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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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4.09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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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한 번 내리면 모든 식물이 깜찍한 새싹의 눈을 띄운다는 ‘일우일아(一雨一芽)’의 계절 4월이다.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라는 속담처럼 지난 4일은 다섯 번째 절기 청명(淸明)이었고 5일은 한식이었다. ‘소한·대한 다 지나면 얼어 죽을 내 아들도 없다’는 말이 있듯 청명·한식이 지나니 그야말로 자연이 만화방창(萬化方暢)하는 봄이다.

봄날은 춘풍화기(春風和氣=봄날의 화창한 기운), 양춘화기(陽春和氣=봄철의 따뜻하고 맑은 기운), 화란춘성(花爛春盛=뭇 꽃이 만발한 한창 때의 봄), 춘치자명(春稚自鳴=봄 꿩이 흥에 겨워 스스로 큰 소리로 운다)처럼 표현이 참으로 다양하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야말로 ‘엄지 척’인 셈이다. 울산 봄의 전령사는 궁거랑 벚꽃 한마당, 작천정 벚꽃 축제와 같은 화신(花信)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신(雨信), 어신(魚信)에 조신(鳥信)도 있다.

화신(花信)은 꽃소식이다. ‘개나리 진달래 만발해도 매란국죽(梅蘭菊竹)만 못하더라’(민요 태평가)라고 해도 봄은 개나리, 진달래로 시작된다. 철새가 소리 없이 날아간 빈자리를 꽃바람(花信風)이 기다렸다는 듯 메웠다. 4월의 벚나무는 하나같이 벚꽃으로 수놓은 하얀 원피스를 바람에 날리고 있다. 하지만 ‘붉은 꽃이 열흘을 못 간다(花無十日紅)’ 했던가, 잦은 봄비로 얼룩이 지고 말았다. 밤새 내린 봄비에 떨어진 꽃잎이 잘 익은 동동주처럼, 숨비짓 하는 참붕어 입처럼 웅덩이마다 동동 떠다니고 있다.

해마다 짧아지는 봄이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분명하게 알아둘 것이 있다. ‘깜짝사랑 영이별’이라는 말처럼 온갖 봄꽃이 한철이라면 가화(家花)는 사철임을 잊지 말 일이다. 가화는 곧 가화(家和)요, 아내요, 자식이어서 오래가고 그 어떤 꽃향기보다 진하기 때문이다.

우신(雨信), 춘우(春雨)는 봄에 오는 비를 말한다. 박인수는 ‘나를 울려주는 봄비’라 했고, 이은하는 ‘봄비 속에 떠난 사람 봄비 맞으며 돌아왔네’라 했다. 김추자는 ‘봄비에 젖어서 길을 걸으며’라 했고, 김소월은 ‘어룰없이 지는 꽃은 가는 봄인데 어룰없이 오는 비에 봄은 울어라’고 했다. 하지만 잦은 봄비는 술 취한 사람처럼 그다지 반갑지가 않다.

봄비는 남자다. 꽃봉오리에 맺힌 빗물이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하는 운명이라면 활짝 핀 도화를 적시는 봄비는 애달픈 첫사랑같이 차갑다. 봄비는 일창일기(一槍一旗. 찻잎을 표현한 말)를 탄생시키는 위대한 생명수다. 봄비가 촉촉이 내리면 젖은 초원에서는 밤낮 없이 ‘삐 삐 삐’ 하는 호랑지빠귀, 개똥지빠귀의 귀곡성(鬼哭聲)을 들을 수 있다. 봄비만이 불러올 수 있는 귀한 울음이다.

어신(魚信). 울산의 봄을 전하는 대표적 고기는 황어다. 며칠간의 봄비에 황어가 산란하기 위해 태화강을 찾았다. 황어는 바다에서 줄곧 살다가 산란기가 되면 맑고 건강한 강과 하천을 찾아 모래와 자갈이 잘 형성된 강바닥에 산란한다. 체외수정으로 수컷이 방정(放精)을 하면 강물은 쌀뜨물을 풀어 놓은 듯 뿌옇다. 이 광경을 눈여겨보려면, 오늘도 늦지 않으니 선바위 다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일이다. 울긋불긋 몸치장한 황어가 뒤엉켜 사랑의 몸부림을 치며 봄을 전하고 있다. 그야말로 ‘장관’이 따로 없다. 호사가들은 이를 두고 분명 ‘물 반 황어 반’이라 할 것이다. 무심해 보이는 왜가리마저도 고개를 쭉 뻗어 구경하기 바쁘다. 방정맞은 할미새는 사방으로 날며 호들갑을 떤다.

범서 입암 사람들은 황어를 ‘쑥국어’라 불렀다. 쑥과 함께 끓여 먹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황어는 한 시대 보릿고개마다 배고픈 이들의 배를 채워준 아사공덕(餓死功德)의 구황(救荒) 물고기였다. 황어는 건강한 개체일수록 혼인색이 화려하고 짙다. 검은 줄과 붉은 색으로 조화롭게 단장한 황어는 봄이 제철이다.

조신(鳥信). 울산의 봄을 전하는 새는 백로다. 민요에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울고요. 저녁에 우는 새는 님 그리워 운다’(민요 ‘너영 나영’) 했지만 봄철 아침에 우는 새는 짝을 찾는 새다. 활짝 핀 벚꽃만큼 눈부시게 하얀 새, 백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태화강가로 나가보라. 삼호대숲 위를 분주하게 나는 백로를 관찰해보라. 삼호산을 찾아 죽은 오리나무 가지를 물어 다니기에 바쁜 부지런한 백로를 만날 수 있다. 백로는 집을 장만한 연후에야 혼인을 한다. 자식을 안전하게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조신은 백로의 개체 수 증가에서 확인할 수 있다. 3월말까지만 하더라도 150마리를 넘지 않더니 4월이 시작되자마자 서서히 늘어나고 있다. 어제(9일) 아침에는 450마리가 조사됐다. 왜가리, 중대백로는 이미 포란(抱卵)을 하고 있다. 시선을 돌리면 참새는 알자리에 깔 부드러운 닭 깃털을 찾아 닭장 속을 들락거리고, 붉은부리갈매기는 붉고 짙은 입술이 점점 옅어져 간다. 당나귀 귀처럼 귀를 쫑긋 세우면 직박구리의 ‘찍찍찍’ 자지러지는 웃음소리, 청딱따구리가 등걸 뒤에 숨어서 내는 ‘끽끽끽’ 소리, 쇠딱따구리가 덩달아 내는 ‘찌찌’하는 울음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다. 이 모두 봄을 알리는 조신(鳥信)들이다.

한식 날 아침부터 내리던 봄비가 어느새 사흘을 넘겼다. 멈출 줄 모르는 것이 마치 노인 부랑하듯 성가시다. 오는 듯하던 봄이 벌써 가 버린 것 같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조류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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