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노무현과 송기인 신부
문재인-노무현과 송기인 신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5.14 22: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과 함께 갑자기 매스컴을 타기 시작한 인물이 있다. 2005년 12월 사목(司牧) 일선에서 물러난 후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마을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는 송기인 신부(79)가 그 주인공. 그의 존재를 가장 먼저 부각시킨 언론매체는 중앙일보로 5월 13일자 1면에 ‘단독’ 꼬리표를 달아 머리기사로 내보냈다. 기사가 나가자 다른 언론매체들도 애써 지면이나 시간을 할애했다.

1938년 부산에서 태어난 송기인 신부는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도 ‘정신적 스승’이었다. 두 전·현직 대통령 모두 그를 ‘부산 민주화운동의 대부(代父)’로 깍듯이 모셨다. 1972년 사제 서품을 받고 곧바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 참여해 반독재(反獨裁) 투쟁에 뛰어들었고, 노무현 정부 시절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결과론이지만, 이 세 분의 인연은 대한민국 역사의 흐름에 굵은 획을 여러 차례 긋게 만든다.

노 전 대통령은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때(1982년) 송 신부를 처음 만났고, 그의 당부대로 이 사건 피의자의 변론을 맡는다. 1986년엔 송 신부의 집례로 세례(영세)를 받는다. 세례명은 ‘유스토(Iustus)’. 성인(聖人) 이름에서 따왔지만 라틴어로는 ‘정의’, ‘올바름’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나 세례를 먼저 받고 교리 학습을 나중에, 그것도 소홀히 받은 탓일까? 그의 신앙심은 깊지 못했고 끝내 ‘냉담자’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신앙은 격이 달랐다. 부산 영도 남항초등학교 3학년 때 영도 신선성당에서 세례를 받았고, 결혼식도 이 성당에서 올렸다. 세례명은 ‘디모테오’(=사도 바울로의 제자). 송 신부와의 인연은 세례미사 그 이전부터 시작된다. 송 신부의 회고다. “어머니(강한옥 여사, 90)가 내가 있던 성당(영도 신선성당)의 독실한 신자였어.”(중앙일보.5.13) “문 대통령 모친과 아주 오래전부터 친하다. 신선성당 주임신부로 있을 때 모친이 성당 사목위원회 부회장을 맡아 굉장히 열심히 활동했다.”(서울신문.5.14)

문재인과 노무현 두 전·현직 대통령의 만남 역시 송기인 신부가 다리를 놓았다. “문 대통령이 개업을 해야 하는데 돈 한 푼 없고, 사무실을 열 수도 없었어. 마침 노 변호사가 개업을 하고 있어서 같이 일을 시작하게 됐지.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있었던) 1982년 변호사 사무실에서 두 사람을 처음 만났고….”(중앙일보.5.13) “문 대통령이 사법시험에 합격했지만, 반정부(反政府) 시위 전력으로 판사 임용이 안됐어. 무일푼으로 변호사 길로 들어섰는데 그때 먼저 개업한 노 전 대통령을 소개했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함께 만났지. 민주화운동이 한창일 때였어. 젊은이들이 민주화운동으로 연행되면 두 사람에게 (변론을) 부탁하곤 했지.”(서울신문.5.14)

노(老) 신부는 전·현직 두 대통령의 성격차이도 스스럼없이 비교해 보였다. 중앙일보 기자가 두 분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문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보다 실수를 적게 할 거다. 그는 들어주는 힘이 있고 생각을 깊이 하기 때문에 부딪히는 일이 적을 것 같다. 들어주는 아량이 있다.” 중앙일보는 5월 13일자 인터뷰기사 제목을 <“문재인, 노무현보다 실수 적을 것”>이라고 뽑았다.

또 다른 분의 말도 듣고 싶었다. 문 대통령과 경남고 25회 동기이자 문 대통령이 한겨레신문 초대 부산지사장일 때 총무를 맡았던 송세경씨(65, 서울 거주, 구성애 여사 남편)는 친구의 성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차분했지요. 자기에겐 엄격하면서도 남들에겐 관대하고. 남의 말을 잘 듣는데 우유부단해서가 아니라 사고가 민주적이어서 그래요. 노무현 정부 땐 속 많이 썩었을 겁니다.” 문 대통령은 생활이 어려운 친구가 사람 치는 교통사고를 내자 비용 전액을 대신 물어준 일도 있었다는 게 그의 귀띔이었다.

<김정주 논설실장>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