 어울림 사상을 나타내는 말로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의식이 우리의 말과 글과 노래와 춤과 드라마와 새마을 운동 등 모든 문화에 스며들게 된다. 현재 세계가 앓고 있는 1%:99%

라는 극단적 양극화에 염증을 느끼는 세계인들이 그것을 가져온 무한경쟁이 아닌 ‘어울림’을 바라고 있기 때문에 한류에 열광하며, 그래서 게오르규가 말한 ‘미래 인류구원의 이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새 정부의 지도자들이 이런 점을 알고 강대국 지도자들과 당당히 만나 이런 점을 강조했으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다음에는 이렇게 어우리지게 하는 힘, ‘우리’가 되게 하는 힘이 무엇인지를 소개하겠다.

박정학 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역사학 박사·울주 삼동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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