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트럼프와 ‘반크’
시진핑-트럼프와 ‘반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4.23 21: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민족 자존감의 상징이자 ‘사이버 외교사절단’으로 불리는 ‘반크’(VANK)가 최근 참다못해 팔을 걷어붙였다. 중국의 제왕적 국가주석 시진핑(習近平)과 미·중 정상회담을 마치고 나온 미국의 괴짜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시진핑의 발언을 곧이곧대로 믿고 ‘카더라’식 뒷얘기를 내뱉은 직후의 일이다. 트럼프가 무슨 얘기를 했기에 온 국민의 흥분지수가 머리끝까지 올라간 것일까?

트럼프는 지난 12일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4·7정상회담 때 시진핑으로부터) 한국과 중국의 역사에 대한 수업을 받았다”고 운을 뗐다. 가관인 것은 그 다음 말이다. “Korea actually used to be a part of China.”라고 뒷감당도 못할 말을 가볍게 내뱉은 것. 우리말로 풀면 “한국은 사실상 중국의 일부였다.”가 된다. 트럼프가 한·중 역사에 얼마나 무지한지는 워싱턴포스트(WP) 보도를 참고하는 것이 더 빠를 것 같다. WP는 19일자 신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중국 국수주의자들의 의견을 여과 없이 옮긴 트럼프의 처사는 경솔(careless)했다.…자기중심적일 수 있는 외국 지도자보다는 미 국무부의 한반도 전문가로부터 역사 교육을 받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꿈꾸는 시진핑에 관한 기술은 미국 허드슨연구소 중국전략센터 소장 마이클 필스버리(Michael Pillsbury)가 쓴 ‘백년의 마라톤’이란 책에서 엿볼 수 있다. 부제가 ‘마오쩌둥-덩샤오핑-시진핑의 세계 패권 대장정’인 이 책에서 그는 “우리가 잘못 알았다. 중국은 그들의 세(勢)가 상대를 능가한다고 판단하면 가차 없이 힘을 과시한다. 그들은 겉으로만 평화적인 척, 상대방을 존중해 주는 척했을 뿐이다.”라고 적었다.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중국 지도층의 패권주의적 복면을 보기 좋게 벗겨버린 것이다.

이들의 음흉한 야심은 중국인들로부터 ‘영원한 총리’로 사랑받는 저우언라이(周恩來, 1898.3.5~1976.1.8)의 진솔한 언행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프랑스 유학파인 저우언라이는 1960년대 북한 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고대부터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왜곡하는 건 황당한 이야기다. 랴오허(遼河)와 쑹화(松花)강 유역 모두에 조선민족의 족적이 발견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중앙일보 4월 20일자 사설(‘시진핑 주석은 위험한 역사관 해명하라’)은 이를 두고 “오랜 기간 중국 동북지역과 한반도에서 활동한 한민족의 독립적 정체성을 평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의 헛소리와 시진핑의 엉큼한 속내를 간파한 반크(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가 팔짱만 끼고 있을 리 없었다. (이 단체는 1999년에 만들어진 비정부 민간단체다. 잘못된 국가정보를 알리고 교정을 권고하는 등 활동 폭이 넓고, ‘동해’와 ‘독도’의 국제표기를 수정하는 일이라면 정부를 뺨칠 정도로 열정적이다.) 즉시 반박 캠페인에 나서겠다고 21일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

반크는 지금까지 제작한 한국 역사 관련 동영상을 적극 활용하고 새로운 반박 영상도 만들어 전 세계 초·중·고교에 퍼뜨릴 계획이다. 또 5월 중엔 시진핑의 발언과 트럼프의 역사인식이 왜 문제인지 조목조목 알리는 콘텐츠를 제작해 SNS로 전 세계에 집중 홍보할 방침이다. 전국 초·중·고생과 대학생이 한국 역사를 바로 알리는 ‘글로벌 한국홍보대사’로 활동할 수 있도록 특강 등의 다양한 프로젝트도 구상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아무리 훑어 봐도 “한국은 중국의 일부”라는 말이 미·중 두 정상 가운데 누구의 입에서 흘러나왔는지조차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역(逆)으로, 약자에겐 강하고 강자에겐 약한 대한민국 정부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 것인가? 민간 외교사절단 반크에게 엎드려 절을 해서라도 한 수 배우길 외교부에 권하고 싶은 심정이다.

<김정주 논설실장>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