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쇠부리축제, 철 문화와 지역의 역사를 한눈에
울산쇠부리축제, 철 문화와 지역의 역사를 한눈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5.11 21: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허어 불매야, 어~허어 불매야, 아야여로 불매야, 어~허어 불매야, 이 불매가 누 불매고, 어~허어 불매야’

쇠부리 불매소리가 북구청 광장을 채우고, 재현된 고대 제련로의 불꽃 열기가 축제장을 뒤덮는다. 제련로에서 내뿜는 열기와 초롱구멍으로 이글거리는 쇳물을 보면서 불매꾼은 더욱 힘을 내고, 불매소리는 드높아진다.

기원전 2세기부터 달천철장에서 얻은 철로 독창적인 철 생산기술인 쇠부리 문화를 만들어 낸 우리 조상들. 철장에서 얻은 철은 쇠부리길을 지나 곳곳의 쇠부리터로 전해졌고, 쇠부리꾼들은 인류 문명의 힘인 철기를 만들어 냈다.

우리 조상들의 얼은 지금까지도 쇠부리 불매소리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쇠부리 불매소리는 울산쇠부리축제로 이어져 벌써 13회를 맞았다. 12일부터 14일까지 북구청 광장에서 제13회 울산쇠부리축제가 열린다. 볼거리와 즐길거리에 먹을거리까지 풍성하게 준비하고 관람객을 맞을 준비를 마쳤다.

지난 시간 동안 쇠부리 콘텐츠는 더욱 다채로워졌고, 축제 규모도 커졌다. 지난해 처음 실시한 쇠부리 고대 원형로 복원 실험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학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올해 축제장에서 진행하는 실험에서도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 기대한다. 반복된 여러 차례의 실험은 울산쇠부리의 정체성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울산시 기념물 제40호로 지정된 달천철장은 울산지역이 철광석 생산지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생생히 보여주는 장소다. 현재 대규모 주거단지가 조성돼 있으나 일부 지역은 철 생산지였음을 엿볼 수 있는 장소로 남아있다.

특히 16~17세기 구충당 이의립 선생에 의해 토철제련법이 개발된 조선시대부터는 달천철장에서 생산된 철의 생산량이 전국 생산량의 1/5을 차지할 정도로 울산이 철 생산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일제에 의해 철장을 강제로 빼앗긴 후 토철생산이 종료되고, 1906년 일본인에 의해 광산채굴이 시작돼 소규모로 생산되다 197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철광석 채굴을 시작, 1993년 철광석 생산은 중단됐다.

울산이 우리나라 산업수도이자 중화학공업의 요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삼한시대 이후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철생산지인 달천철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며칠 전 쇠부리 학술심포지엄에 기조강연자로 참석한 울산대학교 양명학 명예교수는 달천광산이 흔적 없이 사라진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쇠부리축제를 열어 조상의 얼을 이어가려는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그는 역사적·문화적 차원에서 쇠부리축제를 울산의 대표축제로 키우기 위한 대대적인 예산 지원으로 전국을 넘어 국제적 축제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처럼 쇠부리의 역사·문화적 활용가치는 매우 높고, 동북아의 대표 축제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달천절장 유적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 차질 없는 유적 정비 사업으로 달천철장의 활용방안을 마련하고 문화재적 가치를 높여 울산쇠부리의 의미와 가치를 더욱 공고히 다져야 할 것이다.

올해 10월에는 우리 북구에서 전국적인 문화의 달 행사가 쇠부리를 주제로 열린다. 울산쇠부리를 전국적으로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문화의 달 행사의 성공적인 추진을 통해 울산 북구와 쇠부리, 이를 넘어 문화관광도시 울산의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12일부터 14일까지 유구한 철의 역사와 전통문화가 하나 되는 쇠부리축제장에서 시민 여러분 모두를 꼭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필자도 뜨겁게 녹아내리는 제련로 쇳물 앞에서 불매꾼들과 함께 땀 흘리며 관람객 여러분을 맞을 것이다.

박천동 울산 북구청장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