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소후보들의 “나도 출마”
군소후보들의 “나도 출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4.09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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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소(群小)’란 낱말은 하찮은 사람이나 사물을 가리킬 때 주로 쓰인다. 하지만 본란에서는 세(勢) 즉 ‘지지기반’이 비교적 약한 정치인 혹은 정당이란 뜻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몰고 온 조기 대선(제19대 대통령 선거)에는 주요 5대 정당 후보 말고도 출사표를 던진 예비후보자(이하 예비후보)가 두 자릿수나 된다. 9일까지 중앙선관위에 정식 등록된 예비후보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빼고도 자그마치 20명. ‘대한민국 호’를 이끌어갈 예비 뱃사공이 이처럼 많다는 것은 나라의 앞날이 밝다는 징조일까?

그렇다고 예비후보 등록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먼저 기탁금 3억원의 20%인 6천만원을 중앙선관위에 납부해야 한다. 동시에 5개 이상의 시·도 선거권자(유권자) 3천500명 이상∼6천명 이하의 추천을 받아 중앙선관위에 제출해야 한다. 이때 ‘추천 유권자’ 수는 1개 시·도마다 700명을 넘어야 한다.

기탁금 납부는 제18대 대선 때부터 시작됐다. 그 전에는 기탁금 없이도 예비후보 등록이 가능했다. 규정이 없었던 제17대 대선 때는 무려 186명이 등록했고, 이 가운데 34명이 사퇴·사망 또는 등록무효로 꿈을 접었다. 기탁금 납부가 의무화된 제18대 대선 때는 18명이 등록, 이 중 6명이 사퇴 또는 등록무효로 완주를 포기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도전자가 지난번보다 더 많다. 그러나 오직 당선을 목표로 하는 도전자는 몇 손가락 안쪽이다. 나머지 대부분은 존재감 과시가 목적일지 모른다. 취재가치의 잣대 때문인지 대부분 이름조차 파악하기 힘들다. 몇몇 군소후보만이라도 짚고 넘어가자.

무소속 예비후보는 모두 9명. 이 가운데 남재준(72) 전 국정원장과 ‘옥수수박사’ 김순권 한동대 석좌교수(72)는 울산에서 출마 회견을 가진 경우다. 이밖에 역술인 권정수(76), 의사 출신 김기천(58, 의료기기회사 대표), 보루네오가구 대표이사를 지낸 김환생(59, 삼우산업개발 대표), ‘유일한 문화예술계 출신’ 김민찬(59, 월드마스터위원회 위원장), 종교인 김마리아(62, 여, 예루살렘교회 담임목사)씨도 예비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군소정당 후보 중에는 뚜렷한 비전을 가진 예비후보도 없지 않다. 울산 출신 최병국 전 국회의원과 손잡은 ‘친이계 좌장’ 이재오 늘푸른한국당 공동대표(72), 국회에서 최루가루를 뿌렸다가 의원직을 상실한 김선동 민중연합당 후보(49), 장성민 국민대통합당 후보(53, 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 대표, 전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 진행자)도 그런 예에 속한다. 9일 자유한국당 탈당과 새누리당 입당을 선언한 조원진 의원(58)도 머잖아 ‘태극기 집회’의 후광을 등에 업고 예비후보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점쳐진다.

그러나 본인의 뜻과는 달리 피선거권 제한으로 가슴앓이 하는 인물도 있다. 두 차례(1997년과 2007년)나 대권에 도전했던 ‘허본좌’ 허경영씨(67, 정당인)가 그 주인공. 최근 또다시 대선에 출마하겠다며 ‘가수’ 자격으로 음원까지 출시했다는 허씨는 사실 출마 자격을 잃은 상태다. 2007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와 결혼을 약속했다는 등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기소돼 2008년 대법원에서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아 10년간 발이 묶였기 때문이다. 재미난 것은 그의 예지력. 그는 4년 전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 “다음 정권은 5년을 채우지 못 할 것”, “촛불시위가 일어나고 대통령은 개헌정국으로 덮으려 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이 예언은 ‘최순실 게이트’와 맞물리면서 다시 한 번 화제를 낳았다.

여하간 군소 후보들의 “나도 출마” 소식은 엄청난 흥밋거리다. 그러나 무모한 도전은 자칫 정치를 코미디 수준으로 떨어뜨릴지도 모른다. 그러면 허경영씨를 비롯한 군소 대권 도전자들은 이렇게 항변할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만한 코미디언이 또 어디 있느냐?”고.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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