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푸어와 타임푸어
워킹푸어와 타임푸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5.09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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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귀족노조에 가입하지 못한 한국의 샐러리맨은 일을 해도 생계가 유지되지 않는 ‘워킹푸어(근로빈곤층)’, 또는 저임금 때문에 장시간 근로로 때울 수밖에 없는 ‘타임푸어(시간빈곤층)’로 분류된다.

‘워킹푸어(Working Poor·근로빈곤)’는 일하는 빈곤층을 뜻하는 말로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계층을 의미한다. 월급이 나오는 일자리가 있어 얼핏 보기엔 중산층처럼 보이더라도, 고용의 유지가 불안하고 저축이 없어 갑작스런 병이나 실직 등으로 한순간에 절대빈곤층으로 전락할 위험이 높다.

그동안 2030세대는 근로빈곤의 위험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져 왔으나 최근 들어서는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의 청년실업이 구조화·장기화하면서 취업을 원하는 청년들의 처지가 곤궁해졌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들이 이러한 상황에 편승하거나 악용하여 노동시장에 신규로 진입한 사회초년생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사회문제가 됐다.

대표적인 수단으로 ‘열정페이(熱情Pay)’가 있다. 이는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 줬다는 구실로 청년 구직자에게 보수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주로 대기업 인턴이나 방송, 예·체능계에서 많이 나타난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돈을 적게 줘도 된다는 관념으로 기업이나 기관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경험되니 적은 월급(혹은 무급)을 받아도 불만 가지지 마라, 너 아니어도 할 사람 많다”라는 태도를 보일 때 이를 비꼬는 말이다.

이 말에는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구조로 치달은 사회 분위기에 대한 냉소가 담겼다. 오늘날 한국의 많은 청년들에게 워킹푸어의 처지는 벗어나기 어려운 굴레와도 같다.

‘타임푸어(Time Poor·시간빈곤층)’는 일하는 것 말고 어떤 것도 해볼 여유가 없는 사람들로서 시간이 없어 가난한 사람들을 지칭한다.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하루 24시간은 똑같다. 우리는 일하고 자신을 돌보고 즐기며 소비하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노동시간이 생활에서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돌봄·여가시간의 적정량이 채워지지 못해 시간의 균형이 깨졌을 때 우리는 ‘시간이 부족하다’라고 느낀다. 노동이 중심인 사회, 한국의 직장인들이 ‘타임푸어’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가장 오랜 시간 노동하는 나라 중 하나다. 지난해 OECD 발표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의 평균노동 시간은 2천113시간으로 세계 2위다. 회원국 평균 1천176시간보다 무려 347시간이나 길다.

연간 평균 실질임금은 회원국 평균 4만1천253달러(원화 5천957만원)인 데 반해 한국은 3만1천110달러(4천490만원)에 그친다. 하루 근무 시간을 8시간으로 봤을 때 한 달 13일을 더 일하고도 1만 달러 이상 덜 받는 것이다. 근무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필연적으로 일 외에 일상생활을 챙길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대선을 포함하여 2000년대 들어 정당과 정치인, 기업들이 발표한 일자리 창출 공약의 숫자를 다 더하면 한국 인구수보다 많다. 그런 이유로 필자는 “청년 일자리를 n만 개 창출하겠습니다”라는 공약이나 구호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번 19대 대선 당선자는 워킹푸어와 타임푸어에 대한 심화된 논의와 함께 청년고용과 관련한 실천적인 대책을 수립해 주기를 희망한다.

<신영조 시사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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