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 방지용 트럼프 마스크’
‘막말 방지용 트럼프 마스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4.16 20: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통령선거일이 다가오면서 대선후보 진영 간의 신경전이 날카로움을 더하고 있다. 이는 각 진영의 입들이 ‘점잖음’이니 ‘체통’이니 하는 고상한 말들과는 거리가 멀게 막말 수준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이른바 ‘스탠딩 토론’ 방식을 두고 낯 뜨거운 말싸움(說戰)이 오고가 양식 있는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한다.

‘스탠딩(standing) 토론’이란 문자 그대로 후보들이 원고 없이 그것도 선 채로 정책검증 대결을 펼치는 토론 방식이다. 우리나라에는 이번에 처음 도입되는 것이어서 아직 장단점을 따질 계제는 못 된다. 지난 미국 대선전에서 도널드 트럼프(공화당)와 힐러리 클린턴(민주당)이 TV를 통해 선보인 바로 그 토론 방식이다.

문제의 발단은 19일로 예정된 KBS 대선후보자 토론회의 룰 미팅(rule meeting) 과정에서 불거졌다. 낯 뜨거운 설전은 양강(兩强) 구도의 한 축인 문재인 후보(민주당) 선대위 측이 난색을 표시하자 라이벌인 안철수 후보(국민의당) 선대위 측이 이를 ‘대놓고 까발림으로써’ 시작됐다. 민주당 문 후보 측 박광온 공보단장은 “두 후보가 1대1로 토론한 미국 대선 때와는 달리 KBS 토론에서는 5개 정당 후보가 2명씩 순서대로 대화하는 방식이어서 나머지 셋은 멀뚱히 서 있을 수밖에 없어서 거부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겨냥한 총대는 김유정 국민의당 선대위 대변인이 먼저 맸다. 그녀는 15일자 논평에서 “서서 토론하는 것이 육체적으로 힘들다는 게 스탠딩 토론회 참여 거부의 이유”라 주장하고 “2시간도 서 있지 못하겠다는 문 후보는 국정 운영을 침대에 누워서 할 것인가”라며 원색적 비아냥거림도 서슴지 않았다. ‘문재인’이라면 이를 갈아야 직성이 풀린다는 ‘상왕(上王)정치인’ 박지원 당 대표도 가만있을 리 없었다. 그는 “원고나 자료가 필요하다면 문 후보에게는 특별히 프롬프터(prompter)나 큰 테이블을 제공하면 어떨까”라며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꼬았다. 점잖게 대응한 바른정당 김세연 선대본부장과는 격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문재인 후보의 스탠딩 토론 거부 이유가 건강문제 때문’이라는 ‘카더라’식 소문이 광속으로 번지자 이번에는 박광온 단장이 사태 수습에 나섰다. 그는 “룰 미팅 과정에서 (대리인이 낸) 의견을 마치 후보가 거부한 것처럼 유출시켜 기사를 만들고… ‘2시간도 못 서나, 국정은 누워서 하나’ 같은 저차원적인 논란을 야기했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실제로 ‘손이시려워’라는 한 네티즌은 “안철수와 유승민은 서서 하자고 하는데 특전사 출신 후보(문재인 후보)는 의자를 달라고 합니다.… 특전사 출신(53년생)과 거의 같은 연배인(54년생)인 홍준표 후보는 아무 불만이 없다고 하니, 그동안 특전사 출신이라고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녔는데, 진짜 특전사 출신인지 모르겠습니다.”라는 글을 온라인에 올렸다.

박 단장은 문 후보가 뒤늦게 사실을 알고는 ‘앉아서 하나, 서서 하나 무슨 상관이냐. 그럼 그냥 서서 하자’고 했다는 말도 전했다. 문 후보의 건강에 대해서도 두둔했다. “북한산을 정말 뒷산 다니듯 다니는 사람이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닌 사람이고 평소 꾸준히 건강관리를 했다. 지난번 23개 언론사와 9시간 릴레이 인터뷰하는 전무후무한 일정도 소화해냈다.”

선거일이 3주 안쪽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당 대표도 포함된 대선 캠프 대변인들의 입이 갈수록 거칠어져 걱정이다. 혹자는 “거의 자폭테러 수준”이라며 우려하기도 한다. 큰 틀의 정책대결이 실종되고 그 빈자리가 테러 수준의 막말로 채워진다면 얼마 전 미국의 대선 판이나 하나 다를 게 무엇 있겠는가.

이를 기필코 막자며 이색 제안을 내놓는 호사가들도 있다. 미세먼지 방지용 마스크를 ‘막말 방지용 마스크’로 개조해서라도 강제로 착용시키자는 제안이다. 마스크의 이름에 ‘트럼프’ 자도 같이 넣어서 말이다.

<김정주 논설실장>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