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용의 글로벌시대] 세계인의 날과 무지개 나라 한국
[이희용의 글로벌시대] 세계인의 날과 무지개 나라 한국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5.18 21: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몽골에서는 한국을 ‘설렁거스’(무지개 나라)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불리게 된 데는 여러 설이 있는데, 전 한국에서 그 해답을 찾았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가 승무원이셨던 덕에 8살에 처음 한국을 방문한 저는 알록달록한 빛깔과 화려한 간판들, 생기와 개성이 넘치는 사람들로 붐비는 밤거리 풍경을 보고 입이 쩍 벌어졌습니다. 그 광경은 형형색색의 빛깔이 어우러져 하나의 큰 무지개를 형성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엄마와 한국의 어느 거리를 걷다가 양초를 구워 먹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한국 사람이 즐겨 먹는 가래떡이었습니다. 29살이 된 저는 한국에서 이화여대 대학원 사회복지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밟으며 무지개 사회를 이루는 한 명의 사회구성원이 돼 살고 있습니다. 한국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무지개처럼 다양한 색을 지니고 있으면서 서로 더불어 살며 찬란한 역사를 이뤄냈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특정한 색이 돼라고 강요하거나 어떤 색은 나쁘다고 규정해 무지개 시민들의 고유한 색이 변질되는 것입니다. 이민자 200만 시대를 맞아 각자의 빛깔을 소중히 여기고 조화를 이뤄야 더욱 아름다운 무지개를 이룰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글은 제10회 세계인의 날(Together Day) 기념 수기 공모에서 재한외국인 부문 최우수작에 뽑힌 몽골 유학생 바차이칸 아누 씨의 ‘무지개 나라 한국’을 간추린 것이다. 그를 비롯해 한국을 어머니의 집처럼 편하게 느낀다는 미국인 영어강사, 흑인 친구가 차별을 견디다 못해 고향으로 돌아간 사실을 안타까워하는 몽골 유학생,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사랑받는 아내이자 며느리가 된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 중국동포(조선족)들의 이미지 개선에 앞장서는 동포 3세 여성 상담사, “배워서 남 주자”란 목표 아래 주경야독을 하는 미얀마 출신 노동자, 무지개청소년센터에서 꿈을 키우고 이제는 멘토로 활약하는 중국 유학생, 한국에서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려고 열심히 봉사활동에 나서는 러시아 유학생 등이 입상의 영예를 안아 19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열리는 세계인의 날 기념식에서 상을 받는다.

우리나라는 내국인과 외국인이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며 지내는 사회환경을 만들자는 취지로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2007년 5월 17일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을 제정해 그해 7월 18일부터 시행해왔다. 이 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외국인 정책을 수립해 시행할 것을 의무화한 것을 비롯해 국무총리 소속 외국인정책위원회 설치, 재한외국인과 자녀 차별 금지, 외국인이 대한민국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교육·정보·상담 지원, 다문화 이해 증진을 위한 노력 등을 규정하고 있다.

정부는 법 19조에 따라 5월 20일을 세계인의 날, 이로부터 1주일을 세계인 주간으로 각각 정해 이듬해부터 기념하고 있다. 2006년 3월 이민정책포럼에서 명칭과 날짜를 논의할 때 차별 요소가 있는 ‘외국인의 날’ 대신 ‘세계인의 날’로 명명했다. 또 유엔이 2002년 ‘세계 문화다양성의 날’로 제정한 5월 21일이 가장 적합한 것으로 조사됐으나 ‘부부의 날’과 겹쳐 하루 전날인 5월 20일로 정했다. 올해는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 제정 10주년이자 제10회 세계인의 날을 맞는 해다. 세계 문화다양성의 날과 세계 문화다양성 주간은 2014년부터 우리나라에서 기념하고 있다.

80년대 중반만 해도 국내에 사는 외국인은 4만여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2000년 9월 50만명, 2007년 9월 100만명, 2013년 6월 150만명을 돌파한 데 이어 2016년 6월 200만명을 넘어섰다. 올 3월 기준으로 체류 외국인은 203만1천677명으로 10년 전보다 갑절 이상 늘어났다. 체류 외국인이 연평균 8%씩 증가해온 최근 추세를 감안하면 2021년엔 3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전체 인구의 5.82%에 해당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5.7%를 웃도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비율이 인구의 5%를 넘어서면 다문화사회에 진입한 것으로 본다.

인종과 언어, 전통과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어울려 살면 어색함이나 불편함이 따르게 마련이고 소통과 이해 부족에서 빚어지는 마찰과 갈등을 피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균질한 사람들만 모여 사는 집단은 퇴보와 도태의 길을 걷는다. 동서고금의 역사가 이를 웅변하고 있고, 근친혼이 유전병의 위험을 높인다는 것은 우생학적으로도 입증된다.

미국 미시간대의 스콧 페이지 교수는 ‘다양성이 능력을 이긴다’(Diversity trumps ability)는 이론을 창안했다. 덜 똑똑하지만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그룹이 똑똑한 사람들로 구성된 동질적인 그룹보다 더 높은 성과를 낸다는 뜻이다. 페이지 교수는 집단의 오류는 평균오류에서 다양성을 뺀 것이라는 등식도 제시하며 “다양성이 증가할수록 사회의 오류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그레그 재커리는 저서 ‘세계인으로서의 나’(The Global Me)에서 “다양성은 나라의 건강과 부를 결정짓는다”고 전제한 뒤 “이제 혼합은 새로운 표준이고 고립을 이기며, 혼합은 창의성을 북돋고 인간의 정신을 풍요롭게 하고 경제성장을 촉진한다”고 역설했다.

불가(佛家)에 “바보 셋이 모이면 문수보살의 지혜가 나온다”는 옛말이 있다. 일찍이 집단지성의 힘을 간파한 것이다. 지금까지 갈등 해결이나 문제 예방, 혹은 인권 보호 차원에서 이주민이나 다문화 자녀를 이해하고 포용하자고 권유해 왔다면, 이제는 실질적인 측면에서도 다문화사회로의 이행이 나라의 부강과 사회의 풍요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10회 세계인의 날과 세계인 주간, 그리고 세계 문화다양성의 날과 세계 문화다양성 주간을 계기로 “피할 수 없으니 받아들이자”는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 세계 각국 인력을 유치하자”는 적극적인 자세로 전환해보면 어떨까.

<이희용 연합뉴스 한민족뉴스부 선임기자>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