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고 공부나 해” 아직도 통할까?
“닥치고 공부나 해” 아직도 통할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4.11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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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학생들은 많이 힘들다. 중고교 기간 죽도록 공부하여 들어간 대학은, 늘 동경하던 자유로운 생활보다는 또 다른 경쟁과 시련을 안겨준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부모님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받아가며 어렵게 학교를 다닌다. 그러나 최근 한국경제 및 울산경제가 휘청거리면서 덩달아 대학생들도 깊은 늪에 빠져든다. 조그만 고등학교에서는 공부 잘 한다는 것으로 자존감을 세웠는데, 대학에 와 보니 “나 하나는 아무 것도 아니야”라는 걸 깨닫고는 방황하게 된다.

우리나라에는 ‘중2병’이 있다. 우스갯소리로 중2가 무서워 북한이 쳐들어오지 못한다는 무시무시한 중2. 사춘기와 맞물려 자신감이 너무 폭발하는 ‘중2병’과는 달리, 자신감과 자존감이 급격히 낮아지는 ‘대2병’도 있다. 대학생 중 약 66%가 경험해 보았단다. 유치원 시절부터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열렬히 외우고 풀며 공부해 왔던 청춘들. 그런데 그들이 막상 대학에 들어가 2학년이 되면, 심각한 자기정체 장애로 고통을 받게 된다. 그것이 바로 ‘대2병’이다.

1학년 때는 대학에 입학했다는 흥분과 기쁨으로 한 시절을 보낼 수 있다. 과목도 대부분 교양 위주이기 때문에 ‘전공과 자신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도 잠시 잊을 수 있다. 그러나 2학년부터 전공 공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잠이 안 오고 살이 빠지는가 싶더니 급기야 휴학을 고민한다.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신을 대학에 보낸 부모님은 물론, 이런 교육제도를 만든 세상을 원망하기에 이르는 것이 ‘대2병’ 증상이다. 늘 “지금의 학점과 스펙(specification)으로 취업이 가능한지” 걱정이 태산이다.

도대체 왜 이런 ‘자기 정체성’의 문제가 생기는 것일까. 지난 시간 학생들이 오로지 대학만을 가기 위해 불철주야 달려왔기 때문이다. 교사와 부모가 장래에 대한 고민도, 꿈에 대한 고민도, “좋은 대학만 가면 다 해결해 줄 것”이라 말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줄 것 같은 대학이지만, 막상 대학은 여전히 고등학교 때와 전혀 다르지 않은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들이 유보해 왔던 꿈과 장래, 적성에 대해 생각할 조그만 틈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적성 따윈 거의 무시하고 취직 위주로 소위 잘 나가는 과에 들어온 학생. “자신이 무엇을 잘 하는지” 미처 알 기회조차 없었던 학생. 이런 꿈이 불투명했던 학생들은 지금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울산 화학의 날을 하루 앞둔 3월 21일, 한국화학연구원(이하 화학硏)으로 학생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혹은 4명씩 짝을 지어 택시를 타고 화학硏 세미나장으로 찾아온 것이다. 필자는 2011년부터 울산대 화학공학부 겸임교수로 봉직하고 있다. 대전 본원에 근무할 때에도 대전대학교 겸임교수로 6년간 지도한 적이 있으니 꽤 오랜 기간 학생들과 호흡하며 지낸 셈이다. ‘화학공장 운전 및 안전환경 실무’ 강좌는 주로 석유화학 대기업 공장장들로 이루어진 강사진이 최대 강점이다. 필자도 그 중 하나다. 학교에서 책으로, 이론으로 배우는 지식을 넘어 산업현장의 생생한 경험을 전달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필자는 ‘석유화학산업 위기진단 및 대응전략’에 대해 70여명에게 강의하였다. 주어진 시간 내에서 똑같은 강의 주제로 학생들이 귀로 듣고 가슴 속에 담은 내용이기에 서로 비슷하여도 너그럽게 이해하길 바란다. 또한 최고 시설을 갖춘 화학硏 연구실을 탐방하고 얻은 느낌을 글로 옮겼기에 보는 관점이 제각기 다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공계 대학생들이 듣고 보고 느낀 것을 직접 기고문으로 옮긴 그 용기다. 필력이 많이 짧아도, 생각이 조금 달라도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들의 특권이다.

학생들은 미래의 자기 꿈에 대해 차근차근 단계를 쌓아가는 과정을 아예 배우질 못한다. 그런 의문이 생겨 질문을 하노라면, “닥치고 공부나 해. 그러면 모든 게 다 해결돼” 절대로 이런 대답은 통하지 않는 세상이다. 이제는 교육 과정 중에서 자기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주어야 한다. 당당한 패기와 쉽지 않은 도전에 큰 박수를 보낸다. 울산의 젊은이여, 자존감과 자긍심을 갖기 바란다.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화학산업고도화센터장, 본보 독자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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