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는 몰락의 지름길
부패는 몰락의 지름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4.2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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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청탁 및 금품 등의 수수 금지법’(일명 ‘부정청탁금지법’)이 6개월 전인 지난해 9월 28일 시행에 들어감에 따라 그동안 미풍으로 포장됐던 ’한국식 접대부패 관행‘에 커다란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일단 긍정적인 측면에서 사회 전반에 만연하고 있는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북유럽 복지국가들처럼 청렴한 선진국을 향해 한 걸음 더 도약할 수 있는 역사적 이정표를 세웠다고 할 수 있다.

5년 여 전 수사 청탁을 대가로 외제승용차 벤츠를 받은 여검사가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부정청탁금지법이 필요하다는 여론은 급물살을 탔다. 해양수산부 낙하산인사 비리로 촉발된 세월호 참사도 이 무렵에 터졌다. 역대 정권마다 대통령이나 친인척들이 정경유착 부패로 줄줄이 쇠고랑을 찼지만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을 받거나 무죄로 풀려나는 것도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키면서 법의 제정을 재촉한 셈이 됐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유행어도 생겨났다.

세부규정을 들여다보면 대가성이 없더라도 직무관련자에게 부정청탁을 했다면 준 자와 받은 자 모두 처벌을 받는 쌍벌제가 적용된다. 그 뇌물이 100만원 이하면 과태료 처분, 그 이상이면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부정청탁금지법은 또 후진적인 식사접대와 선물문화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이 법 시행 이후로 식사는 3만원, 선물은 5만원, 경조비는 10만원으로 각각 구체화됐다. 특히 선물의 범위를 종전 3만원에서 5만원으로 올린 것은 미국 독일 등 선진국의 25달러 내외보다 관대해졌다고 볼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청렴 수준은 100점 만점에 56점이고 순위로는 170여 개국 중 46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는 27위로 하위권이다. 10위권에 드는 나라들은 연간 국민소득이 4만~5만 달러 수준이다. 청렴도 상위에 랭크되고 있는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등 북유럽과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권 국가들의 소득수준이 바로 거기에 해당된다.

커피한 잔 만 얻어먹어도 250배의 벌금을 물리는 핀란드, 공짜입장권 몇 장 받았다고 30배의 벌금을 물리는 미국, 총리가 과속으로 차를 몰았다고 벌금을 물리는 뉴질랜드는 그만큼 청렴한 이유가 있다. 청렴도가 높을수록 국민소득도 비례해 올라간다는 분석가들의 연구결과와도 맥을 같이 한다.

부정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선물 소비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주장과 길게 보면 부패로 인한 거래비용이 줄어들 것이란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데, 필자는 선진국 사례에서 보듯이 사회가 투명해지고 공정경쟁이 자리잡게 되면 결국은 서로가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데 무게를 두고 싶다. 헌법재판소도 10여 년이나 걸려 제정된 이 법의 공익성을 높이 평가해 합헌 사인을 보내 준 것이다.

국제사회서는 한국의 부패 문제를 다룰 때 ‘연줄 문화’의 폐해를 지적하곤 한다. 영화 ‘대부(The Godfather)’는 이탈리아 시실리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마피아의 대부가 된 돈 꼴레오네 가문의 일대기를 다룬 명작이다. 미국 정치학자 감베타의 ‘마피아 연구’에 의하면 마피아 조직은 공적 신뢰가 낮고 사적 신뢰가 높아 사적인 친분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연줄사회 문화를 갖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마피아 조직의 ‘연줄사회 문화’는 시장 선점을 위해 제품 경쟁력에 투자하지 않고, 사적 신뢰 즉 ‘연줄 투자’에 몰두하게 된다. 한국인들이 경조사와 접대에 투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나라 경조사비는 연간 12조원에 이른다.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이런 연줄 투자에 의존하는 경조문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부패 유발 연줄 카르텔을 근절하지 않고는 청렴선진국의 길은 요원하다.

덧붙여 지도자의 솔선수범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청렴 강의를 500여 회 다녀보았는데 가는 교육장마다 교장, 총장, 지사장, 이사장, 공기업사장 등 상층부는 별로 없다. 말단 직원, 용역계약 직원이 주로 많다. 부정부패로 시끄러운 데를 보면 부패자는 조직의 수장이거나 아니면 수장 주변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새겨보자.

<김덕만 정치학박사, 전 국민권익위원회 대변인, 국토교통부 청렴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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