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름 ‘달꼴’의 본질과 현상
마을이름 ‘달꼴’의 본질과 현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4.17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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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이름은 다른 사람과 구별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 속에는 정체성도 내포돼 있다. 마을이름은 인문학적 전설과도 유관하지만 그 마을의 산세(山勢), 지세(地勢), 수세(水勢)와 같은 자연지리적 관점에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마을이름은 세대를 거치면서 사음(寫音·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 훈음혼용(訓音混用), 차자표기(借字表記)의 영향으로 변천돼 왔기 때문에 그 본질에 대한 접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현상은 마을이름 대부분이 ‘한자시대’에 지어진 탓도 있지만 구술·구전이 기술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다.

울산 무룡산 아래에는 ‘달골’ 혹은 ‘달꼴’로 부르는 마을이 있다. 현재 달골에는 글자가 다른 두 개의 표석 즉 ‘월곡(月谷)’과 ‘달곡(達谷)’이 남아 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학자들은 그 의미에 관심을 두고 있지만 마을사람들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달골’의 본디 뜻은 한자 ‘月谷’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월곡(月谷)에서 달곡(달谷)으로, 다시 달곡(達谷)으로 이름이 변천된 것이다.

마을이름에 ‘月’이란 한자가 들어가는 경우는 논이 인근 마을에 비해 많다는 의미로 지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월천(月川)’, ‘월평(月坪)’이란 마을이름도 같은 경우일 것이다. ‘달골’이 지금의 마을이름으로 굳어진 것은 한자 월곡(月谷)의 사음(寫音) 및 훈음혼용(訓音混用)의 영향일 뿐 다른 의미는 없다고 생각한다. 근대까지만 해도 달골 주민들은 가뭄이 들면 무룡산 중턱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논농사가 인근 마을보다 많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지명에 나타나는 ‘달’의 쓰임새를 두고 이병도(李丙燾.1896-1989)는 월(月)과 달(達)이 같다고 말한다.

이러한 사례를 바탕으로 ‘월월이청청’, ‘아등청청’, ‘쾌지나칭칭나네’, ‘계변고개’, ‘매귀악 가사’에 대해 살펴본다.

<월월이청청>. 포항·영덕 지역 여성들의 원무를 추며 부르는 노래 ‘월월이청청’의 경우 한자 독음 ‘月月而淸淸’이 그 바탕이다. 직역하면 ‘달 달 밝은 달’이다. 보름날 밝은 달밤에 노래하며 춤추고 논다는 대표적인 설이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나 ‘얼어리청청’ ‘얼럴리청청’, ‘널널리청청’(구미지역), ‘얼얼이청청’(안동지역)에서 보듯이 같은 명칭의 노래가 그 지역의 가창자(歌唱者)에 따라 조금씩 달리 부르지만 원형은 같을 것으로 짐작된다. 더 나아가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왜장 가토청정(加騰淸正)의 침략을 경계하며 불렀다는 설이 보태지면서 왜장의 이름자 ‘청정(淸正)’을 사음(寫音)하여 ‘월월이청정(越越而淸正)’이 됐다고 확대해석하기도 하지만 이 지론도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등청청>. 양산 가야진사용신제에서 불리는 ‘아등청청길여세’의 경우 왕명을 받아 용신제에 참석하는 칙사(勅使)를 위해 길을 넓히고, 청소하고, 고르는 등 도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나온 노래로 짐작되는 정황이 가사에 잘 나타난다. 현재는 ‘아등청청 길 여세’로 통일되어 전승되고 있지만 과거에는 가창자에 따라 ‘아둥정정 길 여세’, ‘아등칭칭 길 여세’ 등으로 불렸다. 이러한 현상은 확실한 의미를 모르는 상태에서 구음(口音)으로 전승됐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의 가창자도 개략적인 의미만 짐작할 뿐 확실한 의미가 무엇이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여기서 ‘아등’은 한자어 ‘아등(我等)’으로 ‘우리’라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말하자면 동네사람들이 모두 나와 깨끗한 길을 열어 왕명을 받은 칙사를 맞이하자는 창사(唱詞) 혹은 가사(呵辭)인 셈이다.

<쾌지나칭칭나네>.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 ‘불나비사랑’을 부른 가수 김상국(1934∼2006)이 감칠맛 나게 부른 노래다. 여기서 나오는 ‘칭칭’도 그 어원은 ‘청청’이다. ‘청청’은 ‘밝다’, ‘좋다’, ‘깨끗하다’와 같이 세 가지 사례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계변고개>. 현재의 계변고개는 울산 중구 복산동 742번지에서 시작해서 361-13번지에서 끝나고 계변로와 만나면서 도화골로 이어진다. ‘개비’, ‘계비’, ‘개뱅이’, ‘개미’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어원은 ‘계변(戒邊)’이며 ‘계변성(戒邊城)’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계변’이란 신라를 지키는 변방 즉 ‘가장자리’를 의미할 것이다. 신라시대에 울산이 지형적으로 요충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매귀악 가사>. 학성지에 기록된 ‘매귀악(煤鬼樂)’은 울산의 풍속이다. 매귀악에는 ‘등광궐아괘보살(騰光厥兒掛菩薩)’이라는 가사가 있다. 여기서 ‘가사(呵辭)’란 소리를 크게 내어 부르는 말로, 혹자는 꾸짖는 말로 해석하지만 창사(唱詞)·찬탄(讚嘆)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고 보면 된다. ‘등광궐아괘보살’의 어원은 ‘등광궐아대보살(燈光厥兒大菩薩)’로 ‘등광이라는 사람은 대보살이다’라고 뜻풀이를 할 수 있다. 가난한 여인이 화장실에 불을 밝힌 것을 부처가 발견하고 공덕으로 마정수기(摩頂受記)를 해주면서 한 말이라는 설화가 전한다. 기록자가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사음(寫音)으로 기록했고 부연설명도 본질과 다르게 기록했다고 판단한다. 후학(後學)이 연구를 통해 본질을 찾는 ‘후생가외’의 존재가 되지 못하고 선행연구자의 결과물을 답습, 인용하는 안이함에 안주한 것으로 보인다. 매귀악의 경우 지역의 독창적 풍속을 찾아내 가치를 활용했다기보다 오히려 가치를 더 떨어뜨린 사례로 볼 수 있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조류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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