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4.12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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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파출소에서 112신고를 받고 현장을 다녀온 일이 있다. 신고 내용은, 아파트단지 안에서 차를 빼달라고 했더니 이웃주민이 욕을 하면서 차를 빼주지 않으니 와서 좀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다행히 신속한 현장처리로 폭행이나 큰 시비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끼리 서로 얼굴을 붉히며 싸우는 모습이 무척 안쓰러워 보였다.

서로 정이 들어 사촌 형제처럼 지내는 이웃을 우리는 ‘이웃사촌’이라고 한다. 실제로 떨어져 사는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사촌이 더 미덥고 의지가 될 때가 많다.

얼마 전엔 술에 취해 길가에 쓰러져 있는 한 여성을 숙소로 안전하게 데려다 주기를 바라는 신고 전화가 들어온 적이 있다. 출동해 보니 이 여성의 주거지는 원룸이었고, 번지는 알겠는데 호수는 알 길이 없어 헤매기 일보직전이었다.

다행히 같은 원룸에 산다는 분이 4층에 사는 분이라고 귀띔해준 덕분에 쓰러진 여성을 안전하게 가족에게 데려다줄 수 있었다. 이웃분이 아니었다면 한참이나 애를 먹었을 게 분명했다.

또 다른 112신고 출동은 아파트 내 가정폭력 사건 때문에 이뤄졌다. 피해 여성은 112신고조차 할 수 없어 자칫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평소에 잘 아는 이웃분이 싸움 소리를 듣고 112로 신고해준 덕분에 피해자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었다.

이처럼 112신고를 받고 출동을 하다보면 알게 모르게 이웃의 도움을 받을 때가 많고 사건을 해결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도시화에 따라 주거형태가 대부분 아파트로 바뀌면서 주민들은 고립적, 폐쇄적 생활을 강요받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이웃과의 접촉이 뜸해지면서 공동체의식이 약해지고, 개인주의와 익명성이 강조되면서 가족, 친족, 이웃과 같은 집단 내 1차적 관계가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경향도 두드러지고 있다.

서로 이웃해서 살면서도 인간관계가 소홀해지다 보면 층간소음이나 주차 문제와 같은 갈등이 생기면 대화로 풀 수 있는 일도 폭행이 가세하는 시비 사건으로 번지거나 심하면 살인과 같은 강력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자연히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달라며 112로 신고하는 건수도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예로부터 우리는 이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민족이었다. 우리의 전통사회는 자연촌락을 단위로 하는 마을이 주를 이루었고, 마을 주민들은 생산과 생활유지를 위해 강한 결속력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근린집단 성격의 마을 안에서도 이웃들은 친밀한 사회관계 속에 노동력 교환이나 물품 대차, 길흉사 협조, 음식물 교환과 같은 사회적 협동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예를 들어 농번기가 되면 품앗이로 노동력을 교환하고 금전·농기구·가재도구를 서로 빌려주거나 공동으로 구입해 사용하기도 했다.

물론 오늘날은 옛날 전통사회에서 볼 수 있었던 이웃관계를 그대로 형성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노력 여하에 따라 이웃끼리 상부상조하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웃은 황소를 가지고도 다투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요즘은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는 손해나 이익을 떠나 이웃끼리 서로 화목하게 지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같은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가벼운 인사말을 먼저 건네거나 관심을 가지고 이웃과 교류하다보면 층간소음이나 주차문제로 112신고에 의존하는 일은 훨씬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철환 동부경찰서 서부파출소 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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