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칼럼] ‘입 벌려 웃지 않는 자 바보로세’
[이정호칼럼] ‘입 벌려 웃지 않는 자 바보로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4.1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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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인의 집에 “불개구소치인(不開口笑癡人)”이라는 액자가 걸려 있었다. “입 벌려 웃지 않는 자 바보로세”라는 뜻이다. 한껏 멋을 부린 글씨에 내용도 좋아보였다. 글쓴이도 그랬겠지만 아마도 집 주인이 액자의 내용을 좋아하니까 귀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을 본 지가 몇 개월이 지났는데도 자꾸만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나는 참을성이 좀 없고 직언직설을 잘 하는 사람인지라 불콰한 얼굴에 된소리나 내서 불편한 사람으로 비칠까봐 경계를 해도 잘 안 되지만 마음으로는 웃으면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불개구소치인”이라는 문자는 연유가 깊다. 2500년 전 ‘두강’이라는 사람이 어느 산기슭의 물 좋은 곳에 집을 짓고는 술을 빚었다. 술맛이 좋아 임금도 흡족하여 이 술을 ‘두강주’라 칭하면서 어용주로 지정하고, ‘두강’에게 ‘주선’이라는 칭호를 내렸다. 어느 날 죽림칠현 중의 한 사람인 ‘유영(劉伶)’이 이곳을 지나다가 문 앞에 붙어있는 글을 보았다. “맹호도 한 잔이면 산속에서 취하고, 이무기와 용도 두 잔이면 바다 속에 잠든다.” 이 문구를 보고 호기가 발동한 그는 한 잔만 마셔도 인사불성이 되는 술을 연거푸 석 잔을 마셨다.

‘유영’은 대취하여 술독을 깨트리고는 집으로 가버렸다. 가족들은 그가 사흘을 못 일어나자 죽은 줄 알고 땅을 파서 매장했다. ‘두강’은 3년이 지난 후 ‘유영’의 부인을 찾아가 남편이 마신 술값과 깨트린 술독 값을 받으러 갔다. 그의 부인은 “당신이 만든 술을 마시고 남편이 죽었다”며 난리를 쳤다. 그러자 ‘두강’이 말하기를, 당신의 남편이 ‘두강주’ 석 잔을 마셨기 때문에 3년이 된 지금도 잠을 자고 있을 것이니 무덤을 파 보라고 했다. ‘두강’의 말대로 ‘유영’은 긴 잠에서 깨어나면서 일어나는데 그때까지도 입에서 술 냄새가 나더란다.

적벽대전을 앞두고 ‘조조’가 지은 시에 ‘두강주’가 나온다. “술을 마주하고 노래 부른다, 인생살이 얼마더냐, 아침이슬 같으리니. 지난날의 많은 고통 슬퍼하며 탄식해도 근심 잊기 어렵구나. 어떻게 근심을 풀까하니 오직 두강주뿐일세” ‘조조’의 ‘단행가’에 맞서 ‘백거이’는 ‘대주(對酒)’라는 시에서 삶을 긍정하는 삶의 자세가 느껴진다. “달팽이 뿔 같은 좁은 곳에서 싸워서 무엇 하리. 부싯돌 튕기는 불꽃처럼 짧고 짧은 생애라, 부자든 가난하든 즐겁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입 벌려 웃지 않는 자, 그 사람이 바보로세.”

세월호가 침몰한 지 1천91일 만에 목포신항으로 귀환했다. 팽목항에 있던 미수습자들의 가족들도 세월호를 따라 목포에 따라왔다. 그 중에 딸을 잃은 슬픔에다가가 중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한 엄마의 웃는 모습이 TV 화면에 나왔다. 실의에 찬 모습을 종종 보아왔던 내게 그녀의 웃는 모습이 그렇게 반가웠다. 잠시 웃음을 머금은 얼굴이 카메라에 담겼던 것이다. 딸을 삼켜버린 배가 해저 44미터에서 일단 뭍으로 올라왔으니 거기에 딸의 유해가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에 반가워서 웃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녀의 웃음은 잠시일 뿐, 이내 깊은 시름에 잠겼다. 딸의 흔적을 못 찾을까봐 걱정되고 무서웠을 것이다. 유가족이 되고 싶다는 슬프고도 슬픈 소망을 지닌 미수습자 9명의 가족들 이야기가 종종 전달될 때마다 차마 표현하기 어려운 슬픔에 공감하곤 했다. 부디 미수습자 아홉 명의 유해가 모두 수습되어 긴 기다림의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세월호는 두고두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슬픔과 분노를 재생시킬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의 마음이 지옥 같을 때에도 웃음이 스치는 것은 자기 보호 본능일지도 모른다.

우리네 삶에는 누구에게나 뿌리 깊은 슬픔이 존재한다. 생로병사와 희로애락, 오욕칠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니까 그렇다. 사사로운 인연에서도, 사회현상도 어쩌면 비극으로 점철되는 것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아닌가 한다. 한 인간의 내면에는 그가 포함된 사회의 온갖 감정의 추이가 모두 압축되어 있다. 사회는 거기 몸담은 한 인간의 감정이 옅지만 넓게 희석되어 있다. 한 인간의 고뇌가 세상의 고통이며, 세상의 불행이 한 인간의 슬픔이다. 그런 점에서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임에 틀림없다.

슬픔은 우리들 생활 속에서 늘 고개를 내민다. 슬픔이라고 표현하지만 분노, 갈등, 폭행, 질병, 외로움, 억울함 등 행복감과는 거리가 먼 요소들은 다 포함한다. 우리가 경험하지 않더라도 뉴스로 보고 듣는 수많은 불행들도 각자의 삶에 투영된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런 슬픔들을 상쇄시킬 수 있는 ‘웃음보’라는 비기를 누구나 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비기가 얼마나 자주 작동될 수 있는가는 자기 자신에게 달렸다. 나는 오늘도 내 인생을 위하여, 내 삶을 껴안으며 되뇐다. “불개구소치인, 입 벌려 웃지 않는 자 바보로세.”

<이정호 수필가, 전 울산교육과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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