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과 교사의 자존심
스승의 날과 교사의 자존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5.1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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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임 발령지를 시골 작은 학교로 배정받아 근무했던 적이 있다. 작은 학교 관사에서 생활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네 주민들과는 늘 얼굴을 맞대며 지내야 했고, 학교 가까운 마을에서 출퇴근하시는 여러 선생님들로부터 김치며 밑반찬을 종종 얻어먹곤 했다. 하루는 퇴근 후(관사에서 생활하다 보니 퇴근이래야 이래저래 늘 학교 울타리 안에만 있는 셈이다.) 이른 저녁밥을 해 먹고 동네 마을길을 산책하러 나갔다. 마을 입구 조그마한 구멍가게 앞 평상에서 동네 주민들과 정말 잘 어울리시던 연세 지긋하신 선생님이 막걸리 한 주전자를 놓고 동네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김 선생님, 아직 저녁 안 드셨으면 이리 와서 막걸리라도 한 잔 하이소.”

초임 발령이라서 20대 중반의 나이다 보니 동네 어르신들의 연세가 그 당시 시골에서 할머님이랑 함께 사셨던 큰아버님 연세와 얼추 비슷한 분들이시라 무척이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 연세 많은 어르신들이 아직 20대 중반의 새파란 젊은 ‘초짜’ 신규교사에게 늘 존칭을 사용하시며 인사를 건넬 때마다 어쩔 줄을 몰랐다. 그 날도 어찌나 불편했던지 그 자리에서 “어르신, 편안하게 말씀하십시오. 말씀 낮춰서 해 주셔도 됩니다.”라고 했다가 다음날 그 선배 교사로부터 무척이나 따끔한 충고를 들어야만 했다.

“어제 기영이 할배가 김 선생님께 존대로 말을 한 것이나, 김 선생님 아버지뻘 되시는 다른 동네 어른들이 늘 하대를 하지 않고 높여 부르시는 것은 김 선생님 한 사람에게 하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 학교 선생님들 모두를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라며, “다음부터는 절대 말씀을 낮춰서 해 달라는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덧붙이는 이야기가 이랬다. “김 선생님,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라는 옛말이 있어요. 애들 가르치느라 애쓰다 보면 속이 다 타들어가서 지나가는 개들도 선생 똥은 맛이 없다고 안 먹는다고… 그만큼 애들에게 더 열성을 쏟아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 때 처음 접한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얘기는 젊은 혈기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깨우쳐 준 채찍과도 같은 이야기가 되었다. 그 날 이후 저녁 시간에는 동네 마을길을 산책하는 습관 대신 관사로 아이들을 불러 모자란 산수(지금은 수학으로 바뀌었다)며 국어 공부를 보충해서 가르쳐 주는 시간으로 바뀌게 되었다.

상호와 길동이, 해준이랑 명구, 그리고 현영이……. 저녁이면 조그마한 관사 방 안에 아이들이 가득 모여들어 공부 조금 하고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운동장에서 뜀박질을 하다보면 어느새 밤이 깊어 갔다. 이따금씩 아이들이 오면서 들고 오는 부침개나 찐 감자를 함께 나눠먹으면서 초임교사로서 열정 쏟는 법을 배워 나갔다.

지난 15일 월요일은 ‘김영란 법’이 적용된 이후 처음 맞이하는 스승의 날이었다. 텔레비전이며 신문 뉴스마다 ‘이번 스승의 날에 ○○은 되고 △△은 안 되고, 뭐는 어떻다’며 무척이나 시끌시끌하였다. 개도 안 먹는다는 그 똥의 주인공인 ‘선생’은 자존심으로 살아간다. 초임 시절 동네 마을 산책길에서 만났던 어르신들이 건네주신 그 존칭어에는 말 그대로 ‘선생님’의 자존감을 지켜 주시기 위한 깊은 뜻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꼿꼿하게 세워진 자존감으로 아이들을 더욱 열성적으로 지도하고 이끌어 달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을 것이다.

요즘이야 성과급이니 청렴이니 하면서 교육부며 교육청의 정책들조차 교단의 자존감을 은연중에 할퀴고 있는 실정이지만,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그 시절에는 선생님의 그림자조차 개도 함부로 밟고 다니지 않았을 것 같다.

김용진 울산 명덕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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