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모시 부으러 간다’는 말, 이제사 알았네!
‘달구모시 부으러 간다’는 말, 이제사 알았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5.08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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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기억이다. 어머니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외출을 하셨다. 목욕이 끝나면 뽀글뽀글 파마를 하시고 경대 앞에서 곱게 화장도 하셨다. 옷을 화사하게 입으시고 들뜬 모습으로 외출을 하셨다. 평상시의 어머니 모습보다 더 젊고 예뻐 보였다. 그때 어머니 나이를 계산해보니 30대 중반쯤이었다. “엄마 어데 가노, 내 따라가면 안 되나?” 대문을 나서는 어머니는 “오늘 달구모시 부으러 간다. 니는 따라오면 안 된다. 퍼뜩(빨리) 갔다올께, 집 잘 봐라.”

그렇게 어머니는 한 달에 한 번씩 곱게 차려입고 즐거운 모습으로 ‘닭 모이 주러’ 가셨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가 하신 ‘달구모시 부으러 간다’는 말씀이 필자의 귀에는 닭에게 모이를 주는 것으로 들렸다. 이상하다. 닭이 어디에 있기에 동네사람들이 한데 모여 닭한테 모이를 주는가? 그것도 모두 어머니와 비슷한 나이의 여자분들이…. 따라가지 못한 나는 못내 아쉬워 어머니가 길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 한참을 서서 바라본 기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달구모시 부으러 다니시던 어머니는 학가(鶴駕)를 타고 떠나신 지 오래되었다. ‘달구모시’가 ‘계(契)’라는 것을 지나치는 말로만 들었을 뿐 지금껏 정확한 어원은 몰랐다.

1999년 울산문화원(원장 서진길)에서〈울산승람〉(편집인 이용우·1954) 한 권을 구했다. 총 295페이지 분량의 복사본으로 1997년 11월 울산문화원(원장 박영출)에서 발행한 것이다. 필자의 관심분야는 7페이지(20∼26페이지)에 걸쳐 소개된 동물·식물·광물의 분포현황에 관한 자료였다. 특히 동물의 분포현황, 그 중에서도 학(鶴)에 대한 관심이 가장 컸다. ‘학은 청량과 범서에서 관찰됐다’는 사실을 두고 필자는 그동안 출처까지 밝히면서 매우 중요한 자료로 활용했다.

편집인 이용우가 누군지 궁금했는데 ‘인물로 읽는 울산유사’(경상일보.2016.5.30)를 보고 비로소 알게 됐다. 내용을 인용하면 이렇다. “이용우(李龍雨·1919~1983)는 울산군 대현면에서 출생했다. 해방 전후로 울산문화의 선구자로 활동한 인물이다. 1955년 그가 발간한 <울산승람>은 당시 울산에 산재해 있는 명소와 유적지, 세속과 풍습 심지어는 미역, 미나리 등 특산물까지 소개하고 있다. 또 울산의 철새 종류와 도래지도 정리해 놓아 요즘도 ‘울산 풍물의 보고서’로 불린다. 당시 중학생 신분으로 이 책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는 최종두 시인은 ‘해방 후 아직 문화에 대한 개념이 없을 때 울산문화의 총람서인 이런 책을 만들었다는 자체가 놀라운 일’이라고 칭송했다.”

2016년 12월, 울산 대곡박물관(관장 신형석)에서 지역사 학술자료집 『울산군향토지』(울산군교육회. 1933)의 국역본을 펴냈다. 향토지 발간 사업은 1932년 8월 당시 경남도의 지시로 시작됐다. 향토지 발간 팀은 먼저 울산군내 5개 소학교와 18개 보통학교를 읍·면 단위로 조사하고 각 읍·면 향토지를 편집한 다음 1932년 12월 울산군에 자료를 제출했다. 편찬 목적은 ‘농촌교육 향상과 쇄신을 통한 농촌계발’이었다. 일본인에 의해 일본어로 작성됐으며, 인쇄본이 아닌 등사판본으로, 192쪽 분량이었다.

지난 5월, 대곡박물관을 찾았다. <울산군향토지>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반갑게 맞아준 자원봉사자 도슨트의 미소와 친절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관장으로부터 손수 건네받은 향토지를 살갑게 찬찬히 펼쳐보았다. 총 243페이지 분량이었다. 향토지는 그동안 필자가 가슴에 묻어두었던 ‘달구모시’의 어원과 ‘학’ 자료의 출처 등 두 가지의 궁금증을 속 시원하게 풀어 주었다.

‘달구모시’. 어릴 때 어머니가 달구모시 부으러 간다고 했을 때 그저 모여서 ‘닭 모이 주는’ 것쯤으로 생각했던 ‘달구모시’ 혹은 ‘다르모시’의 어원을 드디어 찾아냈다. 향토지 192쪽에는 “일반주민들의 금융기관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금융조합 5단체 또는 각 동리의 계, 또는 무진강·타노모시강 등으로…”라는 내용이 있었다. ‘타노모시강’이 ‘달구모시’였던 것이다. 식자는 웃을지 모르지만 필자는 무릎을 쳤다. 어릴 때 어머니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한자어 ‘뇌모자강(賴母子講)’을 일본말로 ‘타노모시코오(たのもしこう)’라고 읽는다. 우리나라의 계와 비슷하다. ‘달구모시 부으러 간다’는 말은 ‘곗돈 주러 간다’는 말이었던 것이다.

학(鶴)을 청량과 범서에서 관찰한 원 출처를 찾았다. <울산군향토지>는 4쪽(44~48쪽)에 걸쳐 울산군의 특수식물 분포상황, 향토의 특수동물 분포상황 및 특수광물 분포상황 등 울산 천연자원의 분포를 소개하고 있었다. 필자가 그동안 인용한 이용우 편집 <울산승람>(1954)의 자료와 비교해본 결과 그 출처가 명확해졌다. 울산에서 학은 1954년도까지 관찰된 것이 아니라 22년을 거슬러 올라간 1932년에 조사된 자료임을 알 수 있었다. 이용우는 울산군향토지 자료를 인용하면서 출처를 밝히지 못했던 것이다.

<울산군향토지>의 번역은 향토사학가 윤대헌씨의 원본 제공, 한삼근 교수(울산대 건축학부)의 번역, 신형석 관장(대곡박물)의 발간이 한데 어우러져 이룬 값진 결과물이었다. 어머니의 달구모시를 기억나게 하고 범서와 청량에서 조사한 학 자료의 출처도 찾을 수 있게 도와준 울산군향토지가 필자에게는 매우 유익한 자료집이다. 모든 이가 유익하게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조류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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