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산책] 공원이 가지는 형이상학
[인문학 산책] 공원이 가지는 형이상학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4.09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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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화단에서 자라는 사철나무는 동그란 모양이었다. 공원에서 가장 많은 군락을 이룬 영산홍은 언제나 이등병 이발하듯 짧은 가지를 단정히 자른 채였다. 배롱나무와 분재형 소나무 등등은 자주 가지를 자른 모양이었다. 호숫가 꽃창포도 묵은 잎들은 말끔히 정리하고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공원에는 다듬은 나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워낙 기세가 좋고 뿌리도 깊은 너른 터에 독립수로 자리 잡은 느티나무는 자유롭게 하늘로 방사형 가지를 뻗고 있었다. 메타세콰이어도 나란히 줄을 지어 그 뾰쪽한 이등변삼각형 모습으로 하늘로 뻗고 있었다. 겨울을 난 상록참나무, 먼나무 군락 속의 상록 잎들이 반짝거렸다.

하지만 공원을 찾은 나는 금세 심드렁해졌다. 다듬어지고 정형으로 만들어진 나무들 앞에서 아무런 궁금증이나 호기심도 발동하지 않았다. 잘 정리된 너른 잔디밭을 배경으로 펼쳐진 풍경은 가까이 가보고픈 생각이 들지 않았다. 모든 것이 신비로운 영역도 없이 그냥 밝은 대낮에 멀리까지 한눈에 다 들어왔다.

감춰진 저 너머도 없었고 가까이 가도 그 나무들만 그대로 있었다. 호수 목조데크에서 내려다보는 물속에는 썩어가는 식물 잔해도 없었고 물풀도 자라지 않았다. 도시민에게는 지저분하게 보여도 물속 생물에겐 영양물질이자 먹이였다. 자연이 가진 거침, 복잡성, 변화무쌍한 역동성이 없어져 버린 풍경이었다. 생명체들의 서식지로 바라보지 않는 공원은 그냥 사진 속 풍경 같은 것이었다. 안전을 위한 조치였겠지만 물가로 접근하지 못하게 통로는 다 막아 두고 있었다.

이 모두 우리 관념 속 공원의 모습이다. 유럽의 공원들은 수변 경사를 완만하게 하여 연못 바로 옆에 나무도 심고 그 아래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 많다. 최대한 물 가까이서 즐기게 만드는 물친화적이고 자연성을 높인 공원시설이다.

우리도 시간이 흐르면 센트럴파크 공원의 나무들처럼 울창한 숲이 만들어질 것인가 그 자연성을 따라갈 것인가? 혹 관리업무가 원래 조성한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억지로 규격에 맞추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공원은 철저히 공원관계자 관리편의 위주로 조성되고 관리된다.

숲에는 틈만 있으면 식물이 새로운 씨앗을 터트리며 곳곳에 올라온다. 다양한 연령대의 크고 작은 나무들이 자란다. 하지만 공원에는 그런 곳이 없었다. 또 숲에는 여러 식물종이 섞여 어울려 자란다. 하지만 공원에는 정해진 영역에 딱 정해진 종류만 심어져 있었다. 막상 자연스레 씨앗이 날아와 새로운 종이 자리 잡으려면 제거하는 일도 공원관리 일일 것이다.

서울 길동생태공원은 원래 있던 습지를 이용해서 만든 공원인데, 그 습지를 다닐 데크만 깔아서 개장을 시작했다. 사람이 계획적으로 심은 수생식물들은 심은 대로 유지·관리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게 되었다. 군락은 변화무쌍하게 움직이고 경쟁으로 없어지곤 했다. 그 습지에 있는 식물상을 조사하고 해마다 식물종이 어떻게 변하는지 모니터링을 하는 방식으로 관리방식을 바꾸었다. 해가 갈수록 식물종들은 늘어나고 있었고 그 새로운 종을 찾아내는 일이 자원봉사자들의 보람이었다.

오래전에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한 커플이 엉덩이를 쳐들고 새롭게 발견된 곤충을 사진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꽃을 좋아하면 씨앗을 잉태하게 하는 곤충도 자연스레 좋아하게끔 될 일이었다. 자연생명체와의 만남과 친화성. 그들이 주는 끊임없는 자극과 호기심 유발. 수많은 사람들이 예약을 통해 자연체험교육을 받아가고 있었다.

습지나 공원은 실험실에 비하면 수많은 생명체가 생겨나는 배지(培地)와 같다. 그 배지에 어떤 생명체가 늘어나는지 매 시기마다 모니터링하고 식물표본을 만들고 곤충표본을 만들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자원봉사자의 역할이었다. 처음부터 이 전문적인 일들을 한 것은 아니었다. 공원체험교육에 참여할 사람을 받고 지속적으로 강의교육을 받게 한 결과였다. 지자체는 행정적인 지원을 하고 시민자원봉사자들은 공원 운영·관리의 당당한 주체였다.

한때 공해 오명을 썼던 울산은 그 늘어나는 생물종이 울산 자연환경 건강성을 재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 본다. 그 도시에 맞는 가치와 철학이 공원의 조성과 유지·관리에도 들어가야 한다고 본다. 공원에 자라는 나무들과 풀꽃들은 나날이 생동감 있게 변하는데 틀에 박힌 형식에 억지로 맞추려 애를 쓴다. 그 수고와 노력이 다 우리 세금이고 예산이다. 언제쯤이면 공원에서도 나비들이 넘실대고, 벌들이 윙윙거리고 다양한 새들이 날아오는 자연숲처럼 될까?

이동고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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