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이름에 대하여
길 이름에 대하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4.16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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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인간성 상실의 시대라고 명명하고 싶다. 사회가 극도로 혼란하고 인간의 가치기준이 흐려져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삶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중심사상인 충효사상은 골동품이 되어 박물관에나 전시될 처지에 놓여있다. 상실된 인간성을 회복하려면 충효정신을 복원하여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을 보여야 한다.

그 길을 열어주신 분이 바로 600여 년 전의 선각자이신 충숙공 이예 선생이다. 공은 고려 말엽에 울산 태화동에서 태어났다. 청년시절 울산군수 밑에서 문서를 관장하는 관원으로 봉직하였다. 태조 5년(24세) 울산을 침범한 왜구 선단에 군수 이은이 잡혀가자, 육방관속은 모두 달아났다. 오직 공이 홀로 군수를 따라가겠다고 자청하니, 무지한 왜구도 공의 간절한 뜻을 받아들여 군수를 배종하게 하였다.

선생은 납치되어 부자유한 몸이면서도 고국에서 하듯 군수를 깍듯이 모시고, 군수를 대신하여 온갖 궂은일을 다하며 의리와 예를 지켰다. 왜구도 감동하여 귀감으로 삼았으며, 이듬해에 군수와 함께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했다.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공은 태조임금으로부터 관직을 제수받고 사대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1401년 이래 43년간 일본을 40여 차례나 왕래하며 외교일선에서 활약했으며 일본에 억류된 우리 동포를 667명이나 생환케 하였다. 항해여건이 열악했던 그 시대에, 목선에 의지하여 현해탄을 왕래한다는 것은 실로 목숨을 건 충의정신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풍랑으로 바다에 빠져 사경을 헤맨 적도 여러 번이었다. 1443년에는 세종대왕의 명을 받아 71세 노인의 몸으로 현해탄을 건넜고, 계해약조를 체결하여 한일외교사에 큰 공적을 남겼다. 공은 이종무와 함께 대마도 정벌에 큰 공훈을 세웠고. 양국간 문물교류에도 큰 업적을 남겼다. 이러한 공의 업적은 조선왕조실록에 70여 차례나 기재되어, 확고한 역사기록으로 입증된다.

지금 일본에선 공에 대한 연구가 우리나라보다 더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서일본신문의 대기자 시마무라 하츠요시는 이예 평전을 발간하였다. 학술논문도 여러 편 발표되었는데, 나카다 미노루는 요코하마 국립대학교에서 ‘외교관 이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작가 가나즈미 노리유키는 ‘최초의 조선통신사 이예’라는 소설을 출판하였으며 이는 일본에서 같은 제목으로 영화화 되었다. 또, 공의 업적을 선양하는 ‘해협을 잇는 천년의 빛’이라는 기록영화가 만들어지고 관련 책자도 발간되었다. 대마도 원통사에는 공의 공적비가 세워져 일본인들이 참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예를 주제로 30여 편의 학술논문이 발표되었고, 한일관계사학회 학술총서 등 단행본도 여러 권 발간되었다. 또한 서울의 국립외교원과 울산문화공원에 공의 동상이 건립되어 있다. 세종대왕 탄신 기념 2017년 달력에 황희 정승 등 명현과 함께 공이 4월의 인물로 등재되었으니, 이 역시 자랑할 만한 일이다.

제6회 ‘조선통신사 옛길, 한일우정걷기’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일본인 27명과 한국인 13명이 4월 1일 서울을 출발하여 19일에 병영성, 동헌에 도착한다. 20일 태화루에서 이예 선생 기념행사를 갖고, 울산시민들과 함께 십리대밭길을 걷는다. 걸어서 가는 52일 간의 대장정 끝에, 5월 22일에는 동경 히비야 공원에 도착한다고 한다. 울산으로서도, 대단히 뜻 깊고 반가운 일이다.

우리 울산은 외지 방문객이 ‘급조된 공업도시’라는 선입관을 갖고 방문할지 모르나, 실은 오랜 전통을 가진 유서 깊은 충효의 고장이다. 이예 선생이 목숨을 걸고 나라 위해 외교 업무를 수행한 것이 ‘충’이요, 8세 때에 왜구에 납치되어 생사를 모르는 어머니를 찾아 일본의 전국 각지를 샅샅이 뒤지며 죽기를 각오하고 찾아 해맨 것이 ‘효’이다. 또한 상관을 의리와 예로 모시고, 책임과 성실을 다한 그의 공무정신은 오늘날 왜곡된 민주화로 위계질서가 결여된 공무원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며, 공무원 연수에도 지침서가 되리라 믿는다.

타 지역에는 그 고장을 빛낸 사람의 이름을 따서 길의 이름을 지은 것이 무수히 많다. 그런데 정신적 삶의 길을 보여주고 한일외교의 효시로서 조선통신사의 길을 심어주신 선각자 이예 선생의 이름을 딴 ‘이예로’는 아무데도 없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600여 년 전 그 때에 인간이 살아갈 정신적 길을 제시해 주시고 한일외교사에 빛나는 조선통신사의 길을 열어 주신 이예 선생의 길, 즉 ‘이예로’가 생겨서, 2017년 울산방문의 해에 손님들을 맞이해 주길 간절히 빌어본다.

박종해 전 울산예총 회장· 전 북구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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