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봄이 혼란한 이유
이 봄이 혼란한 이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4.25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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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말이 다 쓸 말은 아니듯 신문의 지면이나 방송의 채널이 불필요하게 많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하게 된다. 신문은 절반이 광고이고 방송은 채널마다 중복되는 기사나 정보로 새로운 것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또 정치평론은 듣기조차 민망해서 외면하기 일쑤다. 이런 매체들을 보통의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신뢰할까 가끔씩은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시사나 정보는 또 얼마나 믿을 만하며 과연 진실일까 의문스럽기까지 하다. 그리고는 이런 개인적 불신이 사회나 타인 심지어 가족에게까지 무관심으로 이어지진 않을까 괜한 걱정도 해본다. 그런데 이런 생각들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있었던 모양이다.

최근 들어 한 권의 소설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미국의 소설가 트루먼 커포티가 1966년 발표한 <인 콜드 블러드>라는 소설은 픽션과 논픽션을 결합한 기록문학으로 한때 미국사회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이다. 지금까지도 미국이나 유럽의 대학에서 신저널리즘 강좌의 대표적 교재로 사용하고 있으며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책을 읽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커포티는 1959년 11월 우연히 뉴욕 타임즈에 실린 캔자즈 주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가족 살인사건의 기사를 읽게 된다. 그리고는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그 마을로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수많은 기록과 자료, 인터뷰 사진 등 관련 자료를 모아 취재한 6여년의 시간 끝에 미국잡지 ‘뉴요커’에 4회에 걸쳐 분재하게 되었다고 한다.

작품은 우선 작가의 세밀하고 생생한 묘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인물 내면과 주변 상황에 초점을 맞춰 마치 그곳의 이웃을 만난 듯 그곳을 다녀온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결말 부분에서의 범인이 받게 되는 판결 과정과 범인의 자필기록 등의 서술로 더 한층 극적 긴장을 만들어 가는 대목에서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독자들은 읽는 내내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질문했다고 할 만큼 사실의 객관성을 끊임없이 의심받았다고 하지만 사실적 서사는 작가가 오랜 시간 취재한 진실을 토대로 만들어진 인고의 결과물이었다.

이 작품 이후 1920∼30년대 미국의 저널리즘 방식은 객관적 정보만 전달 받던 단편적 방식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진실을 찾으려는 욕구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이런 기록문 형태가 새로운 하나의 저널리즘 흐름을 만들고 대중은 또 전문성 있는 기자와 언론을 통해 진실에 더 가까이 가고자 한다는 것이다.

사건의 진실은 묻히고 언론의 보도만 단순하게 믿던 사람들에게 진실을 찾는 소설 속 과정이 이 소설의 재미에 더 빠져들게 하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의 범인이 교수형에 처해지는 마지막 장면의 생생한 현장 묘사는 밤새 내 꿈속에서 실루엣으로 어른거렸다. 소설 속 평범한 일상적 배경 속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드러난 인간성과 사회관계의 본질성 그리고 인권의 본질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법과 정의가 무엇인지 궁극적으로 깊이 생각할 필요성조차 없었던 소시민의 입장에서도 범인의 사형 장면에서는 신을 대신해서 인간이 정의를 실행할 경우 분명히 오류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혼란한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란 고전적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마음이 갑갑하고 혼란하다. 문학은 직접 체험할 수 없는 세계를 알게도 하지만 알고 있다고 믿었던 세계의 숨은 진실을 한번쯤 다시 생각해보게도 한다. 봄이 안개속처럼 혼란한 가운데 벌써 서른 페이지의 사월 중 스무 여 날을 읽어버렸다. 남은 페이지 속에서 우리는 ‘진실’을 찾을 수 있으려나.

이정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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