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처럼 정겨운 교육청이었으면…
봄비처럼 정겨운 교육청이었으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4.06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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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식목일이자 한식(寒食)인 지난 5일, 봄비가 촉촉하게 대지를 적셨다. 밤늦게까지 내리는 봄비를 보며 모처럼의 여유를 즐겨 보았다. 창밖 도로변의 벚꽃은 가로등 불빛을 받아 더욱 화사해 보였고,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문학을 꿈꾸던 학창 시절의 감수성을 되살려 주는 듯하였다.

봄에 내리는 비는 사람들의 마음을 감상(感傷)에 빠뜨리는 묘한 매력이 있다. 요즘도 시인과 가수들은 봄과 봄비를 묘사하는 다채로운 작품들을 발표하고, 라디오에서는 봄에 대한 노래나 봄비를 주제로 한 음악을 곧잘 틀어주기도 한다.

예로부터 많은 시인들이 봄비에 대한 시상(詩想)을 펼쳐 왔지만, 개인적으로는 중국 당대의 3대 시인으로 불리는 두보의 “춘야희우(春夜喜雨)”를 백미로 꼽고 싶다. 올해는 그리 심하진 않지만 봄 가뭄이 심한 해에 내리는 봄비를 두보의 이 시처럼 잘 표현한 시는 영영 만날수 없을지도 모른다.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 좋은 비 시절을 알아/ 當春及發生(당춘급발생) 봄을 맞아 모든 것을 피워내고/ 隨風潛入夜(수풍잠입야) 바람 따라 살며시 밤에 들어와/ 潤物細無聲(윤물세무성) 만물을 적시나 가늘어 소리가 없네/野徑雲俱黑(야경운구흑) 들길은 구름과 함께 어두운데/ 江船火獨明(강선화독명) 강가 배에는 등불이 홀로 밝구나/ 曉看紅濕處(효간홍습처) 새벽에 붉게 물든 곳을 바라보니/ 花重錦官城(화중금관성) 금관성 꽃송이 이슬 머금고 고개 숙였네>

밤새 내린 봄비는 겨우내 꽁꽁 언 땅을 녹여 생명이 잘 자라는 비옥한 토지로 바꾸어 준다. 겨울 가뭄에 지친 대지라면 봄비 소식은 그 어떤 선물보다 정겹고 반가울 것이다. 밤새 대지를 촉촉하게 적셔준 봄비는 농사의 시작을 알려주고 풍년을 예고하는 전령사일 것이니 이 어찌 반가운 손님이 아니겠는가!

들판에 야트막하게 내려와 앉은 비구름이 새벽 어스름을 더욱 짙게 채색하는 그 시각에 어인 영문인지 강가에 묶어둔 조각배의 등불만 저 홀로 세상을 밝히고 있었다. 두보의 마음에도 ‘그 불빛이 더욱 애잔하게 느껴졌을 것’이라고 혼자 상상도 해 보았다.

메마른 땅에 내리는 봄비는 달콤하기 그지없는 선물이다. 이처럼 밝고 반가운 소식은 어느 조직이건 조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아주고 비전을 향해 더 한층 매진하게 힘을 실어주는 법이다. 하지만 그 반대로 어둡고 음울한 소식은 전체 조직원들의 마음에 아픈 생채기를 남기고 내적 갈등을 한층 더 심화시키는 법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최근 울산시교육청이 돌아가는 모습은 학교 현장에서 묵묵히 책임을 다하고 있는 구성원들의 마음을 극도로 황폐하게 만들어준다고 해서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미 몇 년 전에도 일어난 일과 똑같은 사태가 며칠 전 울산교육의 중심인 시교육청에서 벌어졌기에 하는 소리다. 검찰의 압수수색을, 그것도 두 번씩이나 받아야 했던 수모는 현 교육감이 그토록 야심차게 내세웠던 ‘학교시설단’이 업무 추진 과정에서 저지른 비리의 ‘죄값’이라고 하지 않는가?

시교육청을 겨냥한 검찰의 압수수색은 단순히 특정 시설물에 대한 압수수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울산 교육계에 대한 불신의 감정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고 말았다. 특히 지금은 김복만 교육감이 사기 혐의로 1심과 2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고 직위상실의 위기로 내몰린 가운데 대법원의 최종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매우 절박한 시점이다. 이 미묘한 시점에 시교육청이 또 다른 비리로 압수수색을 받았다는 소식은 메마른 대지를 적셔주는 단비가 아니라, 메마른 대지에 불을 지르는 불쏘시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교육감과 학교시설단의 비리 혐의는 울산교육의 이미지를 더욱 흐리게 하고 위상을 실추시켰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두보의 ‘野徑雲俱黑(야경운구흑)’이 아니라, 시교육청의 ‘敎育雲俱黑(교육운구흑)’이 되어 버린 꼴이다. 봄비처럼 정겨운 교육청으로 되돌릴 수는 없을까?

김용진 울산 명덕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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