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기 위해 ‘학원 뺑뺑이’
살아남기 위해 ‘학원 뺑뺑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4.18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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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대학입시제도는 많은 변천(變遷)을 겪었다. 1969년부터 1981년까지는 ‘예비고사’란 시험이 있었고 1982년부터 1993년까지는 ‘학력고사’란 시험이, 그리고 지금 현재는 ‘수학능력시험’이 있다.

그 변화의 시기에 해당되는 고등학생들은 교육제도의 실험대 위에 올라선 ‘마루타’ 신세였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마루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 세균부대 중 하나였던 731부대에서 희생된 인체실험 대상자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의 대학입시제도는 해방 이래 70여 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15 차례의 변천을 겪었다.

필자는 예비고사 세대다. 지금도 생각나는 고등학교 추억은 솔직히 ‘상아탑’과 ‘사당오락’이 전부다. 상아탑(象牙塔)은 대학을 상징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우골탑(牛骨塔)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이는 소의 뼈로 쌓은 탑, 곧 대학에 다니기 위해 시골에서 소를 팔아야 했던 때의 大學(대학)을 일컫는 말로 象牙塔(상아탑)을 대신하여 쓰던 의미다. 사당오락(四當五落)은 네 시간을 자면서 공부하면 합격이고, 다섯 시간을 자면서 공부하면 불합격이라는 말이다.

지금의 고등학교 수업은 ‘’공회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생들이 수업을 안 듣는다. 상위권 아이들은 선행학습을 해서 안 듣고, 하위권 아이들은 기초학습 능력이 부족해서 못 알아듣는다. 중위권 아이들에게 맞춰 수업을 한다지만 이 역시 한계다. 인(in)서울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학생들은 하나같이 살기 위해 학원을 선택하는 ‘학원 뺑뺑이’ 신세다. 조만간 학원재벌이 탄생할지 지켜볼 일이다.

최근 이공계가 대세인데다 올해부터 수능 영어가 절대평가가 돼 수학 사교육에 대한 엄마들의 관심이 더 높다. 학교 시험에선 교육과정을 벗어나거나 선행학습이 요구되는 고난도 문제가 한두 개씩 꼭 등장한다. 학생 간 ‘서열’을 매겨야 하기 때문이다. 고득점을 얻기 위해 학원에 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월화수목금금금’의 과도한 학습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극한적인 대입경쟁에 내몰리면서 학습량이 갈수록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 세계 각국 청소년들의 주당 학습시간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주당 49시간으로 일본과 미국의 30시간과 OECD평균 33시간을 훌쩍 뛰어넘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사교육 시간이 주당 5시간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길다는 것이다. 한국 청소년의 주당 학습시간 49시간에는 대학생들도 포함이 돼 있다. 중고등학생들만 초점을 맞춰보면 중학생이 주당 52시간, 일반 고등학생들이 70시간, 특목고 학생들은 80시간까지 학습시간이 올라간다.

과도한 공부로 인해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소극적 휴식은 물론 적극적 여가활용에 취약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실제로 2013년에 발표한 세계 아동종합실태조사에서 우리나라 아동의 ‘결핍지수’가 OECD국가 가운데 가장 높았다.

이에 따라 청소년들에게 쉴 시간을 주고 사교육도 줄이자는 취지에서 일부 시민단체들이 ‘학원 휴일 휴무제’를 법제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논란은 무성하지만 국회도 조심스런 입장이다.

교육계의 ‘큰손’으로 성장한 사교육 단체의 압력 등으로 인해 ‘학원 휴일 휴무제’를 당론 또는 대선 공약으로 채택한 원내 정당은 현재로서는 하나도 없는 상황이라 안타깝다.

<신영조 시사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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