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편지] 무덤에 깃든 평화, 인도 타지마할
[길 위의 편지] 무덤에 깃든 평화, 인도 타지마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5.09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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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허공을 가득 메우는 꽃 봉우리처럼 흰 대리석의 신비로운 영묘(靈廟) 타지마할이 봉긋 솟아있다. 그 뒤로 야무나(Jamuna) 강이 흐르고 건너 저편 붉은 사암의 웅장한 아그라 성이 닿을 듯 그리움의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 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불멸의 사랑이 있는 곳, 열네 번째 아이를 낳다 죽은 왕비 뭄타즈 마할을 기리기 위해 만든 무덤, 타지마할. 지금은 흙더미로 내려앉아 먼지로 사라져버린 이슬람 무굴제국의 왕, 샤 자한의 집착과 광기 어린 사랑의 무게, 가장 무겁고도 무거운 세기의 사랑, 그 징표를 남겼다.

징으로도 깰 수 없는 대리석을 사포로 일일이 갈고 보석을 박아 새겼다. 해가 뜨는 아침에는 주홍빛으로 낮에는 백색의 성으로 석양 무렵이면 핑크빛으로 변하는 궁전, 한 시도 같은 풍경이지 않은 건축물이 경이롭다는 표현 말고는 떠오르지 않는다. 22년 동안 2만 명 인부의 공을 들여 무덤이 완성되자 샤 자한은 그들의 엄지손가락을 죄다 잘랐고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도록 설계자의 눈을 뽑고 사지를 잘랐다. 그 아름다운 대리석 무덤에는 뭄타즈 마할 뿐만 아니라 많은 석공들의 피도 함께 묻혀 있다.

건축 왕이라 불리던 샤 자한은 결국 돌덩이를 쌓아 올리느라 파탄 난 재정으로 그의 아들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폐되어 살아가게 된다. 다행히 평생을 그리워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은 부인의 묘, 타지마할이 보이는 아그라성의 왼쪽 한 방에서.

세계 여러 불가사의 건축물 중 하나인 이곳에는 건축물만큼이나 불가사의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방언까지 700여 개의 언어, 13억 세계 2위의 인구, 이슬람의 무굴제국이 망하고 영국 식민지에서 벗어난 것이 1947년, 아그라는 델리에 수도를 옮기기 전 1세기 가량 북인도를 지배했던 도시다.

호텔로 가는 차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있었다, 말로만 듣던 먼지와 경적소리, 그리고 길가에 밀쳐진 쓰레기더미들, 그 옆으로 오색찬란한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세계적으로 전기세가 가장 비싸다는 인도에서 몇 날 며칠 밤을 새며 열리는 결혼식의 하루 전기세가 수억 원에 이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입구 앞으로, 태어나 한 번도 씻어본 적 없는 듯 새까만 화석처럼 먼지더께 신은 맨발 아이들이 옷을 잡아당기며 따라다닌다.

여전히 존재하는 신분제, 봉건제, 불가촉천민. 금수저 은수저의 이야기가 한국보다 더 실감난다. 깨끗하고 예의바른 일본, 세련되고 여유로운 유럽, 활기차고 인간미 느껴지는 동남아, 그렇지만 대륙의 백분의 일도 보지 못한 인도지만 참 특별하게 다가오는 나라다. 그 수많은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불합리를 거스르지 않고 온순히 견디는 사람들, 선한 눈망울, 먼지와 강간, 식수, 소음, 청결, 여러 가지 이유로 인도 여행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여전히 세계인들이 가장 많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분명 있을 것이다.

타지마할의 입구에 서서 성을 정면으로 보고 있으면 좌우가 흐트러짐 없이 완벽한 대칭이고, 수백 미터의 연못에 반영되는 데칼코마니조차 한 치의 어김없이 대칭이다. 정교한 그 대칭의 그림자에 깃든 힌두와 이슬람, 종교의 비대칭, 언어와 인종의 비대칭, 무구한 역사의 끝없이 이어지는 비대칭의 이야기들을 담은 인도. 그 비대칭을 잠식하고 마음의 평화를 위해 여전히 줄을 서고 신발을 벗어 참배하는 인도 사람들. 그런 인도에 경이로운 건축물만큼이나 “그것이 바로 너다”라는 아트만의 진리를 찾아 자신 속의 신을 찾아 여행하는 인도 사람들이 있다. 불균형의 세상 그 경계에서 살아가는 모습, 조금은 너그러워지는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는 것도 만 가지 중 인도 여행이 주는 하나쯤 아닐까 여겨본다.

많은 철학자들의 경전이기도한 인도 고대 경전 ‘우파니샤드’는 산스크리트어로 스승과 제자가 곁에 두고 앉는다는 뜻을 가졌다.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과 끝에 스승과 제자가 함께 하는 ‘평화를 위한 낭독’이 있다. 브라흐만을 상징하는 ‘오움(om)’으로 시작해 마지막에는 ‘오움∼오움∼오움’으로 마무리한다. 평온을 세 번 외치는 것은 마음의 평온, 세상의 평온, 그리고 정신적인 평온, 이 세 가지 평온의 상태를 염원하는 것이다. 비행기가 이륙했다. 소금처럼 아스라이 뿌연 먼지 속 뜨거운 태양에 녹아내리는 흙빛 도시 델리,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그저 공평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최영실 여행수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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