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구칼럼] “이것으로 족하다” 하시는 어머니
[이동구칼럼] “이것으로 족하다” 하시는 어머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4.3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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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사랑이 철철 넘치는 가정의 달이다. 주일 새벽미사를 드리고 고요함 속에서 우연히 림태주 시인의 산문집 ‘그토록 붉은 사랑’을 읽고 들었다. 감동으로 다가왔다. 낭송시 ‘어머니의 편지’다. 철에 따라 피는 예쁜 깨꽃, 환한 양파꽃 그리고 자태 고운 도라지꽃을 보고는 단지 순리대로 뿌리고 기르고 거두었을 뿐이니 “이것으로 족하다” 하는 어머니 마음. 눈을 감기 전에 미리 작성한 편지로 그동안 가슴 속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아들에게 잔잔하게 전한다. 곧 어버이날이 다가온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전화 한 통 드리는 것조차 소홀히 하고 있는 죄책감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아들아, 보아라. 나는 많이 배우지 못했다. 호미 잡는 것보다 글 쓰는 것이 천만 배 고되다. 그리 알고, 서툴게 썼더라도 새겨서 읽으면 된다. 내 유품을 뒤적여 네가 이 편지를 수습할 때면 나는 이미 다른 세상에 가 있을 것이다. 서러워할 일도 가슴 칠 일도 아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을 뿐이다. 너희를 낳을 때는 힘들었지만, 낳고 보니 정답고 의지가 돼서 좋았다.” 우리들 어머니 모습이다. 당신의 소임은 단지 밥 지어 먹이는 것이라는 어머니. 봄이면 여린 쑥을 뜯어다 된장국을, 여름엔 강에 나가 재첩 한 소쿠리 얻어다 끓인 맑은 재첩국을, 가을에는 미꾸라지를 무쇠솥에 삶은 추어탕을, 그리고 겨울에는 가을무를 썰어 칼칼한 동태탕을 끓여내는 등 사시사철 자식들 뒷바라지에 당신 인생을 다 바친 어머니. 그리곤 “이것이 내 삶의 전부다”라 한다.

세상 사람들이 만든 지엄한 윤리와 법도는 잘 모르지만, 사람 사는 곳에는 인정과 도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잘 알고 있는 어머니. 당신 자신 도리의 값어치보다는 자식 입에 들어가는 떡 한 점이 더 지엄하고 존귀하다 여기고 행동하는 어머니. 험난한 세상을 “요망한 한여름 날씨 같다” 하면서 늘 자식 걱정에 편안한 날이 없다. ‘비 내리겠다’ 싶은 날은 해가 나고, ‘맑구나’ 싶은 날은 느닷없이 소낙비가 들이닥치는 변화무쌍한 현실 속에서, 운수소관의 변덕을 어쩌진 못해도 아주 못살게 하지는 않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물살이 센 강을 건널 때는 물살을 따라 같이 흐르면서 건너야 한다. 너는 네가 세운 뜻으로 너를 가두지 말고, 네가 정한 잣대로 남을 아프게 하지도 마라. 네가 아프면 남도 아프고, 남이 힘들면 너도 힘들게 된다. 해롭고 이롭고는 이것을 기준으로 삼으면 아무 탓이 없을 것이다.” 세상사는 이치도 간결하게 가르친다. 이보다 더 가슴에 와 닿는 이야기도 없을게다. 부질없고 쓸모없는 것은 담아두지 말고 바람 부는 언덕배기에 올라 날려 보내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라면 지극히 살피고 몸을 가까이 기울이라고. 또한 억척 떨며 살지 말라고. 그냥 마음 편하게, 괴롭지 않게, 마음 가는 대로 순순하고 수월하게 살기를 바란다.

“세상사는 거 별 거 없다. 속 끓이지 말고 살아라. 너는 이 어미처럼 애태우고 참으며 제 속을 파먹고 살지 마라. 힘든 날이 있을 것이다. 힘든 날은 참지 말고 울음을 꺼내 울어라. 더 없이 좋은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은 참지 말고 기뻐하고 자랑하고 다녀라. 세상 것은 욕심을 내면 호락호락 곁을 내주지 않지만, 욕심을 덜면 봄볕에 담벼락 허물어지듯이 허술하고 다정한 구석을 내보여줄 것이다” 오늘날까지 이 나이가 되도록 아직도 자식 생각에 온 신경을 쓰고 있는 어머니가 곧 구순을 맞는다. 먼저 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떠올리면 마음이 찡하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러니 내 삶을 가여워하지도 애달파하지도 마라. 나는 너를 사랑으로 낳아서 사랑으로 키웠다. 내 자식으로 와주어서 고맙고 염치없었다. 너는 정성껏 살아라.” 우리나라 모든 어머니의 한결같은 마음이다. 어버이날이라고 특별히 비싼 선물이나 호텔 음식을 바라는 게 아니다. 그저 사랑하는 자식 얼굴 한 번 더 봤으면 하는 소박한 마음뿐이다. 그것으로 족하다.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화학산업고도화센터장 RUPI 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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